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스민 스피커 디자이너 피터 코모의 숨결
요즘 절감하고 있는 것이 앰프도 그렇고 스피커도 그렇고 연륜은 쉽게 흉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실물과 함께 소리를 들어본 댄 다고스티노의 플래그십 모노블럭 파워앰프 Relentless(릴렌트리스)는 크렐부터 이어져 온 천재 엔지니어 댄 다고스티노의 연륜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걸작이었다. 지난해 등장한 PMC의 플래그십 스피커 Penestria(페네스트리아)는 또 어떤가. ATL, TMD 등 엔지니어 피터 토마스의 번뜩이는 영감과 곰삭은 연륜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최근 시청한 영국 미션(Mission)의 스피커 QX-1와 QX-4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작사의 연륜을 느꼈다. 2중 링 트위터, 페이즈 플러그가 없는 펄프+아크릴 콘 미드우퍼, 미드우퍼 유닛을 둘러싼 빗살 형상의 트림, 많은 슬롯이 난 후면의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 캐비닛 위아래의 알루미늄 플레이트 등 온갖 창의가 가득했다. 신생 제작사라면 감이 엄두도 못낼 그런 디자인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이들이 내건 가격과 소리였다. 작은 북쉘프 QX-1은 40만원대, 플로어스탠딩 QX-4는 120만원대다. 자작을 한다 해도 불가능한 가격대다. 게다가 QX-1이 선사한 당당한 음, QX-4가 들려준 넉넉한 사운드는 가성비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필자가 이 미션이라는 제작사를 좀더 깊게 살펴보게 된 이유다.
미션과 피터 코모
미션은 리즈대(Leeds University) 출신의 엔지니어 겸 사업가 파라드 아지마(Farad Azima)가 1977년 영국 캠브리지(Cambridge)에 설립했다. 1978년에 내놓은 2웨이 북쉘프 스피커 770은 지금도 70년대 스피커의 아이콘으로 꼽힐 만큼 완성도 높은 만듦새와 사운드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도 스피커는 물론 앰프, 사이러스(Cyrus) 레이블로 CD플레이어를 생산하던 미션은 2005년 IAG(International Audio Group)에 인수됐다. 현재 IAG에는 미션을 비롯해 와피데일, 쿼드, 리크, 캐슬, 오디오랩, 럭스만 등이 한솥밥을 먹고 있다.
미션 히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피터 코모(Peter Comeaux)다. 대표적인 현대 스피커 엔지니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1980년대에 이미 헤이브룩(Heybrook)이라는 스피커 제작사를 설립, 1983년 HB1이라는 명작을 내놓았다. 2웨이 스탠드마운트 타입 HB1은 1983~85년 3년 연속 영국 왓하이파이 스피커 부문상을 수상했다.
헤이브룩을 이끌던 피터 코모가 ‘음향디자인 디렉터’로 미션에 합류한 것은 1999년. 이듬해 그가 설계한 780 스피커는 2000, 2001년 왓하이파이 어워드를 수상했고, 2001년에 설계한 782는 EISA 올해의 스피커로 꼽혔다. 이중 780은 지금의 미션 스피커를 상징하는 유닛 배치(미드우퍼가 위, 트위터가 아래)를 처음 시도한 스피커로 기억해둘 만하다.
이어 2003년에는 Volare V63이 EISA 올해의 스피커로 선정됐고, 2004년에는 Elegante E8로 홈시네마 초이스 어워드를 수상했다. 거의 매해 그가 설계한 미션 스피커에 유럽 평단의 관심이 쏠렸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Elegante E8의 유닛 배치. 가운데 트위터를 사이에 두고 위아래에 미드우퍼가 배치된 3유닛 가상동축 설계로, 이는 지금도 3유닛이 투입되는 미션 스피커가 즐겨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스피커 디자이너로서 피터 코모의 진정한 역량이 빛난 작품은 2001년에 출시된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Pilastro(필라스트로)로 보인다. 한 개 무게가 154kg, 페어당 출시 가격이 3500만원에 달했던 이 스피커는 6.5인치 미드레인지와 링 트위터를 예의 가상동축으로 배치하고 측면에 8인치 우퍼 4발, 8인치 패시브 라디에이터 6발을 장착한 대형기였다. 25Hz~48kHz(-3dB)라는 광대역 주파수응답특성을 보이는 필라스트로는 ‘미션=중저가 스피커 브랜드’ 이미지를 여지없이 깨버린 역작이다.
