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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만한 그림으로 행복 채운 레전드 화가 이야기

조회수 2020. 9. 2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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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알려줌] <보테로> (Botero,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보테로> ⓒ 마노엔터테인먼트
미술에 대한 큰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페르난도 보테로라는 화가의 그림은 한 번 쯤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대다수 사람에게 그는 다채로운 색감이나 풍만한 볼륨감의 사람을 그리는 화가로 알려졌다.

물론, 페르난도 보테로는 "나는 한 번도 뚱보를 그린 적이 없다. 색감과 양감을 중시하다 보니 풍만함이 강조됐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무튼 그런 보테로의 풍만한 그림이 현대 미술사를 통틀어 독보적인 스타일을 창조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보테로>는 이런 '남미의 피카소'라 불리는 색채의 마술사, 페르난도 보테로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다뤘다. <보테로>는 영화와 TV 분야를 오가며, 캐나다 밴쿠버에서 활동 중인 돈 밀러 감독이 연출했다.

영문학, 영화학 외에도 회화를 공부해, 예술 전반의 지식을 쌓은 그는 밴쿠버에 있는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의 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또한, 작품의 전반적인 구성은 하트 스나이더 각본가가 맡았는데, 그의 대표 작품 중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배우, 히스 레저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엠 히스 레저>(2017년)가 있다.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보테로는, 1951년에 수도 보고타에서 머물면서 콜롬비아의 전위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52년, <해변가>로 콜롬비아 아티스트 살롱전에서 2등상을 받은 그는, 상금으로 친구들과 유럽으로 떠나, 벨라스케스, 티치아노, 루벤스, 고야 등의 그림을 공부했다.

1956년 그는 <만돌린이 있는 정물화>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과도한 풍만감'이 나타나는 그림을 발표했다. 평범한 테이블 위에 놓인 만돌린 역시,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입체감이 느껴졌던 것.

페르난도 보테로의 이름은 앞서 언급한 거장들의 명화를 비롯해 이아생트 리고의 작품 <루이 14세의 초상>(1701년)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1503년)를 자신만의 그림으로 재해석한 작품(<루이 14세의 초상> 1973년, <모나리자> 1978년)들을 통해 더욱 알려졌다.

거장들을 위한 오마주이기도 했는데, 페르난도 보테로는 "내 스타일의 목적은 규모를 키우는 데 있다"라면서, "그래야 더 많은 색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형태의 관능성과 풍만함을 더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페르난도 보테로는 인물뿐만 아니라 사물, 동물, 식물 등이 지닌 볼륨감에 주목했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풍만함은 풍요와 건강함, 나아가 행복을 상징했다. 물론, 그의 모든 풍만한 그림이 그런 행복을 상징한 것은 아니다. 영화에선 미군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이라크 포로 학대'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전체 관람가 영화임에도, 해당 그림을 보면 12세 이상 관람가를 줘야 할 정도로, 각종 가혹행위와 인권의 유린 행위를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것. '남미의 피카소'라는 별명이 있는 그답게, 해당 그림들은 마치 피카소의 '나치 폭격'을 다룬 <게르니카>(1937년)를 보는 듯 했다.

<아부 그라이브> 시리즈는 미술이라는 예술 역시, 우리 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하나의 일원임을 보여주게 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페르난도 보테로가 인물과 사물만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작품을 보여줬으며, 예술가로서의 깊이와 철학에 대해서도 담아냈다.
예를 들어, 페르난도 보테로는 전 세계 주요 지역 6곳에 작업실을 두면서, 끊임없이 작업 활동을 이어갔는데, 1992년 화가로 인정받던 시기에 그는 잠시 그림 작업을 중단하고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다. "좋은 예술가는 해결책을 찾고, 위대한 예술가는 문제를 찾는다"는 생각으로.

그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대규모 조각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는 프랑스 정부가 살아있는 예술가의 전시를 위한 공간을 제공한 최초의 사례였다. 이후, 그는 전 세계 25여 도시에서 조각 전시회를 열었다.

한편, 40여 개국에서 100회 이상의 대규모 전시를 진행했는데, <보테로>에서는 중국과 홍콩의 전시를 아시아 지역을 대표해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2009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페르난도 보테로가 내한해 22만 명의 관람객을 모은 바 있으며, 2015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도 대형 전시가 열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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