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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VS '어느 가족' 황금종려상 한·일 수상작 비교!

조회수 2019. 6. 4.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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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교 알려줌] <기생충> VS <어느 가족>
글 : 박세준 에디터
출처: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 이하 표지 및 영화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 영화 <기생충>과 <어느 가족>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가족> VS <기생충>
제7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은 공교롭게도, 모두 가족에 관한 영화를 선택했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영화는 아시아라는 출신을 제외하고서라도, 현대 사회에서 발현되는 빈부의 격차와 갈등, 가족의 의미, 시대적 비극 등 모종의 동일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대한민국과 일본의 U-20 월드컵 16강 경기가 올리는 오늘(6월 4일), 두 거장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차이점 - 사실주의 VS 상징주의
우선,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봉준호의 표현 방식에서 그 차이가 드러난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2018년) 속 '좀도둑 가족'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사실적인 시각으로 그려낸다.
출처: 영화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하 영화 사진 ⓒ 티캐스트
'시바타'라는 성으로 묶인 6명, '하츠에'(키키 카린), '오사무'(릴리 프랭키), '노부요'(안도 사쿠라), '아키'(마츠오카 마유), '쇼타'(죠 카이리), '린'(사사키 미유)은 '생존'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기반으로 함께 살아가는 '대안 가족'이다.

돈이나 마음과 같은 추상적 단위보다 '살인'과 '시체유기'라는 좀 더 현실적 사유로 연결된 '오사무'·'노부요'(가짜)부부는 '하츠에'(할머니) 집에서 기생하며, '쇼타', '린' 등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기른다. '하츠에'의 전 남편 둘째 손녀인 '아키'는 가출 소녀로 보인다.

그녀의 부모 집에 수시로 방문해 '남편을 빼앗았다'는 죄명을 빌미로 용돈을 갈취하는 '하츠에'는, 역설적으로 '아키'와 영혼의 단짝이다. 끈끈한 듯 수상하게 이어진 이 가족은, 일용직 공사 현장에 가기 싫어 '거짓 문자'를 보낼까 고민하는 '오사무'의 고민처럼 현실적이다.
반대로, <기생충>은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하던 상징주의 미술과도 같다. 현재 수없이 올라오는 '기생충 분석' 글만 보더라도,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꼼꼼하고 절묘한 미장센, 내러티브한 전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관객들의 시도가 산재해있다.

영화 속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수석(水石)'의 경우, 재물을 불러오는 돌로서 '민혁'(박서준)이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떠나기 전 건내준 선물이다.

이 수석은 '박사장'(이선균)의 집을 잠식하는 '기택'(송강호) 가족의 미래를 암시하는 단초로 볼 수도 있고, '전원백수'에서 ‘전원고용’의 꿈을 이룬 이 가족이 남의 것을 탐하고 거짓을 일삼다 되려 머리를 두드려맞고('기우'/최우식),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인과응보'의 순환을 내포할 수도 있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 내 수많은 부자 동네가 꼭 그리 높은 곳에 위치하는 건 아니지만, '박사장'의 저택은 대중교통으로는 닿지 않는 고지대에 자리한다.
반면, '기택 가족'의 집은 수없이 많은 계단을 하강(下降)해야 나오는 어딘가, 그중에서도 반지하라는 최하단에 있다. 아마도 (당연히) 높고 낮은 시각적 이미지를 위해 계단을 활용한 빈부의 차를 그렸다고 판단된다. 과거 '달동네'라 불리던 도시 외곽의 산속 집채들과 상이한 두 가옥의 위치는 시대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박 사장네 휴가가 실패로 돌아가고, 그로 인해 '기택가족'의 파티도 비극으로 끝난다. 바닥을 기어 도망치는 '기택'의 몸짓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그의 '벌레'와 같은 모습은 이런 작은 부분조차 신분을 상징하는 감독의 도구로 쓰인다.

비는 하늘에서 떨어져 끝없이 밑으로 쏟아진다. 높고 낮은 땅의 형세와 같이 인간의 신분은 평등하지 않고, 도망침 속에 멈춰진 '기우'의 시선처럼 물의 방향은 부(富)에서 빈(貧)으로 향한다.

