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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가 길을 잃었다

[영화 리뷰 알려줌]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날씨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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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뼛쭈뼛
글 : 박세준 에디터

김정운 교수는 <중앙 선데이>의 "독일 바우하우스는 지식혁명 일군 '인류 첫 창조학교'"라는 기사를 통해 2차 지식 혁명이 '예술과 기술의 통합'이라고 주장했다. 스티브 잡스도 줄곧 자신이 이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서 살아간다고 주장했고, 많은 창조물과 문화 예술의 생산물도 이 두 개념이 절묘하게 섞였을 때 탄생했다.

영화도 비단 감성의 결과물만은 아니다. 아이디어와 극본, 감독이 지향하고자 하는 감성이 적절한 기술력과 만나야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엄청난 상상력과 기술력이 혼재된 곳이다. 자칫 잘못하면 일부에게만 귀속되는 마니아성 작품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지나치게 대중화된 애매한 애니메이션이 되고 만다.

매년 수많은 작품이 태어나고 사라지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대표주자가 아직 선명해지지 않았다.

출처영화 <날씨의 아이>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미디어캐슬

<나스 안달루시아의 여름>(2014년)을 만든 코우사카 키타로를 필두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년)의 호소다 마모루, 아들 미야자키 고로, <추억의 마니>(2015년)의 요네마야시 히로마사, 그리고 <너의 이름은.>(2016년)의 신카이 마코토까지 매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가 거론되지만 이 감성과 기술의 가운데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팬들이 신뢰할만한 감독은 아직 확실치 않다.

언급한 감독 중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면서도 위태롭기도 한 인물은 바로 신카이 마코토다. 오는 10월 30일 개봉을 앞둔 <날씨의 아이>가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는데, 지난 10월 10일 열린 일반 시사회 반응 역시 그리 달갑진 않다.

대표적 '세카이계'로 분류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세계와 그가 '포스트 하야오'로서 의지가 있는지, 그리고 <날씨의 아이>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어떠할지 살펴보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 나가노 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한 게임회사 디자인 부서에서 경력을 쌓았다. <둘러싸인 세계>(1998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1999년) 등이 찬사를 받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코믹스웨이브'에 들어가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연출을 맡게 된다.

이후 <별의 목소리>(2002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2004년), <초속5센티미터>(2007년), <별을 쫓는 아이:아가르타의 전설>(2011년), <언어의 정원>(2013년), <너의 이름은.>(2016년) 등 작품성과 특유의 감성을 담은 영화들을 만들어내며 마니아층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게 된다.

그 와중에 <크로스로드>(2014년)처럼 영화 같은 애니메이션 광고로 극한의 감성을 표출하며 대중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능력이라 하겠다.

출처영화 <너의 이름은.> 이하 사진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사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본인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 시작은 아무래도 기존 전통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시스템에 반하는 1인 제작을 본격화했을 때부터인데, 본인이 시나리오, 연출, 작화 등 모든 분야에서 도맡아 했으니 작품의 방향이 일정치 못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 가능하다.

예컨대 단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는 일본 평론가 '우노 쓰네히로'가 규정한 '포스트 에반게리온 증후군'의 모습답게 세카이계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소년과 소녀의 애틋한 감정이 인류의 멸망과 연결되는 이 판타지성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조가 되고, 그로 하여금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는 세카이계 대표주자로 발돋움하게 해주었다.

출처영화 <초속5센티미터> 사진 ⓒ (주)에이원 엔터테인먼트

신카이 마코토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는 <별의 목소리>에서 싹튼 몽환적 상상력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59회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애니메이션 영화상을 비롯해 각국에서 수상의 영예와 찬사를 받으며 차세대 일본 대표 애니매이션 감독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분단의 일본 열도라는 평행 우주관을 기초로 일본 특유의 전후시대 피해 의식을 기반으로 한 SF적 상상력에 10대 남녀의 애틋한 감정을 삽입한 신카이 마코토는 이 작품에서 비로소 자신의 작화 능력, 즉 구름, 빛으로 대표되는 '신카이 마코토의 시그니쳐' 영상미를 구현해낸다.

