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운영진도 버린 '망겜', 고인물 유저가 직접 나섰다

조회수 2020. 12. 7. 16: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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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려줌] 내언니전지현과 나 (People in Elancia,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 ⓒ 호우주의보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코드로 등록했다. 알코올, 도박, 마약에 이은 또 다른 중독이라는 것. 물론,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집에서 비대면으로 다른 유저들과 플레이하는 게임'이 전염병과 더불어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보도들이 등장하면서 묻히긴 했지만.

그런 가운데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왔다. 국내 최초로 게임 유저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고, 직접 망해가던 게임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 노력을 펼친 내용이 담긴 것.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넥슨의 클래식 게임 <일렌시아>(1999년)를 통해 청년 세대와 한국 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이야기한 다큐멘터리다. 작품의 제목인 '내언니전지현'은 박윤진 감독이 실제로 <일렌시아>에서 사용하는 게임 아이디.

개봉 전부터 제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상(젊은 기러기상), 제7회 춘천영화제 과학창의재단 관객상(한국독립SF경쟁 부문) 등을 받으며 영화계와 게임계 모두의 이슈가 됐었다. 박윤진 감독의 졸업 작품으로 시작된 영화는 발전 과정을 거쳐 지난 3일 정식 개봉을 진행했다.
이 작품은 그간 주류 매체가 게임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거나, 자극적인 방법으로 소비해온 것과 달리, 오랜 기간 게임을 즐기면서 고민을 거듭해온 유저 당사자의 시선으로 접근했다.

<일랜시아>의 16년 차 고인물 유저이자, 길드(일종의 팀이나 공동체로, 중세 시대 상공업자들이 만든 동업 조합을 뜻하던 길드에서 유래됐다.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온라인 게임에서는 대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마님은돌쇠만쌀줘'의 길드 마스터이기도 한 감독은 10년 동안 업데이트 없이 방치된 게임 환경에 참을 수 없다며, 온라인 세계를 넘어 현실 세계로 나선다.

가장 큰 방치는 '매크로'의 일반화였다. 유저 간 거래가 가능한 게임 안에서 재화 수집을 목적으로 이뤄지는 간접 플레이 행위로, 보통 게임에서 일정하고 단순한 작업이 반복되는 구간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불법 행위이지만, 게임 시스템이 허술할수록 빈번히 일어난다.

<일랜시아>도 어느 순간 운영진의 부재로 인해, 캐릭터가 수동으로 해야 하는 사냥을 자동으로 하도록 만든 불법 매크로가 활성화되어 있다. 작품은 온라인 세계에서 원하는 바를 쉽게 얻기 위해 사용하는 불법 매크로가 현실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행태로 인한 청년 세대의 박탈감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캐릭터를 육성하는 온라인 게임이 그렇겠지만, 이 작품에서도 비공식적인 캐릭터 육성법 '루트'의 존재가 유저들의 고민거리로 등장한다. <일랜시아> 안에는 전사, 대장장이, 마법사, 음유시인, 미용사 등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캐릭터의 특성과 능력치가 발달한다.

하지만 불법 매크로가 성행하는 상황에서, 유저들은 강한 캐릭터를 갖고자 검증된 '루트'만을 선택한다. 돈을 받고 캐릭터를 대신 키워주는 일도 빈번하다. 작품에서 한 유저는 "내가 여기서 더 뭘 해야 하고 그러기가 겁나"라면서, 꿈을 꾸기 어려워졌다고 고백한다.

게임의 다양성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선택지에서 나온 성취감이 희소해져 버린 것이, 경쟁 사회 속 현실의 모습과도 유사해졌다는 것.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이 정해놓은 길을 가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한다"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다른 유저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작품은 유저들의 이야기만을 전하지 않는다. 당연히 게임 개발사의 사정도 들어봐야 했다. 박윤진 감독은 2년여간 촬영을 지속한 끝에 넥슨 노조 방문을 비롯해 정상원 전 넥슨 개발총괄 부사장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기어코 유저 간담회를 끌어냈다. 12년 만에 이뤄진 업데이트도 그 결과물이었다.

결국,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게임 이야기의 탈을 쓴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 온라인 세계의 게임도 기계가 아닌 사람(매크로가 아니라면)이 플레이하는 것 아니겠는가?

<레디 플레이어 원>(2018년) 속 주인공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가 결국은 게임을 통해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하고자 했던 것처럼, <일랜시아>를 즐기는 사람들의 단단한 연대는, 그 크기가 미미하더라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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