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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 후 침대서 자는것을 부끄러워한 스타

조회수 2019. 8. 17. 12: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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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봉오동 전투> 의 류준열

<봉오동 전투>의 주연을 맡은 류준열과 영화와 관련한 생각과 비하인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감은?


늘 그렇듯이 반밖에 보지 못했다. (눈으로 손을 반 가리며) 이렇게 봐도 영화가 재미있더라…(웃음)농담이다.(웃음)


-체력적으로 꽤 힘들었을 것 같은데?


사실 영화를 보는데도 촬영 당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배우도 배우였지만, 스태프들이 더 고생이 많았던 것 같다. 그 큰 장비를 들고 가는 것 자체가 고생인데, 도와주고 싶어도 배우들은 부상 위험 때문제 장비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서 쓰레기통 같은 부상 위험이 덜한 것만 들어드렸다. 그 점이 참 죄송스럽다.


-부상은 없었나?


없었다. 우리 영화 배경이 산이었기에 발목을 접지를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제작진이 미리 부상을 막고자 발목에 부목 같은 것을 고정하도록 했다. 준비를 잘해서 부상은 없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국찢남'(국사 책을 찍고 찢고 나온 남자)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소감은?


너무 좋았다. 국사책을 찢고 나왔다고 하니…(웃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우리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한 명의 영웅이 아닌 이름 없이 사라져간 투사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를 통해 민초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다.


-배우들이 함께 찍은 국사책 사진을 연상시키는 포스터도 화제가 되었다. 어떻게 촬영되었나?


이 사진은 원래 포스터에 사용될 사진이 아니었다. 고려령을 향해 다 같이 뛰어가는 장면을 찍은 후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이었다. 영화처럼 모두들 열정을 다해 뛰었는데, 계속 찍다 보니 모두 동료애가 생겼다. 이때 조우진 선배님이 이날을 잊을 수 없다며 다같이 사진 찍고 추억에 남기자고 하셔서 다같이 기념촬영을 하게 되었다. 다들 독립군에 감정을 잡은 상태여서 진지한 마음으로 찍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도 달리기를 잘하셨는데 평소에도 잘하는 편이신가?


잘한다. 달리는 거 빼고는 시체다. (웃음) 근데 이번 지형이 산이다 보니 쉽지가 않았는데, 산에서는 유해진 선배님이 나보다 더 빠르셨다. 수백 명이 넘는 대역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전부 산으로 뛰는데 선배님은 마치 육상 선수처럼 자연스럽게 뛰어다니셨다. 거의 산신령 같았다고 할까? (웃음) 뛸때마다 놀라고 가장 먼저 고개에 올라오셔서 "어 왔어?"라고 맞이해 주셨다. (웃음)


-본인이 직접 독립군이 되어본 소감은?


청산리 대첩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었지만, 봉오동 전투는 그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었다. 결국 영화 촬영을 통해서 배운 것은 역사책에서 배운 게 다가 아니란 것이다. 역사책으로만 설명하기에 아쉬울 정도로 대단한 전투였으며, 조국을 되찾기 위해 싸우신 그분들의 희생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었다. 사료가 적어서 아쉽지만 그럼에도 우리 영화는 2시간 동안 관객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영화였다고 본다.


-이 역할을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학교에서 연기를 배울 때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대부분의 배우들이 군인, 교사 같은 역할을 어려워한다고 들었다. 자칫하면 배우로서 표현해야 하는 부분들이 어렵고 딱딱할 수 있기에 연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감독님과 중간중간 대화를 많이 하고 연구를 했는데, 감독님께서 내 아이디어를 이야기 할때 마다 방향을 잡아주셨다. 덕분에 훈련받은 군인 이장하라는 캐릭터가 완성될 수 있었다.


-그만큼 이번 역할에 고민이 많았나?


많았다. 참고하고 지양해야 할 지점이 있었는데 연구를 하고 분석할수록 돌아볼 게 많았다. 나의 이장하는 군인의 목표가 분명하고 앞만 보며 달려야 하는 친구였다. 군인들을 만나서 느낀 감정은 일반인들과 달리 새내기 때부터 지녔던 마음가짐을 은퇴한 이후에도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마음가짐은 장하에게 투영하려고 노력했다.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군인을 많나 봤고, 그들의 자부심이 크게 참고가 되었다.



-<봉오동 전투>를 흔히 말하는 '국뽕 영화'로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드는가?


감독님도 그 점에 속상해하셨다. 이 영화는 한 명의 영웅이 아닌, 숫자로밖에 기억이 안 되는 이름 없는 독립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분들이 그들의 희생과 대한민국인으로서 잊고 살았던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일본 배우들과 함께한 작업은?


배우로서 촬영에 임하는 자세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인물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택시운전사>에서 토마스 크레취만과 함께 작업했을 때 느꼈던 기분이었다. 본인만의 감정 이입과 애를 쓰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일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배우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한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잘 나눴다.


-류준열이 연기한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20년대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다 보니 촬영이 끝나고 현실 생활에서 휴식을 취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혼란스러웠던 때는 없었는지?


영화를 찍으며 느낀 거였다. 극 중 독립군들이 동굴에서 쉬고 있는 장면을 찍으면서 당시의 독립군들이 너무나 열약한 환경에서 싸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누추한 곳에서 주무시고 생활하셨다는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숙연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분들도 한 인간이고 전투 이외의 시간이 많았을 텐데, 그런 시간들을 이렇게 고생해서 보내셨구나라고 생각하니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분들은 당시 고통 속에서 전쟁을 치른 분들이었다. 현실에 와서 침대에 누우는데 왠지 모를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느껴졌고 그러다 미래의 우리들을 위해 싸우신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절로 느껴졌다. 이장하와 같은 독립군을 연기한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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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 ※저작권자 ⓒ 필 더 무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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