이후 피터 코모는 2005년 6월 미션이 IAG에 인수되기 직전 퇴사했다가 2009년 IAG에 합류, 현재까지 어쿠스틱 총괄 디자이너로 재직 중이다. 한마디로 미션, 와피데일, 쿼드, 캐슬, 오디오랩의 모든 음향 부문에 대한 설계 및 관리 감독을 도맡고 있는 것. 때문에 이번 시청기 QX-1, QX-4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미션 스피커는 와피데일과 마찬가지로 IAG 중국 선천 공장에서 전량 제작된다.
QX 시리즈의 탄생
QX 시리즈는 지난 2017년 11월 엔트리 레벨 LX 시리즈의 상위 라인업으로 출시됐다. 북쉘프 2종(QX-1, QX-2), 플로어스탠딩 3종(QX-3, QX-4, QX-5), 센터(QX-C), 서라운드(QX-S), 서브우퍼(QX-12), 총 8개 모델이 포진했다. 북쉘프와 플로어스탠딩 모델의 경우 3웨이인 QX-5만 빼놓고 모두 2웨이 구성이다. QX 시리즈 위에는 MX 시리즈가 있다.
QX 시리즈에는 미션의 대표 기술들과 디자인이 거의 빠짐없이 투입됐다. 우선 미드우퍼/미드레인지 유닛 밑에 트위터를 배치하는 IDG(Inverted Driver Geometry) 포맷. 미션에서는 IDG 포맷이 전통적인 트위터-미드우퍼/미드레인지 포맷보다 타임 얼라인먼트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트위터를 밑에 뒀을 때 각 유닛의 주파수가 청취자 귀에 도달하는 시간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위터의 경우 돔 진동판이 링(ring) 형상인 링 트위터를 채택했다. 미션에 따르면 이 링 트위터에서는 일반적인 돔 타입 트위터의 고질적 문제인 진공효과(cavitation effects)가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 링을 한 겹 더 두름으로써 방사면적을 더 넓혔다고 한다. 링 재질로 직조 텍스타일(woven textile)을 택한 것은 진동판의 강성을 위한 설계다.
미드우퍼 유닛에도 미션만의 설계철학이 녹아있다. 미션에서 다이아드라이브(DiaDrive) 시스템이라고 명명한 이 미드우퍼 유닛을 자세히 보면,
1) 완만한 곡면 콘과
2) 펄프도 아니고 플라스틱도 아닌 진동판 재질,
3) 이 유닛 둘레의 빗살 모양 트림
이 눈에 띈다. 페이즈 플러그 없이 완만한 곡면 형상을 취한 것은 중역대와 저역대를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서, 소프트 펄프와 아크릴 섬유 혼합재료로 진동판을 만든 것은 깨끗하고 선명한 중역대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빗살(comb-tooth) 모양 트림은 2가지 역할을 한다. 우선 배플과 유닛을 체결하는 볼트(나사)와, 진동판을 잡아주는 서라운드(엣지)를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해준다. 미션 QX 시리즈가 하나같이 미니멀하고 매끈한 외모를 갖춘 것은 이러한 볼트와 엣지가 미드우퍼 유닛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트림에 빗살 모양으로 슬롯을 낸 것은 물론 서라운드 움직임으로 인한 공기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끝으로 후면 포트와 캐비닛 디자인이다. 후면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에는 전면 미드우퍼의 빗살 트림처럼 여러 슬롯이 나 있는데, 이는 미드우퍼 후면파의 공기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고 소위 포트 노이즈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캐비닛 측면 4개 모서리가 둥글게 마감된 것은 회절(diffraction)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 캐비닛 위아래에 알루미늄 플레이트를 단 것은 공진을 줄임으로써 착색과 왜곡을 줄이기 위해서다. 캐비닛 마감은 블랙우드, 로즈우드, 월넛, 화이트, 4가지다.
