50년만의 화려한 귀환!

조회수 2019. 10. 29. 14: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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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BL L100 Classic 북쉘프스피커

JBL의 미스테리

▲ (좌) 4312, (우) 4425

아마 오디오를 한다는 분들 중에 JBL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진짜 모른다고 하면, 간첩이다. 사이비다. 초짜중의 초짜다. 게다가 어떤 모델이 되었건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고 하면 그 내공을 의심해 봐도 좋다. 심지어 그가 현재 몇 억원대의 장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JBL의 입문기로 널리 알려진 제품은 4312 시리즈와 4425일 것이다. 둘 다 북 셀프 타입이고, 전자는 3웨이, 후자는 2웨이인 점이 다르다. 또 후자엔 혼이 달려 있어서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나 역시 오랜 기간 사용한 바가 있다. 여기에 매킨토시 인티나 진공관 앰프를 걸면 적어도 재즈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아마도 내 오디오 인생의 중심은 바로 이런 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퍼 내지는 미드베이스 드라이버가 커버하는 영역이 무척 넓기 때문이다. 전자는 1.5KHz, 후자는 1.2KHz에 달한다. 거의 고역 일부분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통상 300~500Hz에 멈추는 것을 생각하면, 무척 이례적인 경우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JBL의 원점은 대구경 풀레인지

▲ JBL 디자이너 Greg Timbers

현행 JBL의 제품 라인업을 보면 그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 하나는 혼을 채용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예전에 JBL의 전설적인 스피커 디자이너 그렉 팀버스 씨를 만났을 때, 그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스피커는 혼을 채용한 2웨이 타입이었다.


이 경우 혼에 커플링되는 컴프레션 드라이버의 진동판 면적이 넓어야 한다. 물론 단순히 넓기만 하면 안 되고, 강도, 질량, 스피드 등 여러 요소를 만족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설계하면 대형기가 될 수밖에 없다. S9500, S5500, M9500 등이 그렇고, 과거의 4430, 4435 등이 좋은 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가격이 문제가 된다. 이런 대형기를 쓸 수 있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 혼을 쓰지 않고, 멀티웨이 방식의 장점을 추구해야 한다. (물론 4425는 소형기면서 2웨이 혼 타입으로 마무리했다. 무척 예외적인 경우다) 그런데 예전 모델을 살펴보면, 이상하게도 크로스 오버 포인트가 높다. 이것은 다시 말해 우퍼 내지는 미드 베이스의 활동반경이 넓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려면, JBL의 탄생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오디오파일로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연도가 하나 있다. 바로 1877년이다. 이때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축음기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즉, 오디오가 정식으로 세상에 나온 시기인 것이다. 이때 사용한 관구식 방법은 10년 후 에밀 베를리너에 의해 원반형으로 바뀐다. 즉, 디스크 타입이 이때 나온 것이다. SP, LP, CD 등이 모두 원반형인 것을 생각하면, 에디슨과 더불어 베를리너도 함께 기억해두면 좋을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정확히는 1876년에 알렉산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다. 이 때문에 AT&T라는 통신 회사가 설립되고, 거기에 하드웨어를 공급하기 위한 웨스턴 일렉트릭이 나온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와 라디오가 보급되고, 1927년 최초의 토키 영화 < 재즈 싱어 >가 공개됨에 따라 거창한 극장용 음향 시스템까지 개발되기에 이른다. 1902년에 출생한 JBL의 창업자 제임스 벌로우 랜싱의 배경에는 이런 어마어마한 변화의 물결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 그가 손댄 것은 라디오용 유닛이었다. 6~8인치 구경으로, 당연히 풀레인지 타입일 수밖에 없다. 이후 알텍에서 일할 때엔 601, 604와 같은 동축형 드라이버를 개발했고, 2차 대전이 끝날 즈음인 1945년에 전설적인 A 시리즈가 나왔다. 지금도 숍에서 만날 수 있는 A5, A7의 원형이 랜싱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시대는 홈 오디오쪽으로 빠르게 변화했고, 이 부분에 대응하기 위해 랜싱은 1946년 JBL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초창기에는 드라이버 제조에 전력하는데, 이때에 나온 D101, D130과 같은 유닛이 모두 풀레인지 타입이다. 그 전통이 4312 및 4425에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한편 이런 북셀프 타입의 원형 내지는 스탠다드가 바로 L100이다. 바로 1970년에 나왔다. 당시 트럭에 가득 담아 팔 정도로 어마어마한 히트를 자랑했다. 


