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설계, 실화인가 싶은 가성비 사운드

조회수 2019. 3. 21. 10:17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Definitive Technology D11 북쉘프 스피커

▲ 후면에도 유닛이 장착된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의 바이폴라 슈퍼타워 스피커

스피커를 어떻게 설계했나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있다. 가끔씩 등장하는 360도 방사형(무지향) 스피커나 후면에도 유닛이 달린 바이폴라(bipolar) 스피커는 그 파격의 미가 돋보이고, 유닛 하나로 전 대역을 커버하려는 풀레인지 스피커는 일종의 소확행처럼 느껴진다. 혼 스피커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빈티지의 매력이, 정전형 스피커에서는 혈혈단신 이단아의 결기가 넘쳐난다.

뿐만 아니다. 매지코나 YG어쿠스틱스는 인클로저와 진동판을 모두 메탈로 꾸몄고, 포칼 유토피아 시리즈나 윌슨오디오는 각 챔버를 독립시켰으며, 비비드오디오는 테이퍼드 튜브를 통해 후면파 에너지의 소멸을 집요하게 추구했다. 저역품질 강화를 위한 PMC의 ATL, 통울림을 적극 활용한 하베스나 키소 어쿠스틱스의 씬월(thin-wall) 설계도 흥미롭다. 아, 탄노이나 KEF의 유구한 동축 유닛도 스피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설계다.


이번 시청기인 미국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Definitive Technology)의 D11도 평범하기를 거부한 스피커다. 미드우퍼와 축이 어긋난 오프셋 트위터, 트위터와 미드우퍼 가운데에 달린 독특한 형상의 웨이브가이드, 상판 패브릭 그릴에 숨은 패시브 라디에이터 등 북쉘프 스피커에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을 담으려 했을까 싶을 정도로 창의가 넘쳐난다. 그런데도 인터넷을 찾아보니 실구매가가 100만원이 안된다. 소리는? 개인적으로는 지금 당장 서브로 들여놓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사운드를 뽐냈다. 특히 저역의 양감과 타격감이 덩치와 스펙을 배반했다.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와 디맨드(Demand) 시리즈

▲ (좌측부터) D7 , D9 , D11 스피커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는 현재 사운드 유나이티드(Sound United)를 모회사로 둔 하이파이 스피커 전문 제작사다. 같은 계열사로는 보다 대중적인 스피커 브랜드인 폴크 오디오(Polk Audio)가 있고 일렉트로닉스 브랜드로는 데논(Denon)과 마란츠(Marantz), 클라세(Classe)가 있다. SU는 현재 북미 스피커 시장 점유율 1위(50%)를 기록하고 있다.

▲ 데피니티브의 설립자, 샌디 그로스 (Sandy Gross)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는 1972년 폴크 오디오를 설립했던 엔지니어 샌디 그로스(Sandy Gross)가 1990년에 설립했다. 스피커 후면에 유닛을 단 바이폴라 설계와, 액티브 서브우퍼를 아예 스피커 안에 집어넣은 디자인으로 특히 홈시네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돌비 애트모스 및 DTS:X, Auro-3D 재생을 위한 하이트(height) 스피커 모듈도 이들의 대표작 중 하나다. 필자가 보기에 디맨드(Demand) 시리즈의 상단 패시브 라디에이터는 이러한 하이트 스피커 모듈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디맨드 시리즈는 지난해 1월 출시됐다. 모두 2웨이 스탠드마운트 타입인데, 큰 것부터 D11, D9, D7이다. 바닥면을 보면 전용 스탠드 체결을 위한 나사구멍이 나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훨씬 고급스럽다. 저렴한 가격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전면 샌드 블라스트 마감의 알루미늄 배플이 상당히 매끄러운 감촉을 선사하는 덕분이다. MDF 인클로저도 5겹 하이글로스 마감이라 일단 보는 맛이 좋다.

