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경찰에 구속되었던 코미디같은 사연

조회수 2020. 2. 27. 11:1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당신이 몰랐던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 <기생충>의 감독 봉준호와 관련하여 언론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았던 내용 위주로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정리했다. 

출처: 다음영화DB

본명:봉준호

출생:1969년 9월 14일

출생지:경상북도 대구시 남구 봉덕동


1.예술인&아티스트 가족
출처: 다음영화DB

부모님 대에서부터 예술인,창작자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남대 미대 교수를 지내고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을 지낸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 봉상균으로 2017년 별세했다. 어머니 박소영은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 형인 봉준수는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며 누나인 봉지희는 패션디자이너이자 국제문화협회의 이사다. 봉감독의 아내 정선영씨는 단편영화 <지리멸렬>의 스태프 출신으로 함께 영화 창작을 해오다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 봉효민은 아버지에 이어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봉준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문학, 음악을 좋아했고, 관심분야도 많아서 아버지 서재에서 시중에 없던 영화, 건축, 디자인 관련 수입도서들과 같은 다양한 책을 읽으며 자랐다고 한다. 봉준호가 영화감독이 된다고 했을 때, 봉준호의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보라며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2.12살 부터 영화감독을 꿈꿔왔던 '영상 키드'의 데뷔과정
출처: 다음영화DB

12살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며 서울 잠실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낸 그는, 연세대 사회학과에 88학번으로 진학했다. 영화감독이 되는 과정인 연극영화과를 진학하지 않은 특이한 케이스인데, 선배 감독인 이장호, 배창호 감독을 보면서 굳이 영화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학과를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친 이후 복학하게 된 그는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고 뜻이 있는 선후배들과 함께 단편영화 촬영에 나서게 된다. 이때 완성한 첫 단편영화는 16mm 단편영화 <백색인>.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11기로 입학했고,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지리멸렬>을 연출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봉준호는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과 각본 등의 활동을 하며 경력을 쌓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몸 담았던 우노필름(싸이더스의 전신) 차승재 대표의 눈에 띄어 무려 31살의 나이에 장편영화 <플란더스의 개>를 연출하며 첫 장편 데뷔를 치르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플란더스의 개>는 좋은 편가를 받았으나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라는 것. 사실상 그 다음 후속작을 찍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봉준호의 재능을 알아본 차승재 대표가 다시한번 그를 도왔고, 덕분에 두 번째 작품 <살인의 추억>을 연출하게 된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봉준호는 평단과 흥행 모두를 잡는 대성공을 하게 되고, 세 번째 작품 <괴물>의 천만 관객 동원으로 대한민국 대표감독 반열에 오르게 된다.  

3.페르소나인 송강호와의 깊은 인연
출처: 다음영화DB

1997년 당시 무명의 연극배우였던 송강호는 우노필름 사무실에서 진행된 오디션에 참여했는데, 당시 조감독이었던 봉준호 감독과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초조하게 오디션을 기다리고 있던 당시 조감독 봉준호가 송강호에게 다가와 "<초록물고기> 잘 봤습니다, 선배님!"라고 인사하게 되면서 인연이 완성된다. 무명시절 서로가 서로를 알아봐준 덕분에 두 사람은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5년 후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 캐스팅을 위해 송강호에게 시나리오를 보내자 송강호는 봉준호의 영화임을 알고 단번에 출연하겠다고 결정했다. 

4.그가 아끼는 고정 출연진들
출처: onedream

매작품마다 고정으로 출연하다 싶이한 조연,단연 배우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 <기생충>에서는 등장하지 못했다.)


변희봉은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 경비원으로 등장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후 <살인의 추억>의 구반장, <괴물>에서 할아버지 박희봉, <옥자>의 희봉역으로 여러번 출연했다. 과거 TV 시리즈 <수사반장>에 출연한 변희봉을 보고 팬이 되어서 봉준호 감독이 고정적으로 출연시키고 있다. 

출처: 다음영화DB

<살인의 추억>의 다리 자르는 의사, <괴물>의 미국 관계자에게 벌벌 떨던 격리 공간 의사, <마더>의 뺑소니 치는 대학 교수로 출연한 권병길도 그의 작품에 많이 출연하던 연기자다. 이번 <기생충>에도 출연이 예정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암에 걸려 치료차 출연하지 못했다고 한다. 

출처: 다음영화DB

봉준호의 첫 단편영화 데뷔작 <백색인>에 출연해 지금도 인연을 맺고잇는 김뢰하도 그의 작품에 많이 출연한 연기자다. <플란다스의 개>의 부랑자, <살인의 추억>의 조용구 형사, <괴물>에서 분향소에서 난리를 치던 정부 관계자로 출연했다. <백색인> 출연당시 봉준호는 출연료로 줄 돈이 없어서 김뢰하에게 사과하며 지갑에 있던 아버지의 정장 브랜드 와이셔츠 교환권을 내밀었다고 한다.