QX-1, QX-4 개별탐구
QX-1은 QX 시리즈에서 가장 작은 북쉘프 스피커다. 같은 2웨이 북쉘프인 QX-2가 6.5인치 미드우퍼인데 비해 QX-1은 5인치 미드우퍼를 썼다. 내부용적도 차이가 나는데 QX-2가 13.5리터, QX-1이 8.1리터다. 하지만 소프트 펄프와 아크릴 섬유를 혼합해 진동판으로 쓴 점과 트위터로 1.5인치 텍스타일 링 트위터를 쓴 점은 동일하다.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감도는 87dB, 주파수응답특성은 55Hz~24kHz(-3dB). 크로스오버는 2.4kHz에서 끊었다. 무게는 6.3kg.
QX-4는 2웨이, 3유닛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가운데 링 트위터를 사이에 두고 동일한 미드우퍼 유닛이 위아래로 배치된 전형적인 가상동축 포맷이다. 하지만 하나의 미드우퍼가 중저역대 전부, 다른 하나의 미드우퍼가 특정 저역대만 커버하는 2.5웨이 방식이 아니라, 심플한 2웨이 구성인 점이 눈길을 끈다. 때문에 두 유닛이 크로스오버 포인트인 2.2kHz 이하 중저역대를 모두 커버한다. 주파수응답특성은 36Hz~24kHz(-3dB).
QX-1과 비교해보면 QX-1의 후면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가 1개인데 비해 QX-4는 2개로 늘어났다. 두 포트 사이의 거리가 비교적 먼 점도 눈길을 끈다. 스피커 케이블 연결을 위한 바인딩 포스트는 QX-1의 싱글 와이어링에서 바이와이어링으로 늘어났다. 역시 유닛수와 용적(48리너)이 있는 만큼 최대 바이앰핑까지 고려한 설계다.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감도는 95dB, 무게는 21kg.
같은 플로어스탠딩 모델과 비교해보면, QX-3은 미드우퍼가 5인치짜리이며(2웨이. 2.0kHz), QX-5는 6.5인치 미드레인지 2발에 12인치 우퍼가 1발 추가돼 3웨이(180Hz, 1.8kHz) 구성을 취했다. 주파수응답특성은 QX-3이 42Hz~24kHz(-3dB), QX-5가 32Hz~24kHz(-3dB)를 보인다.
시청
시청을 위한 세팅은 너무나 간단했다. 프라이메어의 네트워크 앰프 I15와 미션 QX-1, QX-4를 연결하면 끝이다. I15는 하이펙스(Hypex) 클래스D 증폭 모듈(UcD102)을 써서 8옴에서 60W, 4옴에서 100W를 낸다. 또한 네트워크 모듈이 기본 장착됐기 때문에 크롬캐스트, 스포티파이, 블루투스 재생이 가능하다. QX-1, QX-4 모두 최소 권장 앰프출력이 25W이기 때문에 I15와 매칭은 충분해 보인다. 시청시에는 크롬캐스트 환경에서 타이달 음원을 들었다.
총평
40만원대, 120만원대 스피커와 보낸 즐거운 시청이었다. QX-1의 똘망똘망하고 당찬 소리, QX-4의 양감 풍부하고 숙성된 소리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하다. 개인적으로는 QX-4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지만, QX-1은 막내라는 포지션과 덩치를 배반하는 위협적인 사운드를 들려줬음을 강조하고 싶다. 미션의 그 빛나는 42년 역사, 필라스트로(Pilastro)라는 걸작 스피커를 만들어낸 피터 코모의 노하우가 어김없이 이 QX 시리즈에도 베풀어졌음을 확인했다. 허투루 만든 구석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탄탄한 만듦새와 디자인은 어쩌면 보너스. 선량한 음악 애호가들에게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