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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종이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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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처음으로 전자책을 읽어 보았다. 그동안 웹 소설이나 몇 번 읽어봤지 제대로 된 전자책을 빌려 본 적은 없었다. 확실히 편했다. 핸드폰으로 딴짓을 하다가 바로 켜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글씨가 커서 차 안에서 읽어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어두운 곳에서도 읽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불을 켤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빛을 찾아 책을 읽으려고 했던 때를 생각해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니면 되니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종이책을 읽는가? 왜 전자책보다 값도 더 비싼 종이책을 사서 읽는가?

책은, 특히 소설은 인간 인생의 집합체이다. 좋은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살아 있는 것 같고, 그들이 겪는 일이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책이 하나 세상에 나올 때마다 세계가 태어나서 어딘가에 이들이 모두 살아 있을 거라고 공상하기도 했다. 작품뿐만 아니라 책 자체도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책은 표지의 종류와 광으로, 종이의 질로, 손끝으로 느껴지는 두께로 독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화상 통화 기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은 굳이 번거롭게 시간과 장소를 정해 사람을 직접 만나지 않는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서로가 사람이라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지않은가. 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표지가 소프트인가 하드인가. 제목에 박이 씌워져 있는가. 유광인가 무광인가. 판형은 어떤가. 종이는 매끄러운가 거친가. 종이의 두께는 어떤가. 책의 무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가 무거운가. 책날개가 있나 없나. 책의 두께는 얇은가 두꺼운가. 이 모든 것이 책의 특징이다. 독서라는 행위는 단순히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라 책을 오감으로 느끼고 교감하는 것이다. 책 속 인물들을 더욱 가까이 느끼고 그들의 삶에 공감하는 것이다. 전자책은 이 특징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전자 음원이 발매돼도 사람들은 콘서트에 가고 연주회에 간다. 직접 느끼고 싶은 것이다. 좀 더 가까이 있고 싶은 것이다. 책 역시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더욱 그렇다. 외국인 연예인이나 유학생들이 한국의 특징이나 한국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빨리빨리’ 문화이다. 음악 프로그램의 중심을 장식하며 나왔던 신곡도 몇 달만 지나면 금세 뇌리에서 잊히고,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만화를 읽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기계에서뿐만 아니라 머릿속에서도 삭제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창조되고 빠르게 잊히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전자책은 이런 빠른 사회에 최적화된 매체이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볼펜을 손에 쥐고 공책에 적는 모든 절차를 생략한 채 단지 드래그하고 저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이 도서관까지 걸어갈 필요 없이 손가락 하나로 대출과 반납이 가능하다. 그 편리함에 무척 놀랐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 허덕이는 사람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나 역시 그중 한 사람인 것 같다. 손으로 붙잡아 자세히 들여다볼 새도 없이 모든 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며 허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조금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손에 뿌듯이 쥘 수 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종이책이 해답이 되어 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그 무언가. 느린 속도에,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함유한 채 자연의 시간 그대로를 따라 서서히 변해가는 그 무언가. 그것이 종이책 아닐까. 우리는 그런 느림과 불편함을 스스로 선택하여 사회의 속도에서 일시적으로 분리되고, 책이라는 또 다른 세상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다. 책을 무게를 느끼고, 기계보다는 조금 더 따스한, 아직 나무 품고 있는 책장을 넘기며. 이 정도면 종이책을 사랑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종이책을 읽고 있다. 시간의 흐를수록 변화가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무언가는 그 변화에서 조금쯤 빗겨 나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오늘도 종이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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