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머리카락을 잘라야 했나?

조회수 2020. 12. 11. 15: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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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려줌] <머리카락> (Escape the Corset,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머리카락> ⓒ 목영엘티디, (주)다자인소프트
약 120여 년 전인 구한말, 단발령에 맞서 전국의 선비들은 "사람의 신체와 털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이를 손상하는 것은 불효에 가깝다"라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며 의병을 일으켰다. 120여 년이 흘렀다. 단정한 쇼트커트는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 됐으며, 긴 머리는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 됐다.

색깔만 놓고 봐도,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잠옷을 입었고, 여자아이들은 분홍색 잠옷을 입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생겨버린 것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머리카락>은 여성에게 머리카락이 지니는 의미와 동시에, '탈코르셋 운동'을 펼치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열식으로 담아냈다.

'코르셋'은 16~18세기 사이 여성들에게 유행했던 허리를 잘록하게 조이게 해주던 기능성 속옷. 미국에선 이미 1960~80년대에 들불처럼 번진 제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진행됐었다. 당시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성'의 모든 외향적 특성(의상, 헤어, 화장 등)을 거부했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했고, 낙태 문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로 인식했으며, 직장 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등을 주장했다. 참고로 올해 개봉한 영화 <미스비헤이비어>나, 왓챠에 서비스 중인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가 그 시기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명쾌하게 다루고 있다.
다시 <머리카락>으로 돌아가, 모든 사람은 '짧은' 머리로 태어나는데, 여성만 '장모종'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한다. 이미해 감독은 질문의 답을 찾고자, 동시대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다수의 페미니즘 도서를 발표한 이민경 작가, 배우 차희재, 유튜버 등이 그 주인공들로, 출연진들은 단순히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억압이나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여성들의 연대 필요성과 미래에 대한 담론을 제시한다.

이미해 감독은 2019년 스냅타임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 때 화장은 나를 완벽하게 만드는 도구로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행위라고 여겼다"라면서, "'탈코르셋 운동'을 보며 '내 생각이 틀렸구나, 주체적 꾸밈은 결코 주체적이지 않구나'를 깨달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만 화장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두려웠다. 이미 내가 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깨달았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그 용기가 쌓이고 쌓인 어느 날 머리카락을 잘랐다"라는 본인의 과거 경험을 밝혔다. 이렇듯이 영화엔 자신의 모습과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여성의 경험담이 녹아 있다.
이 작품에서는 당연하게도 '탈코르셋 운동 강요'에 관한 각 여성의 생각도 함께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미해 감독은 "목소리는 빗물 같은 것이다. 한 두방울의 빗물은 단지 불편하다고 무시하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러나 그 빗방울들이 모이고 모여, 폭우를 쏟아낼 때는 더 이상 무심코 지나칠 수만은 없게 된다"라고 전했다.

"우리는 지금 그 과정을 지니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지 않도록,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살아갈 여성들이 더 자유로운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 딛는다면 먼저 용기를 낸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시 페미니즘의 역사로 돌아가,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제3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이뤄지고 있다. '탈코르셋 운동' 뿐 아니라 다양한 페미니즘 분파들이 나온 셈. 분파에 따라서, 소수 인종과 소수성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으며,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한국 역시 2015년 무렵부터 '레디컬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다양한 논의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 <머리카락> 역시 다양한 형태의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가 깔려 있다.

한편, '다큐멘터리 연출' 측면에서 <머리카락>은 살짝 아쉬운 점도 지니고 있다. 메인 뉴스의 백화점식 보도처럼, <머리카락>은 주장을 제시하는 인터뷰를 나열한 구성으로 한 시간을 채웠다. 공감대 형성을 위해, 좋은 인터뷰이들로 구성해 진정성 있는 내용으로 관객을 설득하려 했으나, 응집력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모든 영상은 훗날 '아카이브'가 되는 것처럼, <머리카락> 역시 어딘가에 남겨질 역사가 아니겠는가? 1920년대 당시 신여성들이 단발하고 나왔을 때, 그들의 이름이 '모던걸'에서 따온 '모단(毛斷)걸'이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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