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던 이 공포 시리즈의 운명은?

조회수 2019. 6. 2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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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알려줌] <애나벨 집으로> (Annabelle Comes Home, 2019)
글 : 박세준 에디터
영화는 영화로 끝나지 않는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프랑스 한 지하 방에서 최초의 영화상영을 한 뒤, 테렌스 영 감독은 1962년 <007 살인번호>(Dr. No)를 제작함으로써 시리즈 영화의 시대를 열었다.

2시간 남짓한 영화의 제한된 시간에 감독과 관객은 만족하지 못했고, 많은 영화와 시리즈에서 속편과 프리퀄 등 이어지고 파생되는 이야기를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을 거쳐 쏟아내게 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2008년 이후 시작된 이 장엄한 이야기는 스스로를 '사가(Saga)'로 칭하며 각각의 영화가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만 남지 않음을 주장했다. 물론 '유니버스(Universe/세계관)'란 개념은 비단 마블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이 용어가 이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일임이 틀림없다.
제임스 완 감독은 2003년 <쏘우>(단편)를 시작으로 성공 가도를 달린, 호러 영화계의 떠오르는 거장이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년), <아쿠아맨>(2018년) 등 여타 시리즈물의 단일 영화를 연출하기도 하고, <인시디어스>(2010년) 등의 연출을 맡기도 했지만, 그의 대표작은 무엇보다 <컨저링>(2013년)이라 하겠다.

'컨저링 유니버스'라 통칭하는 이 시리즈는 제임스 완 감독을 이른바 하나의 '사가' 속 설계자로 군림하게 하는 유일한 사유(事由)다.

'MCU'가 기존의 코믹스를 기반으로 했듯 '컨저링 유니버스'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동일한 악마와 악령의 존재, 흡사한 분위기와 시리즈를 관통하는 연출과 설정은 <애나벨 집으로>까지 이어진 7편의 영화를 직조(織造)해내는 '사가'의 중요 재료가 되었다.
실화의 역사는 1943년 사무엘 멀린스가 '애나벨'이라는 인형을 제작한 이후 쭉 이어져 왔다. 1952년 루마니아 성카르타 수도원에서 한 수녀가 자살하는 사건(<더 넌>)이 일어났고, 1955년 멀린스 저택에서 <애나벨: 인형의 주인>의 배경이 된 '재니스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패서디나에서는 '미아 부부 사건(<애나벨>)'이 벌어졌고, 1971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해리스빌에선 '페론 가족 사건'이 일어났다(<컨저링>).

1973년 미국 요로나 사건(<요로나의 저주>), 1977년 영국 런던 앤필드의 '호지슨 가족 사건(<컨저링 2>)'등 역시 시리즈를 받치는 실재했던 이야기들이 있다.
<애나벨 집으로>는 이러한 사건들 가운데 위치한 1968년 '애나벨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듯하다. '미아 부부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온 '워렌 부부'는 '애나벨' 인형을 자신들의 지하 박물관에 가둬두고, 결계를 사용해 안전장치를 걸어둔다.

모든 공포영화가 그렇듯이, '호기심'이 사건의 발단이 되고 악령은 풀려나 인간을 괴롭힌다. 10대 소녀들조차 제압하지 못하는 악령의 무기력함과 글래머러스한 소녀들의 클리셰가 아쉽긴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던 게리 도버먼 감독의 연출은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예상할 수도 있다.

'세계관'의 핵심은 '연결'이다
설정은 유니버스의 중요 자원이다. 일명 '떡밥'으로 불리는 이스터에그는 'MCU'가 거대한 팬덤을 누리게 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컨저링 유니버스'의 연속성은 이러한 점에서 아쉬움을 낳는다. '애나벨'이라는 인형을 통해 악령의 존재가 중첩될 뿐, 개별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파생적 이야기가 관객 사이 재생산되진 않는다.
일련의 사건으로 연결된 '컨저링-애나벨 실화 사건'의 이야기는 <컨저링>의 개봉으로 시작되었는데, 호러 시리즈의 특성상 속편들은 프리퀄 형식으로 제작됐고, <요로나의 저주>(2019년), <컨저링 2>(2016년) 등 이후의 이야기가 추가로 나왔다.

