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아저씨'가 왕 연기했지만, 잊힌 드라마!

조회수 2019. 3. 3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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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드라마 알려줌] #030 <제국의 아침> (KBS1, 2002~2003)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드라마 <제국의 아침> 표지 및 이하 사진 ⓒ KBS
2002년 3월 2일부터 2003년 1월 26일까지 방영한 KBS1 94부작 대하드라마 <제국의 아침>은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과 지난 3월 27일부터 시작한 MBC 드라마 <더 뱅커>에서 '대한은행' 감사인 '노대호'를 맡은 김상중이 처음으로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작품이다.

<태조 왕건>(2000~2002년)에 이어 KBS가 준비한 '고려사 시리즈' 두 번째 드라마로, '태조 왕건'(이문수)의 죽음부터 시작해 '혜종'(노영국), '정종'(최재성), '광종'(김상중)까지, 고려의 초창기 네 명의 왕 이야기를 다뤘다.

<태조 왕건>에 이어 시나리오를 집필한 이환경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통사극은 학자의 연구를 최대한 수용한 상태에서 쓰여야 한다"라며, "그런데 '광종'에 대한 연구는 그 수효가 무척 부족해서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첨가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극 작가로 역사 속에 묻혀있던 인물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점이 기쁘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그가 대본을 쓸 무렵, '광종'에 관한 논문은 '왕건'의 5분의 1 수준인 50여 편밖에 되지 않았다.
전작과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 작가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태조 왕건>은 삼국 간의 통일 전쟁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스케일이 크고 동적이었던 반면 <제국의 아침>은 권력을 놓고 펼쳐지는 사건들이 주된 소재라 다소 정적일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사건들을 치밀하게 배치해 시청자들이 사극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라고 소개했다. <제국의 아침>은 필연적으로 60%가 넘는 시청률(이하 닐슨 기준)을 기록한 <태조 왕건>의 후광을 짙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왕건'을 연기한 최수종이 <제국의 아침>에 특별출연한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었고, 시청률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자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역사스페셜>에 '고려 광종, 제국의 아침을 열다'를 편성하기도 했었다. '광종'의 일대기로 고려 초기 역사를 바라보는 의도와는 다르게, 문경 세트장이나 고사 장면을 보여주는 등 드라마 홍보에 열을 올렸었다.
또한, KBS1 다큐멘터리 <일요스페셜>에서도 '다시 백두에 서다'라는 에피소드로,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북한 백두산에서 촬영한 작품이라는 의미를 담아냈다.

백두산 촬영 장면은 작품의 오프닝과 더불어, 1회와 2회에서 방영됐는데, '왕건'의 명을 받은 둘째 아들 '왕요'(훗날 '정종')와 셋째 아들 '왕소'(훗날 '광종')가 눈 덮인 백두산에 올라가 호연지기를 키운다는 대목이었다.

김상중은 기자회견에서 "대사 중 '백두대간이 이 곳에서 시작해, 태백산을 거쳐, 지리산에서 끝난다'는 말이 있는데, 백두산이 아니고는 촬영할 수 없는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제국의 아침> 연기자와 스태프들은 백두산 뿐 아니라 평양 을밀대 부근에서도 촬영을 진행했었다. 이렇게 특수적인 상황까지 만들어낸 드라마는 첫 회 33.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태조 왕건>의 첫 시청률인 33.5%보다 앞선 시청률을 보여줬다.
하지만 첫 방송 당시 시청자들은 불만 사항이 있었다. <태조 왕건>이 끝날 무렵의 시점이 935년이고, 한 주 뒤에 처음 방송된 <제국의 아침>의 시작 시점이 943년으로, 8년간의 공백기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으나, 대부분의 배우가 교체되면서 시청자들의 혼동을 자아내게 한 것이었다.

가장 큰 예가 '박술희'였는데, 김학철 배우의 코믹한 연기를 봤던 시청자들이 갑자기 '머리가 생긴' 조경환 배우로 교체했다고 공식 홈페이지에 비판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그 외에 '오씨' 역은 염정아에서 반효정으로, '유씨' 역은 전미선에서 정영숙으로 바뀌었었다.

그래서였을까? <제국의 아침>의 시청률은 첫 회 이후 계속해서 추락했고, 방영 한 달 후인 4월 말에는 18.7%까지 떨어지며 경쟁 드라마인 SBS의 <유리구두>에게 시청률이 역전되기도 했다. 6월에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려, 출연진이 전통 궁중의상을 입고 응원전에 동참하며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펼쳤으나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6월 22일에는 이란 강진 특보로, 6월 30일에는 3-4위전 경기와 연평해전 특집 보도로 결방됐다. 그리고 7월 18일에는 촬영 리허설 중 통나무 망루 세트가 붕괴하며 12명이 중경상을 입기도 했다.
결국, 7월 말, KBS는 100회를 예정했던 드라마를 조기에 종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이환경 작가가 그 무렵 SBS <야인시대>의 집필까지 맡으면서, 동시에 두 드라마를 진행하는 데 큰 부담이 온 것도 한몫을 했다.

그는 당시 매일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열심히 써도 시청률이 오르지 않았다"라며, "마침 <태조왕건>을 집필 할 당시 시청률이 높아 20회 연장한 것을 감안한 KBS 제작진의 양해를 얻어 조기 종영하게 됐다"라고 밝혔었다.

그무렵 10% 초반의 불과했던 시청률을 20% 초반까지 끌어올린 것은 '광종'과 그 '광종'을 연기한 김상중이었다. 즉위식 이후 왕권 강화를 도모한 '광종'과 왕권 확대를 염려하는 호족간의 '기싸움'이 재미를 준 것이었다.
게다가 그해 11월 제16대 대선을 앞두고, '광종'이 시행한 '노비안검법'(강제로 노비가 된 자를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법)은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김상중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는 관객의 사랑을 받았으며, 결국 2002년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겨울연가>의 배용준과 나란히 받았다.

<제국의 아침>은 '궁예'(김영철)라는 희대의 캐릭터를 만들어 낸 <태조 왕건>과 매력적인 스토리 라인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마니아를 만든 <무인시대>(2003~2004년) 사이에 껴 잊힌 드라마가 됐지만, 그래도 이 시기를 다룬 거의 유일한 정통 사극이었다는 점에서는 다시 살펴볼 만한 드라마로 남았다.

한편, 이후 '광종'을 다룬 드라마로는 장혁이 연기한 MBC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2015년), 이준기가 맡은 SBS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2016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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