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테러 실화에 진심 담아 만든 영화

조회수 2019. 5. 16.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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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알려줌] <호텔 뭄바이> (Hotel Mumbai, 2018)
글 : 박세준 에디터
안소니 마라스 감독은 단편 영화 <더 팔라스>(2011년)로 데뷔한 신예 감독이다. <호텔 뭄바이>가 장편 데뷔작인 마라스 감독은 실화 바탕 영화의 성패가 현실을 재현해내는 고증에 달렸다고 생각한 듯하다. 영화를 보며 가장 강하게 다가온 부분은 진하게 느껴지는 탄환의 냄새였다. 일반 2D 영상으로 접했음에도,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듯했다.

전쟁 영화 중에서도 리얼리즘을 중시한 <허트 로커>(2008년), <제로 다크 서티>(2012년)와 같은 영화가 있는 반면, <트로이>(2004년)처럼 전체적인 전쟁 흐름을 각색한 영화도 있다. <호텔 뭄바이>는 전자에 가깝다. 일종의 재난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고증에 힘쓴 전쟁 영화라 봐도 무방하다.

영화는 전반의 서사가 길지 않다. 많은 재난 영화들은 후반부 감동을 위해 희생자, 혹은 생존자의 행복한 일상을 전제하기도 한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년), <라이언>(2016년)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데프 파텔이 분한 '아르준'의 가족이 이러한 서사 맥락의 전부처럼 보인다.
한 아이와 임신한 부인,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맞지 않는 신발에 발을 욱여넣고 일하는 아르준은, 관객의 마음을 뭉클하면서도 행복하게 한다. 일반적인 서민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조로운 배경을 뒤로하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사주를 받은 '소년 테러단'은 뭄바이로 잠입한다. 영화는 경찰과 직원들의 입을 빌려 테러단이 "어리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치 테러를 실행한 사람들은 어리고, 무지하며, 세뇌당한 또 다른 피해자임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리고 영화 말미, 배후에서 조종하던 '주범'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말을 남긴다. 총을 쓰는 테러범도, 죽어간 166명의 시민들도 모두 피해자일 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남의 목숨을 빼앗은 누군가는 버젓이 살아있다는 것이 감독의 메시지로 읽힌다.
기차역, 병원, 레스토랑, 영화관 그리고 호텔 등 테러범들은 2008년 11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뭄바이를 점령한 채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학살했다. 마라스 감독은 영화적 표현으로 테러의 잔혹함을 보여주기에 '타지 호텔'이 최적의 장소라 생각한 듯하다.

영화는 짧게나마 기차역과 레스토랑의 참상을 보여주고, 이후 도망나온 커플을 쫓아 '타지 호텔'로 입성하는 테러단을 비춘다. 이 영화가 일종의 호러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테러범들의 태연함과 죄의식의 부재에 있다.

화장실에서 묵묵히 총을 꺼내 조립하고, 호텔에 들어선 후 숨지도 않고 가방에서 총을 꺼낸다. 광기 어린 연쇄살인범의 모습이나, 어두운 밤 느닷없이 나타나는 귀신보다, 옆에서 무표정으로 총을 꺼내는 테러범의 모습이 오히려 더 괴기하게 느껴진다.
호텔의 특성상 테러범들은 고객과 직원들을 사냥하는 구도가 그려진다. 호텔의 로비에서 위로 향하는 테러범들과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들 혹은 고객을 보호하려는 직원들과의 추격전은 영화보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 같다.

'타지 호텔'의 고객들은 주로 미국, 러시아, 그리고 아시아의 부유층으로 보인다.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높은 시민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남을 위한 배려심도 드러낸다. 아르준을 포함한 현지 직원들 역시 모두 영어가 가능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이는 영화적 설정이 아닌, 실제 인물을 각색한 것이다. 주방장 '오베로이'(아누팜 커)는 끝까지 고객들을 대피시킨 것으로 유명한데, 마라스 감독이 주연 인물을 선정할 때 고민한 직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와 반대로, 테러범들은 낮은 교육 수준, 그리고 세뇌당한 종교적 희생자로 그려진다. 그들이 실제 무슨 생각으로 테러 행위에 동참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알라"를 외치며 또 누군가는 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 간헐적으로 설명된다.

돈과 종교라는 단면적인 방식이 아닌, 그들이 받았다는 훈련이나 세뇌과정 등을 좀 더 자세히 그려냈다면, 영화를 보는 제3국가의 관객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와 테러의 온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에서 놀라운 점은 '총'의 사용이다. 손가락을 당기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이 살인 무기는 흔히 연출을 위해 쉽고 단순한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일부 영화를 통해 '총'의 두려움을 망각하는지도 모른다.
<호텔 뭄바이>의 총은 테러범들의 무자비하고 냉정한 살상 도구로 표현된다. 그만큼, 마라스 감독은 사운드와 연기 등 시각 효과를 통해 총의 공포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보이는 대로 사살하는 테러범들의 총은 오랜 시간 응시해서 상대를 노리는 스나이퍼의 그것보다 높은 긴장감을 가진다. 총상을 입은 한 테러범이 인질을 감시하는 도중 잠이 든 듯 보였으나, 인질의 탈출 시도에 반응해 갑작스레 발포하는 장면은 그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어워즈서킷'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현실성과 고증을 살리고자 노력했다"고 밝힌 마라스 감독은 장편 데뷔작을 통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거둘 수 있었다. 지난 3월 뉴질랜드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일어난 테러로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개봉했지만, 고증을 통해 테러의 공포를 전달하고자 한 마라스 감독의 진심은 고스란히 전달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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