다음날 개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상쾌한 공기를 쐬는 '연교'(조여정)의 미소를 위해 하층민들은 밤새 물에 잠긴 집안을 헤매야 했고, '다송'(정현준)의 젓지 않는 인디언 텐트와 똥물이 포효하는 '기정'(박소담)의 변기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영화 속 명과 암을 나타낸다.
자신의 유두를 시계방향(삶→죽음)으로 애무해 달라는 '연교'의 요구에서 남편에게 기생해 살아가는 그녀의 운명을 짐작할 수 있으며,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근세'(박명훈)의 얼굴 위 핏자국과 '기정'의 죽음, 그리고 코를 막는 '박사장'을 향한 '기택'의 칼날에서 한정된 기회를 놓고 다투는 노동자들과 그들을 멸시하는 자본가, 그리고 다시 그에 분노하는 하층민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해석과 분석이 가능하고, 봉준호 감독의 역작이라 할 만큼 대단한 각오와 준비가 녹아들어 있기에, 살펴보는 재미만큼은 확실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러한 사실적인 표현과 관객의 현실을 공감하는 영상언어로 '가족영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거장으로 거듭났다. <아무도 모른다>(2004년), <걸어도 걸어도>(2008년), <태풍이 지나가고>(2016년) 등 '가족'이라는 다변화된 형태를 (때로는 부담스럽게) 사실적인 방식으로 그려내는 그의 연출은 마치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를 떠올리게도 한다.

영국의 대표 사회주의 감독인 켄 로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제69회 칸 영화제에서 역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올해에도 <쏘리 위 미스드 유>(2019년)를 출품하기도 했다.
켄 로치 감독 역시 영국 사회의 모순적인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기 위해 사실적인 시대의 단면을 그린다. 이러한 사실주의 감독의 작품들은 대상의 일상과 인생을 가감 없이 옮겨내고, 그에 따르는 관객의 공감을 기다리는 영화다.

반면, <기생충>은 작년 호평을 받았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년)과 함께 비교할 수 있다. 겉으로 '종수'(유아인)와 '해미'(전종서), 그리고 '벤'(스티븐 연)의 삼각관계를 그렸지만, 내면적으로는 한국 사회 속 절망에 휩싸인 젊은 세대의 고뇌와 계층 간 격차를 들여다본 작품이다. <버닝> 역시 보는 시각에 따라 많은 해석이 존재하고, 감독의 의도와 뜻을 파헤치려는 약간의 노력이 수반된다.

공통점 - 죄와 벌
두 작품 모두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연상시킨다. 소설 속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느 가족>, <기생충>의 주요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대학생, 즉 빈민층이다. 전당포 노파를 죽여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는 그는, 죄에 대한 옳고 그름과 싸운다.

흔히 '양심'이라 일컬어지는 인간 행동의 잣대는 이 소설 속에서 무척이나 상대적이다. <어느 가족> 속 '시바타' 가족과 <기생충>의 가족들 역시 일련의 죄를 연속적으로 짓지만, 그들의 자기 합리화는 '라스콜리니코프'의 그것만큼이나 강하다.
끊임없는 자기 설득과 그에 따른 확신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살인에서 시작해 '시바타' 가족의 시체유기('하츠에'), 그리고 기택 가족의 살인('문광'/'이정은')으로 귀결된다. 소설 속 양심은 신의 존재와도 같다.

<어느 가족>, <기생충>에서 그 흔한 신의 형태나 종교적 색채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 무법 가족들의 소실된 인간성을 뜻하기도 한다. 부재한 양심과 궤변론적인 자기 합리화는 비이성적인 사회와 계층 간 갈등을 방만하는 국가, 정치, 그리고 일반인들의 불합리성 위에 불가피한 주인공들의 사투라고도 할 수 있다.

<죄와 벌>은 해석마다 다를 수 있지만, 당시 폐쇄적이고 암울했던 러시아의 현실을 독립적이고 낭만적인 문체로 타파한 시대반영적 작품이다. 2010년대 아시아권에서 가족을 매개로 '낙오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은 우연보단 필연에 가깝다.

'시바타 가족'의 구성원도 일명 '버려진' 사람들이고, '기택의 가족' 역시 '스펙' 때문에 사회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개체들이다. "영화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측면에서, 이 두 영화와 <죄와 벌>이 가지는 의미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한일전 - 고레에다 히로카즈 VS 봉준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세계적 거장이다. 사실적인 표현력과 시대를 반영한 가족의 형태를 다각적인 시선에서 그려냄으로써, 발표하는 영화마다 평단과 대중의 극찬을 받았다. <세 번째 살인>(2017년)을 통해 획일화된 작품세계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역시 히로카즈 감독의 관심사는 여전히 '가족'에 머무른 듯하다.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보다 화려하다. 몇몇 단편작을 거쳐 <플란다스의 개>(2000년)로 데뷔한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2003년)으로 520만 명이라는 성공적인 흥행을 거두고, <설국열차>(2013년), <옥자>(2017년) 등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들을 생산해왔다.

늘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영화 속에 담는다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한 봉준호 감독의 작품과 단면을 담담히 훑어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은 우열을 가누기 쉽지 않아 보인다. 분명한 건, '냄새'처럼 무형적으로 다른 두 감독의 작품세계가 만들어낼 새로운 영화들이 무척이나 기대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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