하긴 1970년대부터 본격 하이파이 붐이 일었고, 일종의 혼수품으로도 각광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또 팝 문화의 융성기에다 LP의 전성기가 겹쳐 L100은 완벽하게 시장 지향적인 제품으로 사랑받았다. 이전까지 JBL이라고 하면, 하츠필드라던가, 패러곤, 올림푸스 등 주로 대형기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졌다. 이런 거창한 메이커에서 컴팩트한 사이즈의 가정용 스피커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큰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L100을 필두로, L200, L65, L300 등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명기들이다. 발매되고 근 40~50년이 지난 만큼, 온전한 제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와중에 근 50년 만에 본 L100이 재탄생했으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다. 향후 L300 정도도 리바이벌해주면 어떨까 싶다.

▲ JBL L300 Loudspeakers

JBL L100 클래식의 특징

▲ JBL L100 Classic

이제 자연스럽게 오리지널 L100과 이번에 나온 L100 클래식의 차이에 대해 알아보자. 사실 둘 다 3웨이 타입이며, 비슷한 사이즈를 갖추고 있고, 유닛의 배치도 별 차이가 없다. 심지어 오렌지 그릴을 장착하면, 둘 사이를 외관으로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외관이 아닌 내용에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언급할 것은 크로스오버 포인트의 변화다. 오리지널은 1.5KHz/6KHz로 포인트가 찍혀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JBL의 원형인 풀레인지 드라이버의 전통을 고수했다는 뜻이다. 중역대가 거의 트위터 부근까지 치고 올라와 있으므로, 1.5KHz 위에 굳이 2개의 유닛을 쓴 것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트위터만 붙여서 2웨이로 마무리 해도 충분한 상황이다. 4425는 그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보다 높은 고역대를 얻기 위해, 일종의 수퍼 트위터 개념으로 6KHz 대역 이상을 커버하는 유닛을 추가하지 않았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혼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혼과 같은 느낌을 얻기 위해 이런 방식을 썼다고 추측해본다. 


하지만 본 기는 매우 정상적인 크로스오버 포인트를 보여준다. 즉, 저역은 저역답게, 중역은 중역답게 설계한 것이다. 즉, 오리지널기가 3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2웨이인 만큼, 전문적으로 중역대를 커버하는 부분이 아쉬웠다. 어딘가 좀 빈 것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본 기는 확실하게 중역대를 처리하는 드라이버를 장착함에 따라, 보다 온전한 밸런스의 음을 얻게 되었다. 즉, 450Hz/3.5KHz라는 크로스오버 포인트는 내게 좀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 JBL L100 Classic에 적용된 유닛

여기서 지난 50년간에 걸쳐 이뤄진 기술의 축적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드라이버의 개량이다. 이 부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하면, 이 작은 사이즈로 어마어마한 광대역을 실현하고 있다. 무려 40Hz~40KHz를 커버하고 있다. 즉, 이 시대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내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과거의 L100이 가진 장점과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와이드 레인지라던가, 하이 스피드, 광대한 다이내믹스, 놀라운 디테일 묘사 등, 현대 오디오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스펙을 골고루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스펙을 둘러보며

그럼 여기서 스펙을 잠깐 살펴보자. 우선 입력 감도를 보면, 4오옴에 90dB라고 나와 있다. 이 부분이 참 미묘하다. 전통적으로 JBL의 제품들은 높은 감도를 자랑하고 있다. 초기 제품들의 경우 3극관 싱글로도 얼마든지 구동이 되었다. 그 점에 비춰보면 본 기의 감도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북셀프 타입이라 생각하면, 90dB는 매우 양호하고, 실제로 구동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기본적으로 JBL의 제품들은 그냥 대충 울리기는 쉽지만, 제대로 울리기는 절대 쉽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JBL을 얼마나 능숙하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애호가의 내공이 결정된다. 이것은 오디오계의 정설이다. 본 기 역시 제 맛을 톡톡히 내려면, 앰프쪽에 어느 정도의 투자는 필요하다.

이어서 드라이버들을 살펴보자. 우선 우퍼를 보면 전작과 같은 12인치 구경의 페이퍼 콘이 쓰였다. 물론 내용은 좀 다르다. 그러나 외관만 살펴보면 큰 차이는 없다. 오리지널 L100에 노스탤지어를 품고 있는 분들에게는 정말 다행이다.


한편 13Cm 구경의 미드레인지도 역시 페이퍼 콘이지만 여기에 폴리머 소재를 코팅했다. 공진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트위터에는 티타늄 타입의 돔을 투입해서 어마어마한 광대역을 실현하고 있다.

