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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넘게 쓴 비운의 한국 애니, 17년 만에 찾아왔다

조회수 2020. 10. 28.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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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려줌] <원더풀 데이즈> (Wonderful Days, 2003)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원더풀 데이즈> ⓒ (주)에이원 엔터테인먼트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3년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렸던 해였다.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장화, 홍련>, <지구를 지켜라>, <질투는 나의 힘>, <바람난 가족>, <클래식>, <싱글즈> 등 이름만 들어도 "아!"하는 작품들이 관객을 찾았다.

그리고 그해 여름엔 기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어림잡아 120억 가까운 제작비(실제작비 및 홍보비 포함)를 들였고, 7년에 걸친 제작 기간에 300여 명의 스태프가 참여한 애니메이션도 공개됐다. 드디어 한국에도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구나라는 기대감이 가득했던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다.

20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우리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에 가까웠다. 미국, 일본 등지에서 시나리오, 기획, 캐릭터 디자인 등이 완성되면, 그것을 그려주는 '하청 사업'이 주류였던 시대. <심슨 가족> TV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물론, 우리만의 고유 콘텐츠도 만들어졌다. <날아라 슈퍼보드> 시리즈만 하더라도, 역대 TV 애니메이션 방송 중 가장 높은 40%대의 시청률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2011년)을 제외하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노리고 만든 영화는 흥행에서 실패했다.
2003년 제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되어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원더풀 데이즈>도 그랬다. 하지만 적어도 '작화' 만큼은 칭찬의 대상이 됐다. 예를 들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장면은 배경 이미지만 페인트이고, 구름은 실제로 촬영된 영상을 합성한 장면이 그것.

비주얼 측면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김문생 감독과 제작진은 심도와 질감 표현을 위해 2D와 3D를 결합하는 시도를 선보였다. 김문생 감독은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하늘을 영화에 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던 보람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당시만 하더라도 <다이너소어>(2000년) 같은 디즈니에서나 가능했던 제작 방식이었다. 이처럼, <원더풀 데이즈> 속 인물은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셀 애니메이션으로, 오토바이처럼 움직이는 소품들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건물들은 미니어처로 만들어 합성하는 제작 방식을 택했다.

김문생 감독은 "3D로 만들어진 쇠공과 실제 쇠공을 찍은 장면을 같이 보면 실물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질감이 확실히 다르다"라면서, "더 섬세하고 사실적인 비주얼을 위해 미니어처를 제작했고, 힘들었지만 시도해봤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호평받았었다. 2142년을 배경으로 하는 미래지향적인 작품인 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들리는 소리 외에도 생소한 사운드까지 만들어야 했다. 작품의 배경인 '에코반'은 평화로운 곳이어서, 매끄럽고 맑게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면, 시끌벅적한 '마르' 지역은 흙 표면이나 낡은 콘크리트처럼, 울퉁불퉁한 바닥의 거친 소리로 채워진 것.

특히 '에코반'의 첨단 장비인 '플라잉 바이크'의 사운드를 녹음하기까지는 준비 기간만 1년이 걸렸고, 총 6대의 마이크, 수십 대의 오토바이 등이 동원됐다. 실제 오토바이 주행 시의 소리뿐 아니라, 바람, 자동차 엔진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첨가했다.

이런 공들을 인정받으며, <원더풀 데이즈>는 제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는 약 22만 관객(한국영화연감 공식 통계)이 극장을 찾는 것에 그치며 막을 내려야 했다.

영화는 잿빛 하늘이 계속되는 2142년 지구, 유일하게 인류가 살아남은 '시실섬'에서 '수하'(장민혁 목소리), '제이'(공경은 목소리), '시몬'(한신 목소리)의 엇갈린 사랑과 우정을 그렸다. 시놉시스만 봐도, 이 작품은 판타지 SF 장르임을 알 수 있는데, 지금도 국내에서 '흥행'하기 힘든 장르라는 것을 떠올려 볼 때,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혹자는 "이 작품 때문에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이 투자를 받기 힘든 상황이 됐고, 덕분에 성인층 관객보다는, 유아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다"고 주장한다.

일리는 있다. <원더풀 데이즈> 이후, 12세 이상 관람가 이상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한 해에 세 작품 이상 개봉하면 '놀라운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설령, 개봉한다 해도, 흥행과 거리를 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판의 살을 덧붙이자면, 이 작품에는 결정적인 지적들이 쏟아진다. '아쉬운 스토리텔링'이 그것. 변을 하자면, 영화는 대사 보다 작품의 이미지를 토대로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은 날씨가 될 수도 있었고, 자연 풍광이 될 수도 있었다.

김문생 감독은 "자연을 영상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좋다. 배경은 단순한 그림이 아닌, 환경이라 생각하면서, 미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김 감독은 "<아키라>, <공각기동대> 등 다채로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라면서, "하회탈과 연등 행렬 등을 장면에 녹여내면서 전 세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작업 과정을 전했다.
17년 만에 돌아온 이 작품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당시 리뷰들에도 일부 목소리 연기가 아쉽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덕분에 일부 캐스팅이 재녹음됐다. 드라마 <셜록>에서 '셜록'을, <겨울왕국> 시리즈에서 '크리스토퍼'를, 여기에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의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기기괴괴 성형수>에도 목소리 연기를 선보였던 장민혁 성우가 '수하'를 맡았다.

이 밖에도, 한신, 공경은 성우가 새롭게 각각 '시몬'과 '제이'를 연기했으며, '노아 박사' 역에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년), <강변호텔>(2018년) 등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기주봉이 참여해 안정적인 더빙 연기를 펼쳤다.

한편, 김문생 감독은 <원더풀 데이즈>가 10월 28일 재개봉한 것에 대해 "이 영화를 다시 평가하기보다는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할 한국 애니메이션들이 '도전'을 멈추지 않을 기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비록 이 영화에게는 '원더풀 데이즈'가 찾아오진 않았지만, 이를 반면교사 삼아, 다른 한국 애니메이션에는 '원더풀 데이즈'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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