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엮인 세 여자가 서로에게 감춘 진실

조회수 2021. 2. 23.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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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빛과 철> (Black Light,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빛과 철> ⓒ 찬란
영화 <빛과 철>은 차 한 대가 교통사고 현장을 지나가면서 시작된다. 마치 관객에게 이 교통사고의 현장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처럼. 이 교통사고로 인해 '영남'(염혜란)의 남편 '남길'은 의식불명이 됐고, '희주'(김시은)의 남편 '선우'는 세상을 떠났다.

교통사고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기 마련인데, 당시 '희주'의 오빠 '형주'(이주원)는 '선우'가 가해자인 것으로 '합의'를 진행해 사건을 일단락했다. 시간이 흘러, '희주'는 다시 일하기 위해 떠났던 마을의 공장으로 복직을 신청했고, 잊고 싶었던 '영남'을 만난다.

'영남'은 의식불명이 된 남편과 남은 딸 '은영'(박지후)을 위해 병간호와 '희주'가 있는 공장 내 구내식당에서 일을 반복하는 고단한 삶을 버티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자신의 남편이 '가해자'라는 사실이 죄책감이 되어, '희주'는 늘 불안함과 이명을 느낀다.

이에 '희주'는 '영남'과 함께 같은 공간에 일할 수 없어서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나, 회사 측은 난색을 보인다. 한편, '은영'은 가족의 불행이 자신의 탓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우연히 만난 '희주'에게 숨겨진 교통사고의 비밀을 꺼내려 한다.
영화 <빛과 철>은 단순히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거나, 의식불명이 된 아내들의 갈등을 막장드라마 속 내러티브로 그려내지 않는다. '희주'와 '영남', 그리고 '은영'은 자신이 마음속으로 간직하던 비밀의 무게를 죄책감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건조하게 보여준다.

"교통사고의 현장을 기억하라"라고 서두에 언급한 이유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의도적으로 관객에게 끊임없이, 어떤 인물이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를 질문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시로 '희주'의 이명을 효과음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며, 그 고통을 '체험'하게 해준다.

그런 영화를 보던 관객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 사건을 규정짓는 게 어렵다는 걸 깨닫는다. 서로에게 쌓인 오해는 '죄책감'을 서로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상황 자체를 조성하지 않았다. 여기에 '희주'가 남편의 과거 진료 기록을 열람하려 했으나, 의사가 "아내도 타인이다"라며 열람을 거부한 걸 통해 영화는 '타인'의 범위를 생각해보게 한다.

서로가 '죄의식'을 말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그야말로 '가족'의 범주에 있던 '남편'의 치부를 꺼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작품을 연출한 배종대 감독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의 힘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타인을 만나 변화하고, 이를 통해 성장하면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은 것. 배종대 감독은 타인의 만남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그 충돌 자체만으로도 변화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영화가 <빛과 철>이라는 제목을 사용한 이유처럼 보이는데, 날카롭고 차가운 철이 강하게 만나면, '스파크'라는 빛이 나서 그런 제목을 사용한 게 아닐까? 여기에 배종대 감독은 "교통사고가 날 때도 서로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발견하고, 결국 육중한 차체의 철이 부딪힌 것"이라면서, "'희주'와 '영남'을 엮이게 만든 최초의 사고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제목이 될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빛과 철>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갈등에만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산업재해를 갈등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용역 하청업체의 파견직 근로자라는 이유로, 산업재해를 당한 이들에 대해 회사가 제대로 된 처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한다.
이와 연결 지을 수 있는 시퀀스로, 영화는 한 노동자가 다치는 사고를 보여준다. 동료 노동자들이 걱정하는 모습과 구급차가 떠나는 장면, 그리고 '무사고 1,000일' 축하 플래카드를 한 컷에 담아내며, 영화가 주고 싶은 메시지를 강조했다.

당연하게도 <빛과 철>은 배우들의 이야기를 빼놓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그 연기를 보는 맛이 살아 있었다. 이를 위해 감독은 의도적으로 카메라의 움직임을 자제해, 배우의 이미지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 게다가 배우들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 후, 대본 리딩이나, 사전 만남을 갖지 않고 현장에서 날것의 연기를 보여달라고 지시했다.

일례로, '희주'와 '영남'이 본격적으로 대면하는 장면은 정말로 배우들이 처음으로 조우한 상황에서 촬영된 것이다. 덕분에 영화에선 염혜란 배우가 말한 "숨은 칼날들이 훅훅 날아다니는 느낌"처럼, 해당 장면이 잘 표현됐다.

2021/02/20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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