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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받고 한 잔하며 쉬려고 맘먹었는데, 네 개를 받은 감독

조회수 2020. 2. 11.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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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가 바뀌는 4번의 순간들

도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누군가는 기대했고, 누군가는 반신반의 했고, 누군가는 설마 했던 일이 정말 일어나고 말았다. 한국영화 역사상, 아카데미 역사상, 세계 영화 역사상 처음보는 장면이 온 세계에 중계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년 오스카 트로피 네개를 휩쓸어 버린 것이다. 트로피가 나하씩 늘어나는 매 순간 한국 영화사를 바꾼 네 장면을 스케치 해 본다.

#1 각본상
출처: giphy.com

충무로의 감성, 할리우드를 매혹시키다.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옥자>에서부터 호흡을 맞춘 완전 신예 '한진원'작가를 전격 기용하였다. 그는 임순례 감독 작품 <남쪽으로 튀어>의 소품담당 출신으로 여러 영화를 거쳐 왔지만, 작가로서는 이번 <기생충>이 처음이었다. 처음 집필한 각본으로 무려 할리우드 각본상을 받은 것이다. 검색엔진에서도 잘 찾을 수 없는 그를 어떻게 봉준호 감독이 기용하였는지는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인재를 알아보는 봉준호의 남다른 안목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두 사람이 합심해 만든 감각적인 이야기와 대사는 '달시 파캣'의 센스있는 번역의 힘이 더해져 세계적 공감대를 얻어냈다. 충무로의 감성이 전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대사건은, 어떤 하나의 결과물이 고품질이어서가 아니다. 함께 협업하는 사람 간의 소통과 의사판단 과정에서 오는 시너지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봉준호 감독은 예술가기 이전에 탁월한 안목을 가진 훌륭한 '리더'라고 볼 수 있다. 

#2 국제장편영화상
출처: apnews.com
출처: giphy.com

이번 해부터 아카데미는 '외국어 영화상'을 '국제 장편영화상'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하였다. 이는 비영어권 영화가 미국인의 관점에서 더는 '제3세계 영화'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미국 영화와 외국어 영화로 카테고리를 양분하는 오만을 범했던 아카데미가 로컬(Local)적 사고에서 벗어나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에 봉준호는 수상소감에서 "이 상의 이름이 바뀌었다. 이름 바뀐 후 첫 번째 상을 받아 더 의미가 있다.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는데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라고 화답했다. 아카데미에서 봉준호는 국제 장편영화상 첫 수상자이자 작품상까지 동시에 받은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되었다. 거듭된 수상에 상기된 봉준호는 "오늘 밤 한 잔 할 준비가 되어있다... 아침까지 마시겠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관객들은 박수갈채와 함께 폭소를 터트렸다.

#3 감독상
출처: giphy.com
출처: giphy.com
출처: giphy.com

거장에게 영광을 돌린 거장, 괴짜에게 사랑을 보낸 괴짜.


감독상에 이름이 호명되자 잠시 머릿속이 하얘진 듯 잠시 표정마저 굳었던 봉준호 감독.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세 번째 환호 속에서 무대에 오른다. 그는 영화학도 시절 책에서 읽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간직했다고 말한다. 통역이 끝나자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That quote wa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의 말입니다.)"라며 자신의 우상이자 같이 감독상에 노미네이트 된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겸손히 손을 뻗으며 예우를 갖춘다.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눈시울을 붉히는 노장을 향해 기립박수가 쏟아지는 장면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봉준호는 '국제적'으로는 무명이었던 시절 늘 자신의 영화를 좋아한다며 플레이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를 향해 "쿠엔틴 사랑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봉준호가 이런 창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 인터뷰에서 '그저 나는 이상한 놈'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아마도 괴짜는 괴짜를 알아보는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를 잘라 나눠 갖고 싶다던 봉준호의 수상소감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영화의 변방으로 여겨지는 아시아 국가의 감독으로 할리우드 최고 권위의 상을 받으면서 '나의 오늘은 당신들의 위대한 유산으로부터 왔으며, 영화 안에서 우리는 모두 소통하며, 사랑하는 사이'라는 겸손하고 따뜻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4 작품상
출처: apnews.com

전문가의 예측이나 어떤 의미 부여를 넘어선 이유 있는 수상


백인 남성만의 전유물이라는 비난에 직면한 아카데미의 정치적 선택이라 깎아내릴 수 없을 만큼 기생충 수상의 의미는 향 후 아카데미의 행보가 큰 전환점을 맞을 것을 예상케 한다. 유력한 경쟁작이 '영어'로 만들어졌고 골든글러브 2관왕, 영국 아카데미 7관왕에 빛나는 <1917>이라는 이유 때문에 미국의 보수적인 영화인들이나 각국의 민족주의자들은 SNS로 비아냥 섞인 경계심을 숨김없이 그대로 표출하지만 <기생충>을 본 대다수 관객과 영화인들은 국적과 언어를 불문하고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수준 낮은 조롱으로 간주하며 응징하고 있다.


영어권 국가의 작품이 아니라서 작품 자체의 수준이나 가치보다 주변의 것들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부당하다. <기생충>은 시상식에 의례 따르는 논란을 잠재울 만큼 아주 훌륭하고 아주 아름다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평론가와 관객들 모두가 울고 웃고 감동하고 인구(人口)에 회자되며 메시지와 의미를 분석하고 삽입곡과 대사가 햄버거 가게 테이블 위에서 화제가 되는 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봉준호 감독의 "우리 모두 영화라는 언어 안에서 하나입니다."라는 참으로 의미 깊은 말을 상기해 볼 일이다. 이번 수상으로 세계 영화사의 아이콘으로 등극할 봉준호 감독, 앞으로도 그의 날카로움과 섬세함 그리고 '이상한 생각'이 퇴색되지 않고 한국 영화사에 아름다운 영화들을 남겨주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출처: giphy.com

그리고 그녀, 샤론 최는 여전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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