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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디지털 음원의 생생한 민낯 - 토탈댁 D1 케이블

조회수 2018. 6. 29. 10: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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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DAC USB Cable/Filter D1

지난 달 집에서 와인을 마시려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오래된 와인이었는데 코르크를 따다가 그만 코르크 밑부분이 부숴졌고, 그 부숴진 알갱이들이 그대로 병안으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와인은 마셔야겠고, 코르크 부스러기는 걸러내야겠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커피 여과지였다. 와인잔 위에 여과지를 깔때기 모양으로 올려놓고 그 위에 ‘오염된’ 와인을 부어 천천히 걸러지도록 한 것이다. 참으로 궁상맞은 짓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깨끗하게 와인을 마셨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았다.


뜬금없이 와인과 코르크와 커피 여과지 일화를 꺼낸 것은 최근 집에서 리뷰용 USB케이블을 시청하면서 두 상황이 엇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프랑스 토탈DAC(Totaldac)의 ‘USB Cable/Filter d1’이라는 USB케이블 겸 필터인데, 투입 전후 재생음의 소릿결과 맛이 확 달라졌다. 마치 여과지를 통과한 그 와인 맛 같았다. 몰랐으면 모를까, 와인에 코르크 쓰레기가 들어가 있는 것을 안 이상 그냥 마실 수는 없는 법. 마찬가지다. 온갖 노이즈와 전자기장으로 만신창이가 된 디지털 음원을 그냥 덜컥 DAC이라는 잔으로 마실 수는 없는 것이다.


토탈DAC과 USB케이블

▲ Totaldac의 설립자, 뱅상 브리앙(Vincent Brient)

토탈DAC은 엔지니어 뱅상 브리앙(Vincent Brient)씨가 2010년 프랑스 생 말로(Saint Malo)에 설립했다. 뱅상 브리앙씨와는 지난 5월 뮌헨오디오쇼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 하며 여러 유쾌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참으로 순수하고 일만 생각하는 전형적인 엔지니어였다. 집에서 가져온 샴페인을 여러 사람들에게 따라주며 분위기를 돋우려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쨌든 뱅상 브리앙씨는 석사 학위 엔지니어만 입학할 수 있는 프랑스 명문 SUPELEC(전기공학전문대학) 출신으로, 토탈DAC을 설립하기 전까지 주로 디지털 액티브 크로스오버를 연구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DAC을 접했는데 그 사운드가 좀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이 직접 DAC을 만들었고 이 DAC이 알음알음 소문이 나자 아예 토탈DAC을 설립, 자신이 만든 DAC을 상용화시키기에 이르렀다.


토탈DAC은 R-2R 래더 DAC방식의 DAC 제작사로 유명하다. 국내외에서 토탈DAC의 평판이 높은 것은 그만큼 이 제작사가 만들어온 R-2R 래더 DAC의 품질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R-2R DAC은 컨버팅 원리상 저항의 정밀도가 관건인데, 토탈DAC에서는 현재 오차범위 0.01%의 비쉐이 포일 레지스터를 쓰고 있다. 뱅상 브리앙씨에 따르면 이 저항은 “현존하는 최고의 초정밀 저항”이다.


그런데 R-2R DAC을 비롯해, 뮤직서버, 스트리머, 혼 스피커 같은 토탈DAC의 제품 라인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2종의 USB케이블이다. 통상의 USB케이블과는 달리, 두 제품 모두 중간에 필터 역할을 하는 알루미늄 박스가 달린 게 가장 큰 특징. 이 박스를 통해 USB케이블로 들어오는 각종 노이즈를 걸러주는 것이다. 상위 제품은 박스가 좀더 큼지막한 ‘USB GigaFilter d1’, 하위 제품은 이번 시청기인 ‘USB Cable/Filter d1’으로 박스가 상대적으로 작다.


자사 USB케이블/필터에 대한 뱅상 브리앙씨의 애정과 신뢰는 각별하다. 지난 뮌헨오디오쇼 당시 뮌헨 시내 메리어트 호텔에 마련된 토탈DAC 부스에서도 ‘USB GigaFilter d1’이 뮤직서버(d1-Server)와 DAC(d1-seven) 사이에 투입됐었다. ‘d1-Server’ 자체가, PC나 노트북, 심지어 웬만한 네트워크 플레이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초저노이즈 성능을 자랑하는데도, DAC으로 들어가기 전에 ‘USB GigaFilter d1’을 붙인 것이다.


USB케이블의 세계

▲ Totaldac의 단자 부분. USB A타입 포트와 USB B타입 포트가 보인다.

다들 잘 알겠지만, 오디오에서 주로 사용하는 USB A-B타입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신호가 전송되는 ‘디지털 케이블’의 일종이다. 광케이블, 동축케이블 등도 모두 디지털 케이블이지만, 디지털 신호를 보내는 대표 제품인 컴퓨터가 USB 단자를 채택함으로써 덩달아 USB케이블도 인기를 끌게 됐다.