바인딩 포스트(D11, D9 바이 와이어링, D7 싱글 와이어링)는 후면 아랫쪽에 안으로 들어간 플레이트 위에 장착됐으며 모두 금도금됐다. 그 밑에는 ‘Designed In California’라고 보란 듯이 적혀 있다. 캘리포니아는 SU 및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 본사가 있는 곳이다. 바인딩 포스트 위에는 ‘Assembled In China’라고 돼 있다. 디맨드 시리즈가 만듦새와 사운드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D11 설계디자인 : 오프셋 트위터, 웨이브가이드, 더블 서라운드 미드우퍼, 패시브 라디에이터

D11은 2웨이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다. 1인치 알루미늄 돔 트위터, 6.5인치 폴리프로필렌 콘 미드우퍼, 그리고 캐비닛 윗면에 타원형 패시브 라디에이터가 장착됐다. 따라서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없다. 전면 배플은 알루미늄, 인클로저는 MDF. 공칭 임피던스는 8옴, 감도는 90dB, 주파수응답특성은 61Hz~22kHz(-3dB)를 보인다. 음압을 무시한 최대 재생주파수 대역은 48Hz~24kHz에 이른다. 폭은 18.42cm, 높이는 33.02cm, 안길이는 31.75cm로 안길이가 폭보다 훨씬 깊다.

고역을 책임지는 것은 알루미늄 돔 트위터.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에서는 진동판 재질로 알루미늄을 쓴 것에 대해 가볍고 변형제작이 쉬운데다 강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직접 알루미늄을 녹여 진동판을 제작한다는 것. 이 과정을 통해 보다 가볍고 튼튼한데다 높은 성능을 보이는 알루미늄 돔 트위터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오프셋(offset) 배치라는 점이다. 미드우퍼 중심축을 기준으로 트위터가 바깥쪽으로 5도 빗겨난 곳에 장착된 것이다. 이는 트위터에서 나온 고역 주파수가 전면 배플 표면에 반사돼 음을 교란, 왜곡시키는 회절(diffraction) 현상을 줄이기 위한 설계다. 유닛과 배플 모서리 사이의 거리가 동일할수록 회절은 더 많이 일어난다. 오프셋 트위터를 안쪽에 둘 것인지, 바깥쪽에 둘 것인지는 제작사마다 혹은 유저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는 바깥쪽을 선택했다. 때문에 후면에 L, R 표시가 된 스피커를 제대로 설치하면 트위터는 모두 바깥쪽을 향하게 된다.

트위터와 미드우퍼 가운데에 장착된 두 웨이브가이드도 주목할 만하다. 트위터 앞에 붙은 것은 ‘20/20 웨이브 얼라인먼트 렌즈’(Wave Alignment Lens), 미드우퍼 앞에 주름진 손잡이 모양으로 부착된 것은 ‘리니어 리스폰스 웨이브가이드’(Linear Response Waveguide)라고 명명됐다. 트위터 렌즈는 보다 디테일하고 소프트한 이미지 형성은 물론 스위트 스폿에서 벗어나도 선명한 음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미드우퍼 웨이브가이드는 중저음의 균등한 확산을 돕는다.

그런데 미드우퍼 웨이브가이드 아래쪽을 자세히 보면 소프트 재질의 작지만 도툼한 서라운드가 둘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가 ‘BDSS’(Balanced Double Surround System)이라고 명명한 이중 서라운드(엣지) 기술이다. 즉, 바스켓과 진동판을 연결해주는 바깥쪽 서라운드 말고도 안쪽에 또 하나의 서라운드를 투입해 진동판의 안정적인 움직임과 공진을 제거케 한 것이다. 진동판에 생긴 쓸데없는 공진을 추가된 서라운드를 통해 소멸시키는 원리다.

