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역사에 남을 또 하나의 명작을 만들다
클래식의 가치는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클래식의 인기는 소폭 바뀔 수는 있어도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클래식은 음악 장르의 클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레트로 혹은 복고를 말한다.
사실 디자인적으로 복고 디자인은 돈이 덜 든다. 오히려 세련되고 화려하고 현대적인 디자인과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 제작비는 더 든다. 그런데 오히려 제작비가 덜 드는 복고 디자인은 판매 가격이 더 비싸도 클래시컬한 디자인이기 때문에 비싸도 된다는 견해가 많다. 반대로 현대적인 디자인은 제작비가 더 들더라도 클래시컬한 복고 디자인의 스피커보다 비싸서는 안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정도로 복고 디자인은 인기가 좋으며 불가침 영역이다. 그렇지만, 디자인만 고전이면서 성능은 현대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현대적인 음악 장르나 녹음 스타일에 대응이 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면서 굳이 핸드 메이드에 클래시컬한 디자인이기 때문에 값은 더 받으려 하는 관례가 아직도 여전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소비자 스스로도 제작비가 적게 드는 네모 반듯반듯한 클래시컬한 디자인의 작은 제작사의 스피커를 잘도 비싼 가격에 셀프 수긍을 하며 잘 구입한다는 것이다.
물론, BBC 모니터 스피커 같은 일종의 클래식 스피커로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제품들은 상업적으로 대량 판매를 목표로 하는 제작사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상징성 차원에서 비용을 좀 더 받겠다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복고적인 디자인의 스피커 중에서도 합리적인 가격이면서 품질까지 좋은 스피커가 생산이 되어야 하고 그것의 보급이 잘 이뤄져야 한다.
이제는 브랜드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비싸도 된다는 시대를 지나서 합리적인 가격대에서도 전통과 클래식성을 아우르는 제품이 대중적으로 보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작업을 누가 할 것인가?
최장수 전통과 가격대비 성능의 상징, 와피데일
입문용 스피커를 가장 잘 만드는 제작사가 와피데일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입문용 스피커라는 것은 진정한 입문용 스피커이면서 범용적이고 보편적인 입문용 스피커로서 가장 무난하면서도 완성도가 있는 제품을 따졌을 때의 의미다. 다만, 와피데일의 모든 제품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필자가 접해본 일부 제품의 만듦새나 품질을 감안하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며, 그 범위를 넓게 보더라도 입문용 스피커를 가장 잘 만드는 제작사 중에서 절대로 빠트려서는 안될 대상이 바로 와피데일이다.
와피데일은 영국 출신의 오랜 스피커 제작사로서 무려 그 역사가 87년이 된 스피커 제작사다. 비록 그 경영의 주체는 IAG 그룹으로 바뀌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진 영국인들이 운영하는 것보다도 더 경쟁력이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근 출시되고 있는 제품들의 위용과 가격대비 경쟁력은 인상적인 수준이다.
과거 10년 혹은 15년여 동안 실제 시장에서의 평판이나 판매량, 그리고 해외 오디오 평가 매거진 등의 평가들을 종합했을 때, 입문용 스피커 시장에서 가장 여러 차례 올해의 제품으로 선정된 제품은 와피데일 다이아몬드 시리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다이아몬드 9 시리즈와 10 시리즈의 품질이 훌륭했고, 최근의 다이아몬드 100시리즈에서 비교적 부피가 큰 톨보이 스피커들의 가격대비 품질도 매우 훌륭했다.
그런데 최근에 린톤 헤리티지가 출시된 것을 보고 필자가 직접 리뷰를 하고자 자청했다.
와피데일의 대표적 전설급 스피커, 린톤(Linton)
와피데일의 린톤은 와피데일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스피커다. 1965년에 처음 출시한 이례로 70년대와 80년대에도 새로운 버전을 출시했었는데 2019년이 되어서야 다시 완성도를 높인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린톤 헤리티지(Linton Heritage)를 출시한 것이다.
기본부터 설명하자면, 이 스피커는 북쉘프 스피커보다 크기가 한참 더 큰 스피커다. 우퍼 유닛은 8인치 우퍼 유닛이 탑재되어서 일반적인 북쉘프 스피커가 탑재할 수 없는 비교적 대구경에 속하는 우퍼 유닛을 탑재하고 있다.
미드레인지는 5인치 유닛이 탑재되었으며, 1인치 소프트 돔 트위터까지 결합되어 3way 박스형 스피커가 완성되었다.
