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a 연구소 3편, 하이엔드를 시작하고 싶다면
한 브랜드의 인티앰프 3종을 연이어 리뷰하는 것은 설레면서도 긴장되는 일이다. 일단 가격차에 따른 음질변화가 확연한지 여부가 오디오파일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실제 구매를 앞두고 가격과 퍼포먼스 사이에서 고민하다 하얗게 밤을 지새운 불면의 밤들! 하지만 리뷰어 입장에서는 3가지 모델의 설계디자인과 음질 사이의 인과관계를 스스로 납득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비싸니까 무조건 더 소리가 좋다? 리뷰어는 결코 광고 팸플릿을 만드는 게 아니다.
영국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레가(Rega)의 인티앰프 ‘Elicit-R’을 집중 시청했다. 엔트리 모델 ‘Brio’, 중견 ‘Elex-R’에 이은 상급기다. 필자가 보기에 이 ‘Elicit-R’이야말로 레가 색채를 간직한 실질적인 인티앰프 최상위 기종으로 보여진다. 플래그십 ‘Osiris’가 있지만 설계방식이나 출력,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면에서 ‘Osiris’는 아예 대놓고 다른 길을 갔다.
하프사이즈의 ‘Brio’는 똘망한 구동력이 돋보인 50W(이하 8옴 기준) 앰프였다. 욕심이 큰 오디오파일만 아니라면 일반 가정에서 이보다 더 비싸고 중후장대한 앰프가 과연 필요할까 싶었던 모델이다. 게다가 MM 포노입력단 성능이 아주 괜찮았다. 이에 비해 ’Elex-R’은 72.5W로 늘어난 출력답게 보다 안정적이고 넉넉한 구동력이 단번에 느껴졌다. 음의 입자감도 더 부드러웠고 각 음들의 이음매도 더 매끄러웠다. 한마디로 ‘실키’했다.
그러면 105W의 ‘Elicit-R’은? ‘Brio’와 ‘Elex-R’과는 음을 들려주는 방식이나 실제 귀에 와닿는 촉감 자체가 크게 달랐다. 출력 증가에 따른 구동력이나 다이내믹스의 확장 같은 ‘사이즈’보다는 이러한 ‘질감’쪽에서 변화가 더 컸던 것이다. 일단 두 동생 모델을 관통했던 그 수더분한 사운드가 결코 아니었다. 이보다는 좀더 기계적이고 숫자적인 정밀함에 포커싱을 맞춘 듯했다. ‘Elicit-R’에게서 세밀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가장 큰 이유다.
'Elicit-R’은 또한 음원 소스에 담긴 정보는 물론 그 연주와 녹음 수준까지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소스가 형편없으면 가차없이 내뱉었고, 소스가 훌륭하면 더할나위없이 그윽한 소리를 들려줬다. 그만큼 ‘Brio’나 ‘Elex-R’에 비해 자기 색채가 적고 해상력이 높은, 그래서 특히 소스기기 매칭에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그런 앰프였다. 이는 결정적으로 ‘Elicit-R’의 입력단과 전압증폭단, 볼륨단이 두 동생모델 때보다 적극적으로 재생음에 관여한 결과로 보여진다.
Elicit-R 히스토리, 외관, 스펙
이번 시청기인 ‘Elicit-R’의 오리지널 버전은 1990년에 나온 80W 출력의 ‘Elicit’다. 턴테이블과 톤암, 카트리지로 시작한 레가가 처음 작정하고 만든 레퍼런스급 인티앰프가 바로 ‘Elicit’였다. 섀시 오른쪽 상판이 조개껍집을 닯았다고 해서 ‘클램쉘’(clamshell)로 불린 이 앰프는 패시브 타입의 프리앰프단, MOSFET을 투입한 출력단 등 DNA 자체가 달랐다.
이후 출력을 85W로 키운 ‘Elicit II’(마크2 버전)가 18년만인 2008년에 나왔다. 섀시 디자인도 바뀌었지만, 무엇보다 ‘일본 산켄(Sanken)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 컴플리멘터리 달링턴 회로 출력단’이라는 레가 고유설계가 처음 반영된 ‘Elicit’ 모델이었다. 프리앰프단 역시 FET 전압증폭과 어테뉴에이터를 통한 게인 조절 방식으로 바뀌었다.
‘Elicit-R’은 2013년에 나왔다. 섀시를 비롯해 볼륨 노브, 버튼, 상판 방열 디자인을 확 바꾸고 처음으로 리모컨까지 갖췄다. 출력은 105W로 늘어났고, 게인도 28dB에서 31.6dB로 늘어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토로이달 전원트랜스와 필터링 커패시터 용량도 대폭 커졌다. ’Elicit-R’은 영국의 오디오전문지 왓하이파이로부터 ‘2014, 2015, 2016 베스트 스테레오 앰프’로 꼽혔다.