USB A-B타입 케이블은 말 그대로 소스기기(네트워크 플레이어, 뮤직서버, PC, 노트북)에 꽂는 USB A타입 플러그와 DAC에 꽂는 USB B타입 플러그가 양쪽에 달려있다. 두 플러그 안쪽을 자세히 살펴보면 4핀을 갖췄는데 2핀은 전원선(+, 그라운드), 2핀은 신호선(+,-)과 연결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핀은 1번과 4번이 전원선과 연결되고, 2번과 3번이 신호선과 연결된다. A타입 단자의 경우에는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부터 4번(GND), 3번(Data+), 2번(Data-), 1번(+5V)이고, B타입 단자의 경우에는 역시 정면에서 봤을 때 위쪽에 1번(+5V), 2번(Data-), 아래쪽에 4번(GND), 3번(Data+) 핀이 마련됐다. 케이블 안에 들어간 선재는 +신호선이 그린, -신호선이 화이트(또는 골드), +5V 전원선이 레드(혹은 오렌지), 그라운드선이 블랙(혹은 블루)이다.


따라서 USB케이블의 음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Δ디지털 신호의 스피드와 관련한 선재 자체의 품질 Δ노이즈 유입방지와 관련한 절연체의 품질, ΔEMI(전자기장 간섭), RFI(라디오주파수 간섭) 방지와 관련한 쉴드의 품질 Δ플러그(단자)의 품질 등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오디오에서 사용하는 USB2.0 규격은 케이블 자체의 신호 지연 허용한도를 미터당 5.2나노세컨드(ns,10억분의 1초)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선재가 동일할 경우 선재의 가닥수가 많고 직경이 클수록 스피드면에서 유리하다.


‘USB Cable/Filter d1’ 탐구

‘USB Cable/Filter d1’을 자택에서 일주일동안 집중 시청했다. 시청 모델은 2m짜리인데, 일단 외관상으로는 별다른 특징은 없다. USB B단자 쪽에 7cm 거리를 두고 위에서 말한 180g짜리 알루미늄 박스가 달려있는 게 토탈DAC 제품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식이다. USB A단자나 B단자, 케이블 피복 역시 결코 고급스러운 티가 나질 않는다. 게다가 DAC 후면에 꽂으니 박스가 어정쩡하게 매달리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더욱 의아스러운 것은 토탈DAC 홈페이지 어디를 찾아봐도 알루미늄 박스 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노이즈 필터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전혀 공개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30개 이상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돼 있을 뿐이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내부를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스 네 귀퉁이에 있는 나사못 위에 레진을 발라나 해체가 불가능하다. 제작 노하우나 지적 재산권 보호를 위한 것이겠지만, 필자처럼 오디오에 투입된 기술과 공학원리, 부품 등에 관심이 높은 오디오파일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뮌헨에서 뱅상 브리앙씨에게 물어봤다. 토탈DAC 제품에 들어간 저항이 진짜 300개가 맞는지, 기판 뒤에 절반 가량의 저항이 숨어있는 게 사실인지 등 평소 궁금하던 것을 물어보던 와중이었다. “박스 안에 뭐가 들었나?”라고 물어보니 미소만 짓는다. “음악신호와 직류전기, 2개를 모두 필터링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그건 맞다”고 한다. “박스가 B단자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앞쪽 케이블에 끼어든 노이즈나 EMI, RFI까지 DAC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걸러주는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맞다. 정확하다”라고 한다.


뱅상 브리앙씨 말을 종합하면 ‘USB Cable/Filter d1’은 알루미늄 박스를 통해 음악신호는 물론 DC에 끼어든 노이즈, 안테나 역할을 하는 케이블에 올라탄 EMI, RFI까지 걸러주는 필터링에 특화한 USB케이블이다. 즉, 케이블 선재나 지오메트리의 개선보다는, PC나 노트북, 네트워크 플레이어 같은 디지털 소스기기에 스며든 노이즈 제거에 우선 순위를 둔 것이다.


시청

시청


‘USB Cable/Filter d1’을 일기일회의 각오로 귀를 쫑긋 세워 직접 테스트했다. 시청에서는 집에서 1년 넘게 쓰고 있는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DAC 사이에 투입했다. 음원은 필자의 맥북에어에서 인터넷 기반 음악 재생 플레이어인 룬(Roon)을 활용했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평

사실, 필터링 역할을 하는 사각 박스가 달린 USB케이블은 제법 많이 출시됐었다. 필자 역시 2,3년 전 모 제품의 박스를 열어보고 싶어 환장했던 적도 있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였던 것이다. 토탈DAC의 ‘USB Cable/Filter d1’ 역시 음질 향상의 알파와 오메가는 이 180g짜리, 부품이 30개 이상 들어갔다는 알루미늄 박스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음악신호와 전기의 노이즈, 특히 고주파 노이즈를 제거함으로써 청정 디지털 소스를 뒷단인 DAC에 넘겨주겠다는 설계다.


효과는 상당했다. 무엇보다 정숙도가 급상승했고 음의 입자들이 곱고 표면이 매끄러워졌다. 이러다보니 평소 안들리던 악기들도 정확히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비로소 디지털 음원의 민낯, 소스기기로 인해 더러워지기 직전의 그 맨살을 목도했다는 느낌. DAC마저 “바로 이 맛이야!”를 외치는 듯한 그런 풍경. 고백컨대, ’USB Cable/Filter d1’을 시청한 후, 필자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보다 상급의 DAC으로 갈아타려던 필자의 DAC을 당분간 계속 쓰기로 했다. DAC은 아무 잘못이 없었던 것이다.


글 : 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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