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인 사운드와 양적인 사운드 내적인 사운드와 외향적인 사운드

조회수 2019. 6. 21. 14: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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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예민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기계적 중립을 지키느라 솔직한 주관에 의한 방향성 있는 이야기를 참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을 크게 폄하하기 위해 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너그러이 감안해 주었으면 한다.


질적인 음질과 양적인 음질은 무엇인가? 


음질이 양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양적인 음질이 항상 질적으로도 우수한 음질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예컨데 저음의 양이 많다고 해서 음질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 그와 같은 것이다. 저음의 양은 스피커의 부피와 우퍼 유닛의 크기와 앰프의 힘에 비례하여 저음의 양은 결정이 된다. 그리고 그 스피커가 사용되는 공간이 좁으면 좁을수록 저음의 양은 늘어나고 공간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저음의 양은 다시 줄어들게 된다. 


결과적으로 저음의 양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예컨데, 중음을 영롱하게 만들자고 하면 딱히 정해진 방법이 없지만, 저음의 양감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인 것이다.

저음의 양을 늘리고 싶으면, 스피커를 공간에 비해 큰 제품을 구입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다. 그리고 스피커가 큰 스피커라는 것이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다. 스피커가 크면 저음의 양감은 늘어나는 것인데, 그게 비싸지 않다는 것은 그로 인해 가격을 비싸게 받아야 하는 질적인 문제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근거가 된다. 예컨데, 200만원대에서도 10인치 우퍼가 탑재된 톨보이 스피커들을 제법 찾아볼 수 있다. 반대로 200만원대에 6인치도 안되는 우퍼를 탑재하고 있는 소형 북쉘프 스피커들도 많다. 그러니 스피커의 부피와 우퍼 유닛이 스피커의 가격을 비싸지게 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앰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피커의 부피가 아무리 크더라도 앰프가 과도하게 약하면 그 저음의 풀어지게 되고 나와야 될 충분한만큼의 저음이 안 나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앰프도 마찬가지로 저음이 잘 나오는 앰프는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다. 앰프가 저음이 잘 나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전원부에 사용하는 전원 트랜스나 캐패시터가 큰 용량의 부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로 큰 용량의 부품들이 들어가서 무거운 앰프들의 가격이 딱히 많이 비싸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브랜드에 따라서는 고급 브랜드에서는 고용량의 부품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상대적으로는 더 비싸지기는 하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을 추구하는 브랜드에서는 용량 큰 부품이 들어갔다고 해서 가격이 과도하게 비싸지는 것은 아니다.


쉬운 예로 데논 같은 경우를 보면, 20KG이 넘는 앰프의 가격이 200만원대인걸 알 수 있다.


오디오 초보는 저음을 좋아한다??

음질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가장 쉽게 구분이 가능한 요소가 바로 저음의 양감과 중고음의 선명도다. 의례 오디오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신 분들은 이 두가지 요소로 음질을 파악하고 음질의 변화와 우열을 결정하곤 한다. 어쩌면 그정도가 당연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음식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을 때는 짠맛과 매운맛, 단맛 등으로만 음식의 맛을 판별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예컨데, 떡볶이의 맛을 표현하는데 계속 엄청 맵다는 말만 강조하는 것도 비슷한 예이다. 정작 매운 것과 맛있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인데 말이다.


사실 중음의 선명도가 더 선명해지면 음질이 더 좋아진 것 같고, 나오지 않던 저음이 좀 더 빵빵하게 나와주면 그것도 마찬가지로 뭔가 더 음질이 좋아진 것 같고, 전에 비해 음질이 향상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경험이 많지 않거나 훈련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며 거부하기 힘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변화를 감지해야 뭐가 좋아졌는지 바뀌었는지를 논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저음의 양감과 중음의 선명도인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오디오의 경우는 이 두가지 요소로 음질의 승부를 거는 경우가 많다. 