5.미국에 있는 봉준호 극장
출처: https://www.twipu.com/

미국 알라모 드래프트 하우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봉준호 시네마'라는 극장이 있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다운타운 남쪽에 위치한 극장으로 그의 영화팬인 알라모 드래프트 하우스의 설립자 팀 리그가 개관한 극장이다. 극장 내부에는 그의 이름을 딴 맥주인 '봉준홉스'까지 있다. 봉준호 감독도 개관에 맞춰 방문해 감사를 표했다. 

6.'삑사리'를 그만의 예술 용어로 만들다
출처: mbc캡처

등장인물들이 순간적인 실수를 하거나 삐끗하는 순간들은 그의 영화들에서 종종 발견되는 장면들이다. 봉준호 영화팬들이 좋아하는 순간으로 프랑스 영화잡지 카예 뒤 시네마의 기자가 이 부분에 대해 묻자 봉준호는 농담 형식으로 이 장면은 '삑사리'라고 대답했고, 그 단어를 그대로 'art of piksari'라는 기사제목으로 활용했다. 봉준호 감독은 매우 민망했지만, 당시 인터뷰를 진행한 프랑스 기자가 MBC와의 인터뷰에서 "'삑사리'는 아름다운 단어다. 기름칠로 잘 돌아가는 기계식이 아닌 봉준호표 영화를 아주 잘 표현하는 단어다. '실패', '흐름 속의 끊김'을 뜻한다"라며 예술적 가치가 있는 용어라고 칭찬했다.


7.만화광
출처: LawyersMacarons
봉준호 감독이 연세대 시절 연세춘추에 연재한 그림 '연돌이와 세순이'

1993년 1학기 교내신문인 연세춘추에 한 컷 만평과 ‘연돌이와 세순이’라는 네 컷 만화를 그리고 연재했을 정도로 만화에 대한 애정도 크다. 영화감독외 또다른 꿈이 만화가였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 홍대 앞 만화전문서점 한양문고의 단골이었고, 이곳에서 만화 설국열차를 처음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만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이 있으며, 영화 <살인의 추억> 기획 당시에는 앨런 무어의 만화 <프롬 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만화가로 짧게 활동했던 경력탓에 영화 콘티북을 만화처럼 직접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고, 배우들 또한 이 콘티를 보며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언급했다.


8.축구 마니아
출처: 다음영화DB

축구 마니아다. 각종 강의나 인터뷰에서 꾸준히 손흥민이나 박주호, 이승우, 다비드 루이스를 언급하기도 했고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로 케빈 더 브라위너를 꼽았다. 또한 자신의 페르소나인 송강호를 호날두나 메시같은 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배우로 비유했다.


9.문신 새긴 감독님
출처: 다음영화DB

2009년에 <마더> 개봉 기념으로 홍경표 촬영감독과 함께 홍대거리 타투가게를 들러서 왼쪽 팔부터 가슴까지 '마더'의 한 장면에 나온 나무와 새를 그렸다고 한다.

10.뮤직비디오도 연출했어요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연출 경력이 있다. <플란다스의 개>를 찍었을 무렵인 2000년경 김돈규의 '단'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신인시절의 박해일,배두나가 출연한 모습이 눈에 띄며, 영화 <설국열차>의 모티브가 되는 장면들이 등장한 점이 인상적이다. 

2004년에는 한영애의 '외로운 가로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는데, 봉준호 감독 특유의 영상미를 느낄수 있다. 

2004년에는 한영애의 '외로운 가로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는데, 봉준호 감독 특유의 영상미를 느낄수 있다. 

11.영화감독 아들 봉효민
출처: imdb

봉준호의 아들, 봉효민은 현재 영화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캐나다 밴쿠버필름스쿨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할리우드, 한국 영화 스태프로 활동했다. 연출외에도 세트, 음향, 각본가, 캐스팅 감독, 미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영화의 기초를 배우는 중이다.


마블 영화 <블랙 팬서>, 한국영화 <1987>,<골든슬럼버>,<PMC:더벙커>,<옥자>,<리얼> 등에 참여했으며, 2017년 웹영화 <결혼식>을 통해 첫 감독 데뷔를 했으며, 현재는 캐나다 독립영화 <Aperture>의 연출을 맡았다.


12.대학시절 경찰에 구속된 코미디 같은 사연
출처: 다음영화DB

대학 3학년이었던 1990년 6월. 연세대 학교 교문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전투조 격으로 시위대 선두 앞에서 선 봉준호는 화염병을 들고 시위대를 진압하러 온 백골단과 맞서려 했는데, 그만 물웅덩이에 미끄러 넘어져 화염병을 떨어뜨리고 만다. 그 자신도 민망한 가운데 맨앞에서 이를 지켜본 백골단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고 한다. 결국 봉준호 감독은 저항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연행돼 구속되었고, 풀려난 이후에는 동문들 사이에 술안주 소재로 화자되며 흑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블랙코미디 같은 이 상황은 훗날 봉준호 영화의 '삑사리'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damovie2019@gmail.com(오타 신고/제보 및 보도자료)



※저작권자 ⓒ 필 더 무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