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더 고유의 우아한 사운드를 유감없이 발휘

조회수 2019. 8. 16.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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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ndor A7 스피커

꽤나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상당히 큰 대형기 스피커를 직접 제작하여 판매하고자 하는 분을 잠깐 알고 지낸적이 있다. 완성품 스피커의 모양은 적당히 투박하고 단단한 인클로저 였으며, 드라이버 유닛은 그다지 비싼 것을 사용하지도 않았다.(아마도 오닥스 제 우퍼와 알루미늄 트위터였던 것으로 기억) 하지만 소리 하나만큼은 음악 듣기에 정말 좋았던 기억이 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재생했을 때, 말 그대로 음악 듣는 맛이 났던 스피커… 현재의 고가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자랑하는 비싼 소재/최첨단 공법 등에는 근처에도 갈 수 없던 제품이었지만 음악을 듣는 내내 오로지 음악만 생각하도록 해 주었던 경험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마케팅에 대한 개념이 없던 그 지인은 결국 그 스피커 브랜드를 접어야 했고 그 스피커도 그 분도 그 이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그 스피커를 사라고 했다면 하긴 필자 조차도 망설였을 것 같긴 하다. 물론 중고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예술품의 가치와 오디오의 가치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품들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와 물질계에 현실화 되는 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회화의 경우라면 캔버스, 조소라면 돌이나 점토, 나무 등 기타 가공이 필요한 소재들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며 작가가 자신의 영감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작가의 인지도와는 크게 상관없이, 그러한 “소재와 재료”등은 그렇게 비싼 것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몇몇 유명 팝 아티스트들은 쓰레기로 버려지는 소재들을 주워다가 고가의 예술품으로 재탄생 시키기도 한다.

또한 호 당 수 백 만원을 호가하는 이름 있는 작가가 사용하는 캔버스나, 이제 막 미술학원에 등록한 어린 학생이 사용하는 캔버스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 이것은 그 캔버스라는 소재가 싸구려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뜻이 아니라 예술품 창조자인 작가의 아이디어와 영감, 실력 등이 그만큼 절대적으로 가치 매김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예술작품이 되었든 스피커가 되었든 우리는 돈을 주고 그 제품을 구입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내가 지불한 돈이 어떤 가치로 치환되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만약에 꽤나 유명한 작가의 회회 한 점을 구입했는데, 사용된 캔버스의 퀄리티며 안료의 가격 같은 것들을 따지는 이가 있다면 대부분의 애호가들은 그 사람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구매자가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은 재료들이 아니라 작가의 실력과 영감이기 때문일 것.


역사가 보증하는 스펜더라는 이름, 다시 소리를 보증하다.

이번에 살펴보게 된 스펜더의 A7이라는 스피커는 동사의 가장 최신 모델이자, 가격대로 치자면 그렇게 비싼 축에 끼지는 않는 중급 플로어스탠더 스피커다. 해외 리테일 가격은 한화 환산 기준 약 5백만원 후반 정도 하지만 국내 런칭 가격은 5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수준. 동 가격대에서 보자면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무거우며 보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스피커들은 솔직히 말해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그만큼 스펜더 A시리즈 최상위 톨보이라고 하는 A7은 사진과 사이즈, 모양새(사진 기준)만 보자면 그리 큰 감흥이 오지 않는 스피커였던 것이다. 필자도 이 스피커를 웹 상에서 처음 봤을때만 해도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 스펜더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스피커이기 때문에 최소한 기본 이상은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기대 정도였다.

▲ Spendor SP200 스피커

물론, 제품을 직접 보지 않은 상태에서 필자가 이렇게 짐작할 만큼 스펜더라는 브랜드 네임은 우리 오디오파일들에게 상당한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껏 이 브랜드가 걸어왔던 역사를 살펴보면 다분히 그러한 것. 물론 필자가 그 시대에 살진 않았지만 1960년대에 시작된 Spendor BC 시리즈 스피커 같은 물건들은 당시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잘 만들어진 스피커의 레퍼런스로 여겨지는 작품들이다. 또한 SP시리즈의 다양한 숫자를 새기고 나온 스피커들은 지금도 오디오를 막 시작하는 이들에게 교과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터.


때문에 판매 가격 500만원 언더의 그리 크지 않은 톨보이 스피커지만 그래도 이 A7이라는 스피커가 필자의 눈 앞에서 소리를 내는 상황까지 오게 된 건 전적으로 스펜더라는 네임밸류 덕분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스펜더 A7을 살펴보다.

제품을 인도받아 처음으로 박스를 열었을 때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다는 점은 결코 좋은 인상이 될 수 없었으나 뛰어난 원목 마감 퀄리티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는 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영국 태생 상당수의 스피커 브랜드들은 스펜더로부터 인클로저를 납품받아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A7의 마감 퀄리티는 고급이었다. 나무를 다룰 줄 아는 이가 기획하고 관여했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A7은 자사가 개발한 EP77 폴리머 콘으로 만든 7인치 미드/우퍼, 그리고 주력 상급 모델인 D7의 드라이버 서스펜션, 크로스오버 부품 등을 개량해 쓰는 등 상당히 의미 있는 정성이 깃든 스피커이다. 물론 기천 만원을 넘기는 하이엔드 급 스피커들과 같이 고가의 유닛이나 소재 등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스펜더 내 여러 스피커들을 상기시켜 볼 때 결코 허투루 대충 만든 라인업은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해외 매거진의 A7에 대한 평가 중 하나, 스피커 사이즈에 비해 놀랄 만큼 퍼포먼스 스케일이 크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 아마도 저음역의 스케일과 그에 따르는 스테이징 표현 능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든다. 스펜더 나름의 노하우를 찾자면 초 저음을 다루는 베이스 포트에서 그 특이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4세대를 거쳐 진화한 리니어 플로우 포트(Linear Flow Port)가 그것인데, 비 대칭의 직사각형 베이스 포트를 바닥에 최대한 가깝게 위치하도록 설계한 모양새이다. 계산된 초저음을 깔끔하게 깔아내는 역할을 하는데, 인클로저 내부, 특히 베이스 포트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명(Internal Port Resonance)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데 일조한다고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스펜더가 타 브랜드에 인클로저를 납품한다는 사실은, 이 브랜드 인클로저 제작 기술이 상당한 수준이며 경쟁사들이 쉽게 재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리고 그 기술 수준이라는 것이, 고가의 소재를 쓰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스피커 브랜드의 입장에서 인클로저를 납품받아야 한다면 그 선택 기준은 당연히 소리와 가격일 것이기 때문이다.


