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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포영화에서 마녀와 '수지'는 어떤 관계였나?

조회수 2019. 5. 20.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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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알려줌] <서스페리아> (Suspiria, 2018)
글 : 박세준 에디터
출처: 영화 <서스페리아> 표지 및 이하 사진 ⓒ 씨나몬(주)홈초이스
* 영화 <서스페리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1월, 이탈리아 지알로 장르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는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원작의 정신을 위배했다. 공포도, 음악도 없었다. 이 영화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라며 <서스페리아>(2018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화려한 색채와 직접적 표현 방식으로 이탈리아 호러 시대의 부흥을 이끌었던 아르젠토 감독의 이러한 원색적인 비판은 과연 수용 가능한 것일까?

지난 16일 국내에 개봉한 <서스페리아>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년), <비거 스플래쉬>(2015년)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리메이크작이다.
호러 장르의 오랜 팬으로, 특히 아르젠토 감독의 작품에 매료되었다는 그는 '인디와이어'와의 인터뷰에서 "(40년 전) <서스페리아>를 봤을 때, 정말이지 언젠가는 같은 감동을 재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리메이크작에 대한 원작자의 힐난과 원작에 대한 구아다니노 감독의 찬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서스페리아> 속 마녀와 '수지'(1977년 제시카 하퍼/2018년 다코타 존슨)의 관계를 바라보는 두 감독의 시선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두 작품 모두 1977년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원작 <서스페리아>(1977년)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영화 속 요소로 크게 작동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무용 아카데미'라는 공간 속 무용의 행위 역시 사건의 주인공 수지를 등장시키는 요소 외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당시 이탈리아 호러물답게, 그리고 아르젠토라는 거장의 성향처럼 영화는 편집증적으로 공포, 그 자체만을 탐구한다.
하지만 구아다니노 감독의 <서스페리아>는 배경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바더-마인호프' 그룹으로 상징되는 독일 극좌파는 '헬레나 마르코스 아카데미'의 '마담 블랑'(틸다 스윈튼)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이며, 그들이 주장하는 '여성의 재정자립' 등 여성 운동의 결은 구아다니노 감독이 그리는 <서스페리아>의 핵심 줄거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TV, 라디오를 통해 적군파의 '루프트한자 181편 납치사건'을 중계한다. 안드레아즈 바더와 율리케 마인호프로 대표되는 적군파 핵심 인물의 석방을 요구하는 인질범들과 인질의 구출을 노리는 정부군의 대립은 마치 아카데미 속 마녀와 그 추종자들, 그리고 그에 맞서는 '패트리샤'(클로이 모레츠)와 '올가'(엘레나 포키나)를 비롯한 학생들의 그것을 보는 듯하다.

'블랑'을 중심으로 한 극좌파이자 여성 운동가들은 자본주의에 항거하는 저항군이지만, 아카데미 속 학생들에겐 군림하는 독재자와 같다. 마녀의 의식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그들의 행위와 신념은 마치 전체주의와도 같고, 그들이 굳게 믿는 독립과 자유는 어느새 폭력으로 변질한다.
뉴욕과 오하이오라는 출신의 차이 외에도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와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 속 수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전작에서 수동적이며 비밀을 파헤치던 전학생인 수지는 당돌하고 능동적인 역할로 변모한다.

무용 수업의 주연 자리를 꿰차고 '블랑'의 총애를 받는 학생으로 올라선 그녀는 이내 추종자들로부터 '의식'의 주인공으로 추대된다. 블랑과의 경쟁에서 마녀로 선출된 마르코스는 수지의 몸속에 기생하기 위해 의식을 실행하려 하지만, 수지는 "내가 바로 그녀(I was the She)"라며 마르코스와 그 추종자를 단죄한다.

수지와 교장을 인간과 마녀라는 단순한 선악 구도로 그렸던 아르젠토와 달리, 당대 독일의 극좌세력과 마녀를 혐오스럽게 그리고, 혐오를 또 다른 마녀라는 혐오로 덮는 악과 악의 구도는 <서스페리아>가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구아다니노 감독의 '커버 버젼(Cover Version)'임을 실감케 한다.
이와 동시에 전작에선 단순히 마녀에 대한 힌트를 전수하는 데 그쳤던 남자(프랭크 맨델/밀리어스 교수)는 정신분석학 의사 클렘페러로 다시 태어난다.

의사는 과학과 이성을 대표한다. 그는 끝없이 마녀의 존재를 의심하지만,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기에 그를 증명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반면, 마녀는 인간에게 증명이 아닌 체험으로 자신을 밝힌다. 아르젠토 감독의 직관성과 구아다니노 감독의 논증적 전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지알로' 장르의 종말일지도, 혹은 다변화되는 문화 스펙트럼의 확장일 수도 있다.

2015년 제31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미국 드라마)을 받았던 로버트 애거스 감독의 <더 위치>가 마녀의 탄생을 그렸다면,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는 그녀의 죽음을,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는 회귀를 그린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자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있으나, 그녀의 자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대사처럼, 마녀는 흔히 그려지던 악마의 하수 혹은 탄압의 대상에서, 마치 신과 대등한 전지전능한 존재로 묘사된다.

마녀는 타락한 대상을 추종하던 인간들을 단죄하고, 희생자들의 소원을 묻는다. 죽음을 원하는 자에겐 죽음을, 진실을 원하는 자에겐 진실을 내린다.

자비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구아다니노 감독 버전 <서스페리아> 속 마녀는, 동화에서 확고한 장르로 자리 잡은 다크 판타지의 면모를 보여주는 듯하다. 원작과 리메이크작의 우열(優劣)을 논하기보다, 저무는 시대에 안녕을 고하고, 장르 속 새롭게 다가오는 거장에게 안녕을 건네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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