추측과 분석으로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고 이스터에그 등 내러티브를 활용한 해체와 편집, 그리고 재결합의 과정을 통해 재미를 증축하는 최근 '영화팬'들의 성향으로 비추어 볼 때, 이 '사가'의 부재한 떡밥들이 아쉽다는 평가는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완 감독은 호러 장르의 유례없는 '사가'를 써나가고 있다. <더 넌>(2018년)으로 시작된 악마의 실체는 <컨저링>, <요로나의 저주>, <컨저링 2>로 이어지고, <애나벨: 인형의 주인>(2017년)은 <애나벨>(2014년), <애나벨 집으로>로 확장되고 있다.

두 이야기의 중심에 '워렌 부부'라는 실존했던 액소시스트 부부가 위치하고, 각 영화의 개별적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지금껏 '호러'의 공포는 일시적이었고, 소비적인 재미였다. 이야기는 단일 영화에서 생산된 직후 소멸했고, 관객은 한 편의 공포를 계절 과일처럼 즐기고 끝냈다.
제임스 완 감독이 추구하는 이 세계관은 어쩌면 오컬트 역사와 문화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마블이 코믹스 세계를 극장으로 끌어냈듯, 제임스 완 감독도 미스터리한 실화를 시각화함으로써 공포의 미화(美化)를 현실화하고 있다.

'사가'의 완성을 통해 '컨저링 유니버스'는 단순한 호러물의 생산과 소비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팬과 관객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진동시킬 것이다.

답답해서 내가 만든다
게리 도버먼 감독의 각본작은 평단, 관객 모두에서 큰 호평을 받지 못했다. <애나벨>, <애나벨: 인형의 주인> 등 '애나벨' 시리즈는 처참한 수준이었고,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그것>(2017년)은 '절반의 성공' 정도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도버먼의 각본이 그래도 사용되는 것은 호러 각본가로서의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애나벨 집으로>는 그래서 중요하다. '존 R. 레오네티(<애나벨>)', '데이비드 F. 샌드버그(<애나벨: 인형의 주인>)' 감독들의 연출은 그 자체로도 비판의 여지가 상당하고, 그래서 각본의 변명도 수용할 수 있다.

도버먼 감독이 만약 <애나벨 집으로>를 통해 이전과는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다면, 그의 각본은 추후 호러 영화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할 것이고 감독으로서의 게리 도버먼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언론 시사회를 통해 확인한 <애나벨 집으로>의 결과물은 호러 본연의 의미를 고수한 작품이었다. '무서움'에 주안점을 두고 불필요한 서사는 최소화했으며, 기승전결의 단순한 흐름을 충실히 지키며 집중력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위대한 작품'을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지 않고, 완성도 높은 '오락 영화'의 자리를 고집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다만, 호러 영화의 편리한 구성과 설정에 쉽게 기댄 연출은 아쉽다. 예컨대, 인물과 관계의 구성이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어린 딸과 보모는 친구를 초대하고, 생일파티라는 진부한 설정으로 보모의 남자친구까지 끌어들이는 상황은 '고전적임'과 '촌스러움'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가슴과 엉덩이가 큰 여배우들(매디슨 아이스먼, 케이티 사리페)은 그저 눈요기로 다시 한번 전락하고, 15세 관람가라기엔 빈약한 공포성과 잔혹성은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역할을 한다.

<애나벨 집으로> 그리고 그 이후
지난 6월 26일 개봉한 <애나벨 집으로>는, <애나벨>에서 워렌 부부에 의해 소환된 '애나벨'이 부부의 '오컬트 뮤지엄'에서 잠시 해방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관한 이야기다.
기대됐던 워렌 부부의 활약은 전무하지만, <어메이징 메리>(2017년)를 통해 '삼촌팬'들의 심장을 폭격했던 맥케나 그레이스의 연기와 시리즈의 각본을 맡아왔던 게리 도버먼 감독의 첫 연출을 기대해볼 만하다.

시리즈의 각 영화는 몇몇 '쿠키 영상'을 통해 프리퀄 혹은 속편에서 다뤄질 이야기를 기대케 하고, 이는 줄곧 제작으로 참여하고 있는 제임스 완 감독이 '컨저링 유니버스' 완성에 욕망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2020년에는 <컨저링 3>가 개봉될 것으로 보이고, 1976년 '워렌 부부'의 '아미티빌 조사'를 다룬 영화 역시 제작되면서 시리즈는 이어질 예정이다. '컨저링 유니버스'의 시작은 창대했고, 이후 속 빈 강정의 속편들이 즐비했지만 이어질 시리즈에서 다시 재도약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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