스피커 브랜드들 중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스피커를 판매해야 되는 브랜드들일수록 우퍼 유닛의 개수가 많아지고 우퍼 유닛의 크기가 가격에 비해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스피커의 부피는 커지고 우퍼 유닛의 개수가 많아지지만 인클로져(스피커통)의 질이 좋지 않고 가벼운 경우는 저음의 양만 많아질 뿐, 저음의 질은 저질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저음의 양감에 연연해서 저음 잘 나오는 스피커를 선택했다가 한동안 사용을 하다보면 저음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후부터 고난의 시기가 시작된다고나 할까?


저음이 줄어들면 음질도 떨어진 것일까?
밥을 두그릇 주다가 한그릇만 주면 질이 떨어지는 것일까?

음질을 테스트 하다보면 마찬가지로 가장 잘 파악되는 변화가 저음의 양이 늘어나거나 혹은 반대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오디오에 경험이 많지 않은 경우는 있던 저음이 갑자기 줄어들게 되면 불안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있던 것이 없어지게 되니 뭔가 음질도 하향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있던 것이 조금이라도 없어지게 되면 뭔가 손해 본 것 같은 심리때문이다. 


예컨데, 음식점에서 기본 반찬에 공기밥을 두그릇 주던 식당을 자주 이용했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식당 주인이 식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신선한 채소 반찬도 추가를 하고 고기 반찬도 추가하는 대신에 공기밥을 두그릇을 주던 것을 공기밥 하나는 빠졌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좋은 반찬이 추가된 것은 좋은데, 공기밥이 빠졌으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하면 그건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새로운 것이 추가된 것은 좋지만 항상 있던 것이 줄어들게 되면 뭔가 손해본 듯한 심리.. 


예컨데 그러면 공기밥을 3그릇을 주면 엄청 만족할 수 있을까?

이 말의 의미를 대부분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질의 수준을 양이 결정하는 순간은 금방 끝난다. 식당에 가는 대부분의 소비자는 공기밥을 두그릇 이상 줄 필요가 없다. 두그릇은 고사하고 한그릇 이상 먹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런데 두그릇 주던 양을 한드릇으로 줄였다고 평가절하 되어야 할까? 아마도 밥의 양이 중요했던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라면 공기밥 하나 덜 주는 것에 분개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공기밥 개수가 식사의 질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저음의 양감이라는 요소도 비슷하다. 


저음의 양감이 결국은 질 좋은 질감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공간과 매칭이 잘 맞는 스피커여야 하며, 필수적으로 앰프의 성능이 따라줘야 한다. 


그런데 정말로 훌륭한 저음의 양감 대비 질감까지 보장될 정도의 앰프를 사용하는 경우는 그다지많지 않다. 대부분은 스피커를 제대로 휘어잡을 수 있는 앰프를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자기 스스로 위안삼거나 혹은 비슷한 수준으로 앰프를 사용하는 유저들끼리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경우도 많다. 


엄밀하게는 저음보다 중요한 것은 중음이다. 저음은 양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탄력감과 밀도감이 중요하다.


실제 가정에서는 저음의 양감은 덜어내고
밀도와 탄력을 높이거나 혹은 안개 같은 저음을 만들어야 한다

종종 오디오 청음을 하다보면, 저음은 약간 허전하면서 중음은 약간 얇은 듯 하면서 생생한 음을 내는 음들이 있다. 사실 넓은 공간에서는 대부분 이런 음이 나게 되는데, 공간이 넓기 때문에 저음의 양감은 다소 줄어들면서 허전해지게 되고, 공간이 넓기 때문에 볼륨을 좀 더 많이 올릴 수 있게 되어서 중음의 생동감은 더 빠르게 펼쳐지게 된다.