본 기의 마무리는 단 하나의 옵션만 존재한다. 전면과 후면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나머지 부분은 월넛이다. 여기에 오렌지, 블루, 블랙 등의 그릴을 선택할 수 있다. 오리지널에 대한 추억이 있다고 하면 무조건 오렌지다. 하지만 대부분은 블랙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


시청평

Carlos Kleiber - Beethoven Symphony No.5 Act 1
첫 곡은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베토벤의 < 교향곡 5번 1악장 >. 사실 전통적인 JBL의 사운드를 생각하면, 클래식에서 다소 모자랐던 것도 사실이다. 좀 야위고, 신경질적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여기선 전혀 다르다. 풍부한 중저역을 배경으로, 밀도가 있고, 적절한 볼륨감이 있으며, 무척 스피디하다. 시원시원한 고역의 매력까지 감안하면, 정말 천지가 개벽한 느낌마저 든다.
탄력있고, 생동감 넘치는 바이올린군의 울림에 강력한 저역의 어택. 더 놀라운 것은 스피커와 스피커 사이의 공간 묘사다. 그냥 단순히 음이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쫙 오케스트라가 펼쳐져 있다. 이른바 3차원적인 묘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매칭한 앰프의 퀄리티가 뛰어난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세기에 맞는 제품답다고 해도 무방하다.
Tchaikovsky - Violin Concerto in D major. 2st
이어서 차이코프스키의 <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을 하이페츠의 연주로 들어본다. 무척 오래전 녹음이지만, 아날로그 전성기 때의 소프트가 갖는 시정과 뉘앙스가 잘 포착되어 있다. 특히, 바이올린이 전혀 얇거나 앙상하지 않다. 오히려 심지가 곧으며 에너지가 넘친다. 미묘한 움직임과 기척까지 모두 잡아내어, 기본적으로 드라이버 자체의 레벨이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하이페츠가 관현악단에 묻히지 않은 가운데, 정확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부분도 무척 고무적이다.
John Coltrane - Blue Train
존 콜트레인의 < Blue Train >은 3관 편성이다. 콜트레인의 테너 색스 외에 트럼펫과 트롬본까지 가세하고 있다. 여기에 화려한 리듬 섹션이 더해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대 세션이 이뤄지고 있다. 확실히 JBL의 DNA에는 재즈, 그것도 50~60년대의 모던 재즈가 흐르고 있다. 일본에서는 “Jazz=JBL=Blue Note”라는 공식이 성립되고 있는데, 오죽하면 그럴까. 참고로 본 트랙은 콜트레인이 유일하게 블루 노트에서 내놓은 음반이다. 그 느낌, 그 뉘앙스, 그 기운이 정말로 멋지게 재현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JBL, 그것도 L100 클래식으로 들으니, 마치 피가 통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당시 연주자들의 기백과 패기가 일체 가감없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특히, 강력한 더블 베이스의 존재는, 이전까지 느낄 수 없었던 대목. 과외로 두둑한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다.
Pink Floyd - Breathe (In The Air)
마지막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 Breathe / In the Air >를 듣는다. 워낙 전설적인 녹음이라 달리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초반에 강력하게 나타나는 심장 고동 소리에 다양한 음향 이펙트. 시계 초침이 돌아가고,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다 강력한 신디사이저의 어택이 엄습한다. 이 모든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또 흥미진진하다. 이윽고 본격 연주가 시작되면, 마치 먼 우주에서 날아온 듯한 슬라이드 기타의 신비스런 음향이 귀를 자극한다. 아, 가벼운 탄성이 나온다. 당시 이 밴드가 마치 외계인이라도 된 듯, 여태까지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지역에 발을 내딛는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전달되어 온다. 또 이런 록에 필요한 야성이나 마성이 전혀 죽지 않고 전달된다. 바로 이 맛이다. 바로 이 때문에 JBL을 구입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L100의 귀환, 그것도 50년 만에 이뤄진 경사를 두 손 번쩍 들어 환영한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결론

아마 본 기를 접한 분들은 단순한 회고 취미를 척 하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산이다. 그냥 과거의 노스탤지어에 연연하는 제품은 전혀 아니다. 오리지널의 유산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요즘 시대에 걸맞는 내용으로 놀랍도록 승화되어 있다. JBL만 갖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최첨단 스펙을 구현한 점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이번 리뷰에서 만난 L100 클래식의 퀄리티는 빼어난 가성비를 자랑한다. 최소한 이 정도의 가격표를 매긴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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