끝으로 D11에 투입된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의 창의는 패시브 라디에이터다. 패브릭 그릴이 붙박이라서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인터넷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상판을 거의 덮어버릴 정도로 큰 타원형 패시브 라디에이터다. 6 x 9인치 크기의 타원형 모습인 것은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가 슬림한 인클로저 형상을 유지하기 위해 즐겨 채용하는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폭보다 안길이가 더 긴 D11의 특징 때문이기도 하다. D11 폭이 18.42cm, 안길이가 31.75cm인데, 라디에이터 짧은 면이 15.24cm(6인치), 긴 면이 22.86cm(9인치)인 것을 보면 상단 거의 전부를 이 패시브 라디에이터가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시에 느꼈던 저역의 풍부한 양감과 단단한 질감은 바로 이 넓은 패시브 라디에이터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시청

시청에는 오렌더의 DAC 내장 네트워크 뮤직서버 A100, 록산의 인티앰프 Blak을 동원했다. Blak은 블루투스 스트리밍과 USB DAC, MM 포노스테이지, 헤드폰 출력단을 내장한 솔리드 스테이트 인티앰프. 클래스AB 증폭으로 8옴에서 150W, 4옴에서 230W를 낸다. 시청은 A100의 내장 DAC을 활용했으며, 주로 오렌더 앱을 통해 타이달(Tidal) 음원을 들었다.