자동차의 경우 최고의 출력과 토크가 발휘되기 위해서는 RPM이 제법 올라가야 되듯이, 이렇게 빠르고 화려한 음질 역시 예컨데 심박수가 빠른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이 된 상태는 아니지만, 재생되고 있는 음의 스피드와 신체의 심박수나 혈압 등이 일치할 수록 더 선호할 수 있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차분하고 점잖은 분들일수록 톤이 낮고 저음이 깔리는 음질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저음의 양도 영향이 있지만, 음의 재생 속도가 느려지면서 약간 나긋나긋한 음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넓은 공간에서 저음이 약간 부족하게 느껴지고 중음의 생동감이나 투명도가 극대화 된 음을 집으로 가져갔을 때, 비로소 저음의 양감이나 밀도감이 딱 적정한 정도가 되며, 중음은 살짝 볼륨감이 붙고 밀도감이 더해져서 지극히 중립적인 음이면서 생동감과 화사함, 투명도는 여전히 살아있는 음으로 완성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줬더니,

공간이 바뀌면 소리가 바뀐다구요?

라면서 키득키득 웃는 분도 있었다.


대편성과 우렁찬 저음, 과연 필요한가?

음질을 평가할 때, 대편성 클래식을 저음이 우렁차고 강력하게 나오도록 풀 스케일로 재생해서 테스트 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대단히 강력한.. 평소에 일반적인 조건이나 환경 상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수준의 강력한 저음을 들려주는 청음회를 하곤 한다. 


소위 음질이 다르다고 각인시키거나 음질이 좋다고 강력하게 세뇌시키기에 이만큼 좋은 방법도 없는 것이다. 왜냐면, 그런 음을 평소에 집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 제품을 구입하면 그와 동일한 음을 집에서도 들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아니다’이다. 


공간이 다르고 볼륨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음이 동일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풀 스케일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벽을 무너트릴 것 같은 강력한 저음을 있는 그대로 가정에서 재생한다는 의미인데, 아파트나 빌라 같은 곳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음이다. 


그건 마치 중동이나 아프리카 사람을 한국 스키장에 데려다 놓고 눈의 아름다움과 시원함을 경험하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사람들에게 눈을 판매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음을 듣고 그렇게 과장된 저음이 보수적이면서도 까다로운 조건에서의 우수한 음질의 기준이라고 고정관념을 갖게 된 유저들은 항상 이정도의 우렁차고 강력한 저음이 나오는 오디오만이 좋은 음질의 기준이 되며 좋은 오디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정작 집에서는 그런 음을 재생하지 못하는데, 그런 풀 스케일의 강력한 저음이 재생되는 음이 좋은 음질의 기준이 되어야 할까?

그것이야 말로 아프리카 사람들한테 눈이 좋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 밀폐된 냉각 시스템을 갖춘 실내가 아니고서는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서는 눈의 존재는 의미가 없는데 말이다.


예컨데, 직접 오디오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거나 혹은 오디오샵이나 오디오 전문가를 통해서도 설문 조사를 해 보더라도 이정도 풀 스케일의 음을 가정에서 자주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대편성 클래식을 듣더라도 큰 볼륨으로 대편성 클래식을 듣는다기 보다는 소란스럽지 않도록 작은 볼륨으로 대편성 클래식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에는 우렁찬 저음이 필요할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대역 밸런스와 음의 전개나 매끄럽고 평탄한 해상력이 더 필요할까? 클래식을 듣는 분들이라 하더라도 실제 가정에서는 풀스케일의 저음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대역 밸런스와 해상력을 더 중요시 하듯이 풀스케일의 저음 재생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용 오디오 장비나 스튜디오 등에서 사용하는 오디오 장비라면 그런 풀 스케일의 음을 잘 들려주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볼륨을 크게 올려서 초저음을 재생하더라도 가족이나 다른 이웃 눈치 볼 필요가 없는 분들은 풀스케일의 저음을 즐겨도 좋을 것이다. 원한다면 말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소비자 중에서는 그런 음을 잘 재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넘치는 저음 자체를 원래 싫어하는 분들도 많을 뿐더러, 대부분은 아예 그런 음을 재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강력하고 우렁찬 저음 때문에 실제 소비자가 음질에 만족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오히려 저음은 양이 적으면서 단단하고 탄력적이거나 혹은 양이 많지 않더라도 구름이나 안개처럼 자연스럽게 깔리는 저음만 나와주면 된다. 그리고 오히려 음의 질과 음악 감상에 더 도움이 되는 음질이라는 것은 강력하고 부담스러운 저음이 아니라 전체 대역 밸런스와 중음의 촉감이나 질감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정말로 집에서 좋은 음질은 따로 있다

