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취준생'이 470km 국토 대장정 나선 이유는?

조회수 2021. 4. 2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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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려줌]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Musoon, Across the Universe,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 씨네소파
오는 22일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영화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는 2019년에 열렸던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와이드 앵글' 섹션을 통해 관객에게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 주위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청년들, '권무순'과 '박태원'의 삶을 함께하는 작품이다.

'서브웨이' 아르바이트로 처음 만나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부산에서 서울까지 470km의 거리를 걸어서 가로지르기로 마음먹는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서로의 육체뿐. 한 발 한 발 내딛는 시간 속에 이들은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과 만나게 된다.

무순과 태원에게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순은 부모님의 이혼과 어머니의 정신질환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태원은 "지금까지 영화에서나 봐왔던" 빨간 딱지들이 집안 곳곳에 나붙는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IMF로 인해 촉발된 가정의 붕괴로 대표되는 유년기, 그리고 이젠 '코로나19'로 인해 전례 없이 힘든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다름 아닌 지금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걷고, 달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사회의 요구나 시선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 나가는 인간 존재의 열정과 도전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두 청년의 11일 동안의 시간은, 긴 여정 동안 그들과 함께한 남승석 감독의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남승석 감독은 여섯 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었고, 연구자로도 몇 권의 책과 수없이 많은 논문을 저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남 감독은 "20대 청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다"라면서, "나이를 먹고 기성세대가 되고 나니, 지금의 청년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먼저 나서서 청년은 이렇다, 저렇다고 설명하기보단, 청년 자신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려고 하는 청년의 초상화'라고 생각한다"라면서, "어떤 특별한 사람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아름다운 청년에 대한 영화"라고 전했다.

때로는 목적지까지 힘차게 뛰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잠깐 앉아 지친 몸을 다독이기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을 품어준 대자연 속에서 더욱 생기 있게 반짝인다.

밀양을 지나, 낙동강과 안동댐을 따라 걷는 두 사람의 여행길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관객도 모르게 그들의 여행에 함께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기억해 둘 만한 순간이 있다.

열흘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이제 곧 긴 여행의 마무리를 앞둔 그들이 저 멀리서 서서히 지는 노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촬영한 장면이었다.

"주마간산이라고, 너무 빨리 가면 놓치는 것이 있겠다 싶었다"라는 무순의 한마디는,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남승석 감독은 어떻게 무순 씨를 만나게 된 걸까?

그는 "무순 씨는 저희 동네 샌드위치 가게인 서브웨이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면서,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몸에 멍이 들어 있는 걸 보게 됐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그래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면서 농담으로 '어, 권투하시나요?'라고 물었더니, '어떻게 아셨어요? 권투합니다'라고 대답했다"라면서, "바로 그때 이분에게 뭔가 특이한 게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5~6개월 정도 지속적으로 서브웨이에 가서 권무순 씨를 관찰하다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은데 찍을 생각이 있냐고 했고, 그렇게 찍게 됐다"라고 첫 만남을 전했다.

영화는 인터뷰로 시작된다.
남승석 감독은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에롤 모리스가 고안한 장치 '인테로트론' 기법을 차용했다.

촬영 대상이 감독을 보고 이야기하는 기존의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카메라를 보고 직접 이야기하는 이 기법을 통해 감독은 인터뷰 대상과 관객이 서로 직접 대화하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또한, 무순과 태원의 인터뷰를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과감한 시도나, 그리고 영화 후반부 무순의 집이 철거되는 장면에서 사용된 화면 되감기 기법은 다큐멘터리스트이기에 앞서 영화 연구자 출신인 남승석 감독의 이론적 배경이 녹아든 결과였다.

남 감독은 "이 영화는 여행에 관한 영화이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여행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됐다"라면서, "여행이 무순을 드러내는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무순의 영화적 초상의 대상인 시공간과 역사, 의지와 감정, 이런 것들이 축적된 한 사람으로써의 그를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당 편집 방법을 사용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철거 장면의 되감기 기법에 대해서도 남 감독은 "살고 있던 집은 무너져도, 무순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영화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그게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참고로 영화의 제목은 비틀즈 팬들이라면 좋아할 노래 '세상을 가로질러(Across the Universe)'에서 따온 것이다.

비틀즈를 좋아한 무순 씨와 남 감독이 함께 정한 이름이라고.

두 사람의 여정이 세상을 가로질러 급진적인 변화를 이뤄낼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함께 열정과 도전을 느낄 수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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