A7의 경우에도 상당히 훌륭한 원목 마감의 인클로저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내부적으로 무언가 그럴싸해 보이는 그 무엇은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스펜더가 이 스피커를 얼만큼 공들여 만들었는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내부 흡음재 배치에 있어서 일반적인 스피커들과 다른 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폼 재질이 아닌, 약간 고무에 가깝기도 하고 발포 우레탄 느낌 같기도 한(이 댐핑 소재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다)작은 댐핑 블록이 아주 여러 개 조합되어 있는 형태인데, 가령 큰 블록 한두 개 정도로 커버될 면적을 굳이 작은 블록 여러 개로 덧대어 붙여 놓는 식이다. 심지어 각각의 블록 모양이나 크기도 제 각각이었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스펜더는 사운드 튜닝에 있어서 인클로저 댐핑 만큼은 철저히 수학적으로 계산된 팩트를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하나하나의 댐핑 블록을 복잡한 사운드 함수의 변수로 적용시키는 식이다. 확실히 저음에 관여하는 인클로저에 대한 사항은 사람의 청음 능력보다 데이터와 수치로 기준 잡는 것이 효율적이긴 하다. 그 기준이 잡힌 이후에 사람의 청감 튜닝이 들어가는 것이 이치상으로도 타당하다.


필자는 지금까지 스피커 제품을 상당히 많이 겪어왔다고 자부하는데, 나름의 경험에 의하면 스피커가 자신이 낼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소리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즉, 어떤 짓을 해도 이 스피커는 이 이상을 못 하겠구나 싶은 확신이 드는 것이다.

▲ Spendor A7의 크로스오버

하지만 A7의 경우에는 박스에서 꺼내어 첫 소리를 내는 순간, 도대체 이건 뭔가 싶은 의아함이 가장 먼저 들었다. 마치 네트워크 크로스 오버 회로에 문제가 생긴 양, 피크와 딥이 산만하고 저음은 공기 중간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던 것. 그럼에도 필자가 크게 당황하지 않고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스펜더”라는 이름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 4시간 정도의 몸풀기 과정이 지난 후, A7은 그제서야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은 저음의 뉘앙스는 결코 느리지 않은 스피드임에도 불구하고 덩어리진 밀도감과 풍압으로까지 느껴질 만한 파워가 일품이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매끄럽게 다듬어져 버린 A7의 선율은 예의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스펜더 SP시리즈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소 어둡고 묵직하며 유연하게 표현하는 “스펜더 표 질감”은 A7에서도 예외 없이 느낄 수 있었으며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서 음악을 듣고자 하는 욕구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다만 최상급의 Classic 시리즈에서의 색채감이 보다 다양하다는 점에서는 등급 사이의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는 터. 그래도 보다 캐주얼한 컨셉의 A7 치고는 과분할 정도의 중후함과 리얼한 질감 표현이 고마운 정도이다.


우리가 후면 덕트형 스피커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작은 공간에서 저음 컨트롤하는 것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정 주파수 대역의 뭉침 현상 등을 피하기 위해 스피커 주변의 공간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즉, 듣기 싫은 소리를 피하기 위한 발버둥에 가까운 것.


그런데 A7의 경우에는 다소 관점이 다른 공간 확보 노력이 주효한 것 같다. 후면 덕트는 음향적 이유 때문에 바닥에 가장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데, 1차 반사면과 바닥면의 소재에 따라 저음의 뉘앙스가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옴이 흥미롭다. 인위적으로 뒷 벽에 붙이는 식의 세팅을 하게 되면 스테이징은 다소 협소하지만 밀도감 있고 힘있는 저음표현이 가능했다.

토우 인 각도 보다는 두 스피커 사이의 거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스테이징 특성도 상당히 재미있는 요소이다. 물론 스피커 케이블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하는 음색도 고민 거리이자 즐길 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두꺼운 게이지의 은도금선에 있어서 좋은 음 대역간 밸런스를 뽑아낼 수 있었는데 네델란드의 반덴헐(Van Den Hul)케이블이 좋은 인상을 주었다.


앰프 매칭에 있어서는 의외로 까다로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데, 각각의 앰프 고유 음색과 버릇 등을 상당히 충실하게 재현하는 스타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매칭 앰프가 어느 정도 수준의 구동력을 가질 필요는 있어 보인다.


마무리

적어도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는 수준은 되며, 쓸만한 앰프를 매칭했을 때 500만원 언더 리테일 가격대에서 독보적으로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재생할 수 있는 스피커이기도 하다. 질감과 스테이징의 중간에서 자연스럽고 위태롭지 않은 밸런스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 가격대에서 보기 힘든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점, A7을 필자가 높게 평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다름 없다.


A7은 필자에게 있어서 5백만원 언더 스피커 퀄리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 스피커였다. 적어도 가격대가 이 정도이니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들어야 한다는 그런 아쉬움은 전혀 없었던 경험이었다.


S P E C I F I C A T I O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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