외관부터 본다. 언뜻 보기에는 ‘Elex-R’과 비슷하지만, 볼륨 노브 오른쪽에 버튼 3개(뮤트, 다이렉트, 레코드)가 마련된 점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상판 양 옆에 길다란 방열 슬롯이 보이는 점도 다르다. 무게는 ‘Elex-R’이 10.8kg, ‘Elicit-R’이 13kg을 보인다. 덩치는 432mm(폭), 325mm(안길이), 82mm(높이)로, ‘Elex-R’(430mm(폭), 320mm(안길이), 80mm(높이))보다 살짝 더 크다.
후면을 보면 가장 왼쪽의 입력단자 2조(RCA)를 포노 전용으로 설계한 점(Input 1)이 획기적이다. 한 조는 MM 신호 다이렉트 입력용, 다른 한 조는 별도 포노 스테이지를 통해 들어온 MM/MC 신호 입력용이다. 포노 신호를 다루는 만큼 다른 입력단자(Input 2~4)보다 노이즈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썼다고 한다. 레코드 아웃, 프리앰프 아웃 단자 외에 내장 프리단 및 볼륨단을 건널 뛸 수 있는 다이렉트 입력단과 레코드 입력단자가 추가된 점도 눈길을 끈다.
‘Elicit-R’은 기본적으로 입력 및 전압증폭단(프리앰프부)을 디스크리트 FET로 설계하고, 드라이브 및 출력단(파워앰프부)을 바이폴라 트랜스지스터로 구성한 클래스AB 인티앰프. 특히 출력단을 컴플리멘터리 달링턴 회로로 짜서 8옴에서 105W, 6옴에서 127W, 4옴에서 162W를 낸다. 입력감도는 라인입력시 196mV(임피던스 10K옴), 포노입력시 2mV(임피던스 47K옴), 다이렉트 입력시 760mV(임피던스 50K옴)를 보인다.
Elicit-R 설계디자인
필자가 보기에 ‘Brio’나 ‘Elex-R’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Elicit-R’의 특징은 프리앰프부 설계다. 입력 및 전압증폭단(프리앰프부)을 디스크리트 FET 소자로 구성하고, 어테뉴에이터를 통해 음량은 물론 앞단의 게인까지 조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FET 프리앰프부 뒷단에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컴플리멘터리 달링턴 회로로 짠 출력단을 결합시킨 게 ‘Elicit-R’의 핵심이다.
사실 FET 입력 및 증폭단은 SNR을 확보하고 음압레벨에 따른 임피던스 변화를 줄일 수 있어 많은 제작사들이 즐겨 채택하는 프리앰프 설계방식이다. 이에 비해 ‘Brio’와 ‘Elex-R’은 프리앰프부에서 일체 증폭이 일체 이뤄지지 않는 패시브 타 ‘먼저입. 볼륨 및 전압증폭 방식 역시 두 모델에서는 음악신호의 입력레벨을’ 조정한 후 뒷단의 OP앰프를 통해 ‘사후’ 전압증폭이 이뤄진다.
참고로 FET(전계효과트랜지스터. Field Effective Transistor)는 입력 임피던스가 높아 주로 앰프 입력단 및 전압증폭단에 즐겨 채용되는 소자. 또한 잔류 노이즈가 매우 적어 혼변조 일그러짐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도 큰 장점이다. 게이트(G)에 전압을 가해 이 크기에 따라 소스(S)에서 드레인(D)으로 흐르는 전류를 증폭하는 점이 3극 진공관을 빼닮았다.
그러면 ‘Elicit-R’을 비롯해 수많은 인티앰프가 ‘FET 프리앰프부 + 바이폴라 파워앰프부’ 구성인 이유는 뭘까. 이는 FET은 입력 임피던스가 매우 높아 소스기기로부터 입력신호를 더 많이 끌어올 수 있고, 바이폴라는 출력 임피던스가 매우 낮아 스피커에 더 많은 증폭신호를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유명한 ‘작게 주고 크게 받는다’는 입출력 임피던스 공식을 떠올려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음은 볼륨단. ‘Elicit-R’과 ‘Elex-R’ 내부사진을 비교해보면 가장 차이나는 게 이 볼륨단 설계 방식이다. ‘Elex-R’은 볼륨 노브를 돌려 신호의 입력레벨을 바꾸는 패시브 컨트롤 방식. 볼륨 노브 뒤에 눈에 띌 정도로 긴 샤프트가 달린 이유다. 음질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되도록 입력단자 가까이에서 입력레벨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Elicit-R’은 IC저항 1024개의 조합으로 게인 자체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어테뉴에이터 방식을 썼다.
