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인터페이스, 치밀한 설계, 깨끗한 음
개인적으로 현재 자택에서 프리앰프를 쉬게 하고 있다. 진공관 프리앰프인데 파워앰프에 자신의 게인을 보태주는 점, 그래서 전체 재생음에 에너지감이 실리는 점, 그리고 각종 소스기기에 대한 입력선택 및 볼륨조절을 할 수 있는 점은 좋았지만, 묘하게 자신만의 색깔을 덧칠하는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파워앰프를 바꿔도 재생음에 큰 차이가 없으니 업그레이드나 기기 교체 재미가 확 줄어들기도 했다. 이밖에 볼륨을 0에 놓아도 미세하게 음이 흘러나오는 점도 불만이었다.
결국 올해 초부터는 프리앰프 기능이 있는 마이텍 Manhattan II DAC에 파워앰프(일렉트로콤파니에 AW250R, 올닉 A-1500, 쉬트오디오 Vidar)를 직결해 쓰고 있다. 맨하탄 DAC이 입출력단이 풍부한데다 디지털/아날로그 볼륨 성능도 괜찮고 무엇보다 아날로그 출력단에 자신만의 색채가 적은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웰메이드 프리앰프를 투입했을 때만큼의 깊은 무대감과 단단한 밀도감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러던 차에 야마하(Yamaha)의 플래그십 프리앰프 C-5000을 시청했다. 제짝인 플래그십 스테레오 파워앰프 M-5000, 플래그십 스피커 NS-5000에 물려 들었는데, 마치 시원한 생수를 마신 듯했다. 분명히 프리앰프 게인이 보태진 재생음이었는데도 필자의 프리앰프처럼 자신의 존재감을 대놓고 섞어 보내는 일 따위는 없었다. 볼륨 초반에 음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일이 없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볼륨 조작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끄러웠고, 전면에 달린 많은 노브와 후면의 다양한 입출력 단자는 비로소 컨트롤 타워로서 프리앰프의 존재이유를 입증하는 듯했다.
외관과 인터페이스
C-5000은 다양한 컨트롤 노브를 갖춘 풀밸런스 프리앰프다. MM/MC 포노스테이지와 헤드폰앰프까지 내장했다. 우선 외관을 보면 플래그십다운 품격이 넘쳐난다. 사진으로 보면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전면 알루미늄 패널은 물론 각종 컨트롤 노브와 레버의 만듦새가 빼어나다. 특히 볼륨 노브는 안에 볼 베어링이 들어있어 단단하고 정밀한 조작감을 선사한다. 양 측면의 검은색 우드 패널은 실제 유저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미적 포인트. 더욱이 야마하의 자랑거리인 피아노 마감이어서 보는 눈맛도 삼삼하다. 전면 패널 두께는 9mm, 상판은 6mm.
전면부터 본다. 왼쪽에 6.3mm 헤드폰 단자가 있고 그 옆에 헤드폰을 꽂은 상태에서만 작동하는 트림(trim) 셀렉터가 있다. 헤드폰 앰프 게인을 -6dB, 0dB, +6dB, +12dB 중에서 고를 수 있다. 트림 셀렉터 옆에는 위에 베이스, 트레블, 밸런스 노브, 아래에 게인, 출력, 포노 노브가 달렸다. 이중 게인 노브는 말 그대로 프리앰프 게인을 -12dB, -6dB, 0에서 선택할 수 있다. 기존 프리앰프 게인에서 각각의 수치만큼 감쇄시킨다는 뜻으로 보인다. 출력 노브는 후면의 출력단자를 선택할 수 있는데, 여러 파워앰프를 C-5000에 연결해 쓰는 경우 유용할 것이다. 포노 노브는 카트리지에 따라 MM, MC300옴, MC100옴, MC30옴, MC10옴 중에서 고르면 된다.
이들 옆에는 둥근 입력선택 노브가 있다. 포노, 포노 밸런스, 튜너, CD, 밸런스1, 밸런스2, 라인1, 라인2 총 8개다. 밸런스(XLR) 포노입력이 가능한 점이 솔깃하다. 맨 오른쪽 볼륨 노브 밑에는 서브소닉 필터(subsonic filter) 스위치가 눈길을 끈다. LP 재생시 예상치 못했던 초저역 노이즈로 인해 스피커가 고장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볼륨 메커니즘은 야마하에서 정확히 공개하지 않았지만, A-S3000 인티앰프의 경우 뉴재팬라디오(New Japan Radio)에서 설계한 저항 래더 타입의 디지털 볼륨을 쓰고 있다. 이에 비해 MM/MC 포노스테이지는 디스크리트 구성이며, MC 입력신호의 1차 증폭을 위해 별도의 MC 헤드앰프를 투입했다.