좋은 음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너무 저음의 양감이 연연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사용자의 환경이나 조건마다 다르긴 하지만, 클래식 대편성에서 풀스케일의 저음을 큰 볼륨으로 재생해서 오디오를 테스트 하고, 그 결과가 마치 음질의 최우선 가치인 것처럼 판단하는 것은 대부분의 소비자의 조건과 환경에 맞지 않는 방식이다.


예컨데, 가격에 무관하게 어떤 고가의 오디오라도 사용할 수 있을만큼의 여유로운 소비자라면 이런 이야기도 무시해도 좋다. 그렇지만, 가격적으로 단품 가격을 1000~2000만원 내외로 제한해 보도록 하자. 과연 그정도 제품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공연장과 같은 단독주택에서 살거나 혹은 단독주택에 살더라도 과연 스피커 가격에 비해 충분한 저음의 질감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품질 좋은 앰프를 사용하고 있는가도 따져 봐야 한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저음에 연연해야 되는 취향의 사용자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좋은 음질을 만드는데 있어서 저음이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가정에서 충분한만큼의 저음은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고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부디, 일반 청음실에서 감상했을 때보다 실제 가정 공간으로 스피커와 오디오를 가져가면 저음이 확 늘어나 버려서 청음실에서 들었던 것보다 음이 지저분해지고 답답해질 수 있음을 착안하기 바란다. 아프리카 사람이 외국에서 보는 눈처럼, 당장에 보이고 당장에 들리는 것이 다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눈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서 그걸 집으로 가져가면 다 녹아서 없어져 버릴 뿐이다. 


당장에는 저음이 우렁차고 저음이 풍부한 오디오가 좋은 것이라고 이성적으로는 판단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아파트와 같은 환경에서는 거의 절반정도는 자의반 타의반 그 양을 줄이면서 좋은 음질을 만들어야 된다는 점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경험이 많지 않을 때는 당장에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중음의 맑음과 미려함, 촉촉함과 지극히 자연스러움의 묘미에도 빠져보면 좋을 것 같다. 


저음이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있어도 좋을 저음을 왜 덜어내야 된다고 이야기 하는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 고기가 맛있는 집에 가서 고기는 먹지 않고 어렸을적 어머니 말씀처럼 공기밥을 먼저 먹고 나면 맛있는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겠는가? 공기밥을 안 먹으면 손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저음도 마찬가지다. 저음을 덜어내지 않으면, 중음도 오염이 된다. 잘 모르는 단계에서는 저음도 공존을 시키고 중음도 살리고 싶겠지만, 저음이 많아지면, 공기밥 2개 먹고 나서 고기를 먹어야 되는 것처럼 저음이 중음의 명료도나 투명도나 입자감 등을 헤치게 된다. 그점을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저음이 조금 줄어들었다고 해서 공기밥 2개 주던거 한개 뺏어간 것처럼 서운해 하지 말기 바란다. 어차피 일반 가정에서는 저음이 그리 많이 필요치도 않을 뿐더러, 공기밥 2개보다 더 유익한 고급 반찬과 고급 메인 요리를 즐기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음악 애호가가 즐기는 메인 장르라는 것이 클래식 대편성곡을 풀스케일의 저음과 볼륨을 요구할 정도의 장르인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오랜 오디오 마니아 선배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샵에서 성능 테스트 할 때는 그렇게 말러 같은 클래식 대편성을 듣다가 집에 와서는 그정도 볼륨으로는 거의 안 듣는다고 말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집에서는 못 들으니 샵에서라도 듣는다는 우스갯 소리를 했던 것 같다. 


정작 그 특성이 집에서는 필요 없는 특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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