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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에서 온 신데렐라는 유리구두가 없다?

[공연 알려줌]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신데렐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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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역대 <신데렐라>중 가장 성공한 발레"란
찬사를 받고 있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를 알려 드립니다.

여기, 1950년대 초 할리우드를 대표했던(<회상 속의 연인> 1955년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수상) 전설적인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있습니다.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들(<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나는 결백하다> 등)에 연이어 출연해 우아함의 정수를 보여 줬던 그녀는, 그렇게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데뷔 5년차에(1956년), 갑자기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모나코'의 군주, '레니에 3세'와 결혼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는데요.

사실 레니에 3세는 모나코에 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할리우드 스타(마릴린 먼로,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와의 결혼을 물색 중이었는데, 이는 유럽 부호들의 휴양지였던, 세계에서 두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가 2차 세계대전으로 크나큰 경제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고(12캐럿 다이아 반지), 결국 두사람은 '행운의 2달러' 전설을 만들어내며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하지만 엄격한 공가의 전통과 언어 장벽(프랑스어)에 짓눌려 답답한 결혼생활을 해야했던 그레이스 공비는, 이후 히치콕 감독의 신작(<마니>(1962년))으로 할리우드에 복귀하려 했으나 이마저 좌절되자,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그레이스 공비는, 대신 자신의 어릴적 꿈이었던 발레리나 육성에 전념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그녀가 세운 교육기관이 바로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1975년) 였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레이스 공비의 명성 덕분에 전세계 발레 인재들이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로 모여들면서, 한때 국내 3대 발레단의 리더가(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김인희 서울발레시어터 전 단장)모두 이 학교 출신이었던 적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그랬던 그레이스 공비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1982년, 52세), 그녀의 꿈은 맏딸인 '카를린 공녀'가 이어가게 되었고, 3년 뒤 카를린 공녀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재창건(1985년)해 그레이스 공비를 추모했다고 합니다.

8년뒤, 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예술감독으로 영입돼 오면서(1993년~현재),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유명 고전을 재해석한 참신한 작품들(<로미오와 줄리엣>(1996년), <신데렐라>(1999년), <라 벨(잠자는 숲속의 미녀)>(2011년))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요.

14년 만에 내한 한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이번에 그 대표작인 <신데렐라>를 공연한다고 합니다. '왕자와의 사랑 이야기'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리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평을 듣는 이 작품은, 기발한 상상력과 세련된 연출로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는 마이요 감독의 작품답게, 발레극의 전통에서 벗어난 독특한 관전 포인트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건 바로, 모든 것이 발에서 시작해 발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2년 만에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발레리노 '안재용'은 여성들의 발을 보면서 기웃거리는 '왕자'를 연기하고, 계모와 언니들의 뒤틀리고 고약한 발이 보여지는 동안, 유리구두를 없앤 이 작품의 신데렐라는 맨발에 금가루를 바르고 춤을 춘다고 하는데요.

"역대 <신데렐라>중 가장 성공한 발레"란 찬사를 받고 있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2019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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