그의 작품세계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바로 다음 작품이 <초속5센티미터>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그가 보여줬던 세카이계 특성은 사라져버렸다. 3화로 나뉜 줄거리에서 영화는 집요하게 첫사랑으로 엮인 남녀의 감정을 고찰한다.

신카이 마코토에게 기대했던 판타지성과 SF적 상상력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첫사랑의 설렘과 불안(1화), 이별과 상처(2화), 그리움(3화)만 남겼다. 순수히 감성에 집중한 이 영화를 통해 신카이 마코토는 마니아층과 대중, 판타지와 감성의 중심에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결과를 낳았다.

출처영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사진 ⓒ (주)삼지애니메이션

<별을 쫓는 아이:아가르타의 전설>은 철저한 세카이계로 회귀한 작품이다. J.캠벨의 원질신화의 궤도를 따르는 듯한 줄거리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년/이하 <판의 미로>)처럼 지하와 지상으로 분리된 세계관은 신카이 마코토가 또 한 번 균형의 축에서 무너졌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약속의 땅'이라 불리는 '아스나'의 목표는 '지하세계'를 염원하는 <판의 미로> 속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의 모습과 같고, "상실을 안고 계속 살아가는 것이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라는 영화 말미의 메시지는 <모노노케 히메>(1997년)의 그것과 흡사하다.

'지브리와는 차별된다', '판타지와 작화의 장인'이라는 찬사에도 이전 작품에서 이어진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그의 습관은 또 반복됐다.

출처영화 <별을 쫓는 아이:아가르타의 전설> 사진 ⓒ (주)박수엔터테인먼트

이쯤 되면 의도적일까? <언어의 정원>은 다시 감성이다. 비가 오는 날 도심 속 한 정원을 찾는 두 남녀 다카오와 유키노의 연결을 그린 이 애니메이션은 그 어떤 결말도 규정하지 않는 신카이 마코토의 습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그의 애니메이션들의 공통점이라면 단 한 작품도 작품성으로는 딴지를 걸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전작의 방향과 분위기를 좇지 않는다는 이질감일 것이다. 순수와 미숙으로 점철되는 청소년들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역시 신카이 마코토 세계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그리고 <너의 이름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술과 감성이 2차 지식혁명의 태동이자 시작점이었다면, 판타지와 감성이 교차하는 곳에서 <너의 이름은.>은 탄생했다.

출처영화 <언어의 정원> 사진 ⓒ (주)팝엔터테인먼트

그 결과는 가히 놀라웠다. 국내 367만(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3억 5천만 불 이상의 수익을 올린 이 애니메이션은 비로소 그를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일약 스타 감독으로 올라서게끔 했다.

'무스비(매듭)'로 통칭되는 인연을 인간관계의 핵심으로 하는 이 줄거리는 청소년의 사랑과 인간(마을)의 멸망을 연결시키고, 동시에 꿈을 매개로 망각이라는 특징을 드러내며 잊어간다는 운명의 잔혹하고 불가피한 섭리를 메모라는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는 영리함을 담기도 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너를 꼭 만나러 가겠다"는 타키의 약속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감독의 의중이기도 하거니와, 우주엔 꼭 두 사람이 얽혀있다는 운명론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그간 판타지와 감성의 교차로에서 지나치게 치우친 모습을 보이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행보가 비로소 '가족 오락 영화'의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며 전 세계인의 기대를 하게 했다.

시사회에서 공개된 <날씨의 아이>는 그런 점에서 다소 아쉽다. 항상 전작에 대한 기대감을 무안케 하는 그의 못된(?) 습관처럼, <너의 이름은.>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와 감정의 깊이 때문이다.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일컬어지는 '가족 오락 영화'적 특징은 사라지고, 늘 한 쪽으로 쏠리던 그의 고집스러운 에고(Ego)도 돋보이지 않는다.

비단 반일감정으로 불거진 불매운동의 일환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 작품이 국내에서, 심지어 일본에서도 흥행을 이끌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스러울 정도다.

'재미'라는 화두로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이끌어냈던 싸이가 '강남스타일'에 묶여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하다 도태됐던 것처럼, 큰 성공 이후 판타지와 감성의 교차점에서 길을 잃은 신카이 마코토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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