후면에는 입출력 단자가 빼곡하다. 왼쪽부터 포노입력단(RCA, XLR), 밸런스 라인입력단(XLR 2조), 언밸런스 라인입력단(RCA 4조), 밸런스 출력단(XLR 1조), 언밸런스 출력단(RCA 2조)이 마련됐다. 밸런스 입력의 경우 위상변환 및 감쇄 스위치가 달린 점이 눈길을 끈다. 출력전압은 밸런스가 2Vrms(감쇄 선택시 1Vrms), 언밸런스가 1Vrms, 레코드 아웃이 200mVrms를 보인다. 전면에 마련된 헤드폰 출력은 32옴 부하시 35mW를 낸다.
설계디자인
우선 언밸런스 입력신호까지 밸런스 신호로 바꿔 처리하는 풀밸런스 설계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게 C-5000의 내부 사진이다. 좌우 채널을 전원부까지 포함해 완전 대칭으로, 그것도 플러스(+)와 마이너스(-) 신호를 똑같이 처리해야 밸런스 앰프인데, C-5000이 바로 그런 점이다. 25VA 용량의 토로이달 트랜스가 2개 투입돼 좌우채널을 각각 담당하고, 미러형 좌우채널 PCB는 신호경로를 짧게 하기 위해 위아래로 포갰다. 소위 접이식(folding-book) 설계로, 위에 보이는 것이 왼쪽 채널 PCB다.
접지 노이즈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전원 공급과정을 플로팅(floating power supply)시킨 점도 야마하의 전매특허. ‘띄워놓다’ ‘부양하다’라는 플로팅(floating) 뜻 그대로, 전원의 음극(-)이 접지에 연결되는 일반적인 앰프 설계와 달리, 음극이 직접 출력소자에 연결돼 접지 루프 노이즈의 영향을 안받게 하는 설계다. 한마디로 스테이지별 접지 전위차로 인한 접지 루프 노이즈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따라서 플로팅 파워서플라이는 마치 배터리처럼 작동하게 된다. 프리앰프 C-5000의 경우, 포노스테이지, 입력 범퍼단, 출력단 각각에 이 플로팅 전원설계가 베풀어졌다.
이밖에 회로의 전압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부 섀시를 구리로 도금한 점, 자속누설과 이로 인한 음질저하를 막기 위해 전원트랜스를 구리 도금 케이스에 집어넣은 점, 전원트랜스에서 빠져나온 전선이 12AWG로 굵은데다 나사 조임 방식으로 전원부에 연결돼 임피던스를 낮춘 점이 눈길을 끈다. 황동 재질의 대형 풋(foot) 4개가 진동 컨트롤의 마지막 보루로 나섰는데, 스파이크나 스크래치 가드 베이스를 장착할 수 있다.
한편 C-5000이 다양한 컨트롤 노브가 있는 만큼 이들이 언제 입력신호를 건드리는지도 궁금했는데, 야마하가 밝힌 C-5000 흐름도를 보니 비로소 이해가 갔다. 우선 입력신호는 입력 셀렉터를 통해 선택되는데, 포노 신호의 경우 미리 MC 헤드앰프나 포노스테이지를 통과한 뒤 입력 셀렉터를 통과하는 점이 흥미롭다. 이후 신호는 버퍼앰프로 들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언밸런스 입력신호는 무조건 밸런스 신호로 컨버팅된다. 물론 풀밸런스 프리앰프답게 +,- 신호 각각을 증폭 및 컨트롤하기 위해서다. 이 1차 버퍼앰프에서 이뤄지는 게인은 18.6dB이지만, 감쇄 스위치를 선택한 밸런스 신호의 경우 12.5dB로 제한된다. 이후 신호는 마침내 볼륨단을 통과하고 이후 트레블과 베이스 톤 콘트롤, 서브소닉 필터를 거친 후 최종 버퍼앰프(게인 1.58dB)를 거쳐 출력된다.
시청
시청에는 처음 언급한 대로 야마하의 플래그십 스테레오 파워앰프 M-5000과 스피커 NS-5000을 동원했다. M-5000은 8옴에서 100W, 4옴에서 200W를 내는 풀밸런스 듀얼모노 앰프다. NS-5000은 1.25인치 돔 트위터, 3.25인치 돔 미드레인지, 12인치 우퍼를 단 3웨이 스피커로, 6옴에 감도 88dB, 주파수응답특성은 26Hz~40kHz(-10dB)를 보인다. 소스기기는 루민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D2를 활용했다.
총평
앰프 내부 사진을 보면 기분까지 좋아지는 브랜드가 꽤 있다. 마치 하늘에서 바라본 고층빌딩 숲을 보는 것처럼 가지런히 구획된 기판과 부품들에서부터 신뢰감이 생긴다. 대충 이어붙인 배선이나 각도가 들쭉날쭉한 커패시터나 저항을 보면 해당 앰프로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야마하 C-5000은 음악을 듣기 전에도 정리정돈이 잘 된 깨끗한 음, 입체감이 풍부한 무대가 펼쳐질 것 같았다. 실제로도 C-5000은 어느 곡을 만나서도 담대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양 사이드 피아노 마감의 우드 패널처럼 품격있게 연주했다. 여기에 포노스테이지와 헤드폰 앰프를 포함한 풍부한 입출력과 다양한 인터페이스는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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