‘Elicit-R’의 볼륨 메커니즘을 더 살펴본다. 볼륨 노브를 돌리면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해당 위치를 디지털 신호로 해석, 1스텝마다 1dB 차이를 두고 IC저항이 담긴 칩을 컨트롤한다. 전체 볼륨(게인) 레인지가 80dB이기 때문에 총 80스텝으로 볼륨(게인)을 컨트롤할 수 있다. 볼륨 노브 둘레에는 20개의 작은 LED가 있는데, 각 LED는 4스텝마다 불이 들어오거나 꺼지게 된다(4 x 20 = 80).
이같은 볼륨단 설계로 좌우채널 편차가 0.2dB에 그치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를 통해 볼륨에 상관없이 정중앙에 포커싱되는 정확한 사운드스테이지를 얻을 수 있었다. 어쨌든 ‘Elicit-R’ 시청 내내 음들의 맨살이 더 살갑고 생생하게 느껴진 것은 이처럼 신호경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볼륨단 설계 덕분으로 보여진다.
한편 스피커를 실제 구동하는 출력단은 ‘Brio’나 ‘Elicit-R’과 마찬가지로 개당 최대 150W 출력을 낼 수 있는 일본 산켄(Sanken)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채널당 총 4개를 투입했다. NPN(드라이빙)-NPN(출력) 트랜지스터 1쌍과 PNP(드라이빙)-PNP(출력) 트랜지스터 1쌍이 서로 푸쉬풀로 구동된다. 내부 사진을 보면 채널당 2개의 트랜지스터밖에 안보이지만, 이는 드라이빙과 출력 트랜지스터가 한 칩셋에 담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트랜지스터는 달링턴 회로(Darlington circuit)로 연결시켰다. 다시 말해, 드라이빙 트랜지스터의 에미터에 출력 트랜지스터의 베이스를 연결시킨 ‘에미터 팔로워’(emitter-follower) 방식을 쓴 것이다. 이는 진공관에서 말하는 ‘캐소드 팔로워’ 방식처럼, 컬렉터(진공관에서는 플레이트)가 아닌 에미터에서 출력을 꺼내기 때문에 게인이 1이 안되지만 높은 입력 임피던스와 낮은 출력 임피던스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청
총평
고백컨대, ‘Elicit-R’ 시청 및 리뷰가 쉽지 않았다. ‘Brio’와 ‘Elex-R’은 처음 듣는 순간부터 앰프의 캐릭터와 둘의 차이가 쉽게 파악됐지만, ‘Elicit-R’은 그야말로 야누스적인 얼굴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곡에 따라 같은 앰프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다른 소리를 들려줬다. 이런 모습은 두 동생 모델보다는 지난해 말 감탄하며 들었던 레가의 플래그십 인티앰프 ‘Osiris’ 이미지에 더 가깝다.
맞다. 필자가 보기에 ‘Elicit-R’은 레가가 ‘영국 실용주의’라는 슬로건을 잠시 잊고 정공법으로 만든 인티앰프다. 전통의 바이폴라 출력단 앞에 ‘FET 프리앰프부 + 게인 조절 어테뉴에이터’를 투입한 것이 그 명백한 증좌다. 정숙한 배경과 세밀한 디테일을 통해 음들의 민낯을 까발리는 모습이 자꾸 포착된 것도 ‘Brio’나 ‘Elex-R’과는 전혀 다르게 설계된 프리앰프부 때문이다.
생기발랄하고 수더분한 사운드, 출력과 가격이 의심스러운 당찬 구동력’이라는 찬사는 이제 두 동생 모델에만 돌려져야 한다. ‘Elicit-R’이 음악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꼬장꼬장하고 엄정했으며, 스피커를 드라이빙하는 모습은 눈 내린 마당을 싸리비로 빗질하듯 시원시원했다. ‘Elicit-R’이 그려낸 이 모습이야말로 레가가 진정 꿈꿔온(실제로도 가장 먼저 발표한!) 인티앰프의 속내인지도 모른다.
Power Output | 105 Watts per channel into 8 127 Watts per channel into 6 162 Watts per channel into 4 |
Input sensitivity | 105 Watts into 8 |
Line inputs (input 1 switch set to line) 1-5 and record | 196mV load 10K |
Phono (input 1 switch set to phono) | 2mV Load 47K in parallel with 220pF |
Direct input | 31.6dB |
Record output | 196mV for rated inputs |
Pre-amplifier output | 760mV for rated inputs |
Dimensions | W 432mm x D 325mm x H 82mm |
Weight | 13kg |
수입사 | 다빈월드 (02-780-3116 / 2060~2063) |
가격 | 350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