Kacey Musgraves ‘Space Cowboy’(Golden Hour)
대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같은 소리가 난다. 풍성한 저역, 광대역한 재생, 많은 음수, 단단한 에너지감이 우선 눈에 띈다. 이런 음들을 밀어내는 록산 Blak 앰프도 처음 접하는 것이지만 꽤 괜찮은 앰프 같다. 두텁고 묵직하게 스피커를 밀어준다는 느낌. 하여간 이 곡에서는 D11 크기를 훨씬 뛰어넘는 에너지감에 깜짝 놀랐다. 이어 들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Sweetner’에서도 드럼의 파워가 장난이 아니다. 빠른 곡에서도 능숙하게 올라타는 리듬감 또한 발군. 음이 얇지 않으면서도 풋워크가 굼뜨지 않은 점도 마음에 든다. 한마디로 젊은 세대를 위한 스피커인 것 같다. 피처링한 패럴 윌리엄스가 자신의 자리를 명확하게 지키는 모습도 보기 좋다. 하나하나 단단한 음, 흐물거리지 않고 탄력감이 뛰어난 음 등 매력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Andris Nelsons, Boston Symphony Orchestra ‘Shostakovich Symphony No.5’(Shostakovich Under Stalin’s Shadow)
2웨이 북쉘프가 이 대편성곡을 만나서도 눈 하나 깜빡 안한다. 당당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섬세한 해상력을 갖췄다. 스탠드마운트 타입인 만큼 이미징과 사운드스테이징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무대를 낮게 펼쳐주는 능력도 빼어나다. 통울림을 활용한 스피커라기보다는 유닛 특성과 위를 향한 패시브 라디에이터 설계, 오프셋 트위터 등 유닛과 어레이 기술로 승부를 건 스타일이다. 고음이 맑고 깨끗하며 투명하게 잘 뻗는 모습이 매끄럽게 마감된 전면 알루미늄 배플을 닮았다. 4악장 막판 2분에서는 음들이 ‘팡팡’ 불꽃놀이처럼 터져나온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팀파니의 추임새가 풀레인지 시청실의 공기를 뒤흔든다. 물론 ‘진짜’ 대형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의 파괴력이나, 하이엔드 베릴륨 트위터 혹은 카본이나 컨티늄 콘 미드우퍼의 섬세함까지는 아니다. 팀파니 막판 8연타가 좀더 강력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시청실이 비교적 넓고, 150W 인티앰프였으며, 무엇보다 100만원이 안되는 북쉘프 스피커임을 감안하면 지금의 소리는 충분히 귀를 의심케 할 만하다.
Hans Zimmer ‘Aggressive Expansion’(Dark Knight)
처음부터 극장사운드가 터져나온다. 여기서 잠깐 스톱. D11에 워낙 믿음이 가서 ‘어디 이건 어때?’ 심정으로 볼륨을 마음껏 올려 처음부터 다시 들었다.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파워와 펀치가 작렬한다. 시청실 어느 구석에 액티브 서브우퍼가 숨어있나 싶을 정도로 ‘어이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곡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시청실 공기마저 음침하게 변한 점도 놀랐다. 덩치와 가격만 보고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 코 다칠 스피커다. 스피커에만 좀더 집중해보면, 입자감이 거칠지 않고 보드라운 점, 무대를 안쪽 깊숙하게 펼쳐내는 능력, 음상이 또렷하게 맺히는 모습이 돋보인다. D11은 기본적으로 음의 이탈감이 좋은데다 잘 달리고 잘 멈추는 스피커다.
The New Miles Davis Quintet ‘Just Squeeze Me’(Miles)
MQA 192kHz 타이달 음원인 만큼, 빽빽한 음의 밀도가 더 늘었다. 무대 정중앙에 서 있는 트럼펫, 좁은 관을 통과해 나온 그 까칠한 음색이 제대로 느껴진다. 그 뒤에 베이스, 오른쪽 뒤에 드럼, 이 같은 레이어감이 대단하다. 트럼펫의 고역은 예술가 기질을 타고난 삼촌처럼 음들을 토해내고, 테너 색소폰은 등 넓은 아버지처럼 포근한 음들로 필자를 감싼다. 악기들의 이 같은 텍스처를 2웨이 유닛과 패시브 라디에이터로 구현한 점이 놀랍다. 이 패시브 라디에이터 맛에 길들여지면 보통의 베이스 리플렉스 타입은 물렁물렁해서 심심할 것 같다. 스피커의 전체 해상력도 이 패시브 라디에이터, 그것도 위를 향한 패시브 라디에이터가 한껏 끌어올린 것 같다.
Turtle Creek Chorale, Women’s Chorus of Dallas, ‘Pie Jesu’(John Rutter Requiem)
지금까지 인티앰프 볼륨노브 기준 11시 방향이었는데 1시 방향으로 좀더 음량을 키웠다. 홀톤과 코러스의 울림이 장난이 아니다. 소프라노가 이들 합창단과 약간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있음이 분간된다. 오프셋 트위터의 뛰어난 음장 및 음상 형성능력 덕분일 것이다. 이어 사운드스테이지 빈 공간을 구석구석 채우는 하프나 플루트 같은 오케스트라 악기들. 남성 합창단원들의 선굵은 목소리는 이 곡의 백미이며, 여성합창단원들은 천사가 있다면 이런 목소리였을까 싶을 정도로 포근하기만 하다. D11은 정말 코러스 전용 스피커라 해도 될 것 같다. 이어 들은 ‘Santus-Benedictus’는 퍼커션의 존재감이 마치 금가루를 뿌린 듯했고, 파이프 오르간도 식상한 표현이긴 하지만 바닥을 기었다. 끝으로 들은 ‘Agnus Dei’. 멀리서 슬금슬금 음습해오는 팀파니가 도둑 고양이 같다. 남성합창단원들의 탄식 가득한 코러스에서는 입술 부딪히는 소리까지 들린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D11을 시청하면서 메모에 가장 많이 썼던 단어가 ‘실화냐?’였다. 아무리 편견 없이 리뷰용 스피커를 대한다고 해도 그 가격표가 뇌리에 박혀있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D11은 필자의 이 몹쓸 선입견을 여러 번 박살내버렸다. 누가 들어도 깜짝 놀랄 만한 저역의 양감과 밀도감, 표현력, 섬세한 이미징, 드넓은 사운드스테이징에 몇번이고 ‘실화’ 운운했다. 캐비닛과 패브릭 그릴의 마감도 어디 흠잡을 데가 없다. 물론 음이 좀더 예쁘고 고우며 배경이 좀더 어둠껌껌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또한 웨이브가이드의 만듦새가 좀더 고급스러웠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하지만 D11의 가격을 감안하면 욕심일 뿐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들여놓고 싶은 스피커다.


추천 기사
독창적 설계로 가성비 음질을 뽐내다 - Definitive Technology D11, D9, D7 Bookshelf Speakers
미국 뉴욕의 상징 트리니티 교회가 선택한 스피커 - 데피니티브 테크놀로지(Definitive Technology)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