스피커의 높이가 565mm 이기 때문에 북쉘프 스피커 중에서 소형 북쉘프 스피커와 비교하면 그 높이가 2배정도 차이이며, 내부 용적은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차이가 발생한다. 소형 북쉘프 스피커들 중에서는 우퍼 유닛이 5인치인 경우도 있는데, 린톤 헤리티지는 5인치 유닛을 미드레인지로 사용하고 있으니, 굳이 일반 소형 북쉘프 스피커에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대형 스피커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고급 리얼 우드 무늬목으로 마무리를 하여 그 무게는 18.4kg이나 되며 전용으로 제작된 견고한 만듦새의 전용 스탠드를 제공하여 시각적인 안정감으로도 효과적이지만, 음질적으로도 도움을 주는 것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실제로 오디오 입문자들 사이에서는 그 중요성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용 스탠드의 존재는 의외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아무리 근성을 발휘해서 버틴다 하더라도 잇몸으로 버티는 것보다는 본래 치아가 있는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것이다. 튼튼한 스탠드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바로 그런 것이다.
린톤 전용 스탠드는 단순히 철제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스탠드의 상판과 하판에 두꺼운 목재를 덧대어서 넓은 철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동을 추가로 흡수하고 소진시키고 있으며, 미적으로도 그 목재는 멋을 더하고 있다.
또한, 그 스탠드의 중앙의 빈공간은 LP를 넣었을 때, 그 사이즈가 딱 맞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여러 측면에서 린톤 전용 스탠드는 전용 스탠드로서 장점이 아주 많은 스탠드인데, 이 스탠드는 기본 제공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면서도 소비자를 배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스탠드는 별도로 구입한다면 그 가격이 35만원쯤은 할 것이다.
피부에 닿는 따스하고도 섬세한 온기감과 볼륨감
근본적으로 클래시컬한 디자인이면서 일종의 섬유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케블라 재질의 우퍼 유닛을 사용하고 있는 스피커가 부피가 크더라도 마치 클럽에서 재생되는 소리처럼 소위 빵빵하고 쭉쭉 뻗어주고 다소 거칠면서도 흥분을 분출하는 음을 재생하는 경우도 그다지 많지 않다. 그리고 와피데일은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을 계승하고 있는 스피커 브랜드다.
근본적으로 와피데일 스피커는 거친 음을 절대로 재생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중음에서 저음으로의 이음새가 도톰하고 포근하면서도 매끄럽다. 린톤 헤리티지는 그러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큰 울림통과 큰 우퍼 유닛을 이용한 넉넉한 배음과 넓은 울림, 그리고 과거 기종에 비해서는 한결 더 화사하고 밝은 개방감으로 튜닝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기보다 비싸지 않은 앰프와의 매칭에서도 소리가 잘 나와주는 편이다.
와피데일 린톤이 거의 유일하다
스피커의 음질은 크기와 부피가 절반이다. 힘은 질량에 비례하는 것처럼 깊고 넓고 힘있는 울림은 스피커의 큰 울림통과 진동판의 면적에 비례한다. 그리고 이 원리는 절대로 바뀔 수 없다. 그리고 때로는 작고 자연스러운 표현도 넓은 가능성과 기본기를 갖추고 있지 못하면 그 작고 섬세하며 자연스러운 울림의 표현도 할 수가 없게 된다. 큰 스피커는 종종 항상 괴팍하고 웅장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울림의 음을 듣기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럽고 공기 같은 음을 재생하기 위해서도 부피가 큰 스피커가 필요하다.
그런데 200만원 미만에서 이정도 부피이면서 이정도 완성도를 만들어낸 스피커는 아마도 와피데일 린톤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게다가 훌륭한 전용 스탠드까지 제공하는 것은 정말 굉장한 혜택이다.
물론, 굳이 사족을 달자면, 이 스피커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하고 그윽한 울림을 들려주며 섬세하고 화사한 음을 들려주는 스피커다. 그렇기 때문에 재생되는 음에서 흥분을 원한다면, 혹은 섬세함과 화사함보다도 더 화려하고 격렬한 음을 원한다면 다른 스피커가 더 마음에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와피데일 린톤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와 유사한 가격대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수준의 그윽하면서도 감미롭고 낭랑하고 기준 좋은 울림과 기분 좋은 음의 산란과 섬세함과 촉촉함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1000만원이 넘는 금속 섀시 스피커로 감상해도 해소되지 않는 감미로움과 음악에 대한 좋은 영감을 느끼게 하는 음을 이 8인치 우퍼 유닛이 탑재된 박스형 나무 스피커에서 느껴볼 수도 있다.
이제 음악만 들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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