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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끌려간 엄마를 위해 소년단원 된 6살 소녀

[영화 알려줌] <나의 작은 동무> (The Little Comrad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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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놀랐다
글 : 양미르 에디터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나라, 에스토니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얻어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 체결된 '독소불가침조약'에 따라 나치 독일은 에스토니아의 소련 점령을 묵인한다. 1940년 6월 대규모의 소련군이 진주한 후, 8월 소련의 통제로 이뤄진 선거를 통해 에스토니아는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됐다.

이 시기엔 비극적인 일도 있었다. 영화 <1944>(2015년)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에스토니아인들은 두 국가의 힘에 눌려 강제 징병을 당하고 만다. 독일의 '무장 친위대'와 소련의 '붉은 군단'이 되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눈 것.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에스토니아의 인구 중 약 20%인 20만여 명이 목숨을 잃고, 약 8만여 명이 서방으로 피신을 했다. 수도 탈린 역시 주거지의 약 30% 이상이 파괴됐다. <나의 작은 동무>는 이 시기에 태어난 6살 소녀 '렐로'(헬레나 마리아 라이스너)의 시선을 통해, 소련 통치 아래 혼란을 겪던 1950년대 에스토니아를 조명한다.

당시 일부 에스토니아인들은 두 번째 소련의 점령을 반대하는 이른바, '포레스트 브라더스'라는 '반소련 게릴라' 활동을 진행한다. 하지만, 1949년 3월 약 2만 명이 시베리아로 이송(일명 '프리보이 작전')되면서, 1950년대 초반 '반소련' 저항 운동은 약화된다.

출처영화 <나의 작은 동무> ⓒ (주)라이크콘텐츠

'렐로'의 어머니도 바로 이런 '반 소련' 운동 인사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가게 된 것. 하지만 '렐로'는 왜 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이 집에 찾아와 엄마를 데려가는지, 왜 아빠의 자랑스러운 스포츠 메달(독립 당시 에스토니아 국적으로 받은 메달)을 숨겨야 하는지 모른다.

'렐로'는 그저 엄마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해맑게 웃고, 춤을 추고,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빨간 스카프를 두른 '소년단'이 된다. 그래야 엄마가 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동무>는 에스토니아인들이 사랑하는 작가 렐로 툰갈의 자전적 소설 <꼬마 동무와 어른들>과 <벨벳과 톱밥>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에스토니아 공화국 100주년 기념작이다. 심지어 에스토니아 박스오피스 역대 4위를 기록할 만큼 자국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에스토니아뿐 아니라, 제66회 베를린영화제 유리메이지 프로덕션 발전상 특별언급, 제70회 로카르노영화제 프로-퍼스트룩 선정,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BNK부산은행상 등 다양한 국가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찬사를 받았다.

영화를 연출한 무니카 시멧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원작 소설이 동시기 사회상을 다룬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여섯 살 여자아이의 시선이라는 차별화된 관점을 차용해 격동의 시기를 그려낸 점에 매료되어 영화화를 결심했다"라고 밝혔다.

주로 단편 영화를 연출해왔던 무니카 시멧츠 감독은 <나의 작은 동무>를 통해 성공적인 장편 영화 데뷔를 할 수 있었는데, 그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준 소설을 영화에 섬세하게 녹여내기 위해 각본까지 직접 쓰며 영화 제작에 열의를 보였다.

여담으로, 영화를 관람한 이들이 궁금했을 에스토니아의 독립 과정을 살펴본다. 에스토니아는 여타 소련 점령국과는 달리 서방국가들의 동향과 문화에 대한 정보를 그나마 편히 습득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스탈린 사망 이후 에스토니아와 인접 국가 핀란드의 교류가 재개되면서, 핀란드 TV 방송 청취가 가능했던 것. 이는 주한미군 방송인 AFKN을 청취한 이들이 미국 문화에 좀 더 다가설 수 있던 것과 유사하다. 덕분에 1980년대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 추진을 계기로 독립운동이 태동했다.

독립운동의 불씨가 지펴진 것은 1988년 일어난 일명 '노래하는 혁명'으로부터 시작됐다. 에스토니아가 독립국이던 시절의 노래를 한 가수가 팝 페스티벌에서 부르게 되면서, 독립운동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다음 해인 198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 체결 50주년을 맞아, 해당 조약의 무효를 주장하고자 발트 3국에선 약 2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한다.

이들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라트비아 수도 리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를 이어 길이 600km에 이르는 거대 인간 띠를 형성했다. 이 인간 띠는 훗날 발트 3국의 공동 신청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관련 기록물에 등재된다.

이어 1991년 발생한 소련의 쿠데타로 정국이 어수선한 틈을 탄 에스토니아는 같은 해 8월 20일 독립을 선언한다. 독립 직후, 몇 년간 에스토니아는 러시아와의 껄끄러운 관계로 인해 경제 규모가 약 25% 축소됐으나, 빠른 ICT 산업 성장과 IT 인프라 구축(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전자거주증 제도, 전자투표 제도를 도입했다)을 자랑하는 나라가 됐다.

이런 에스토니아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2003년 '스카이프 테크놀로지사'가 개발한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 문득 에스토니아의 독립 역사와 현재를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깨닫고, 노인이 된 '렐로'는 이런 흐름을 어떻게 지켜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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