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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분 동안 '연기의 끝'을 볼 수 있는 영화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세자매> (Three Sister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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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좋아!
글 : 양미르 에디터

신도시의 자가 아파트에서 살며, 잘나가는 교수 남편 '동욱'(조한철)과 말 잘 듣는 아이들까지, 세 자매의 둘째 '미연'(문소리)은 겉으로 보기엔 남부러운 것 없어 보인다. '미연'은 독실한 믿음을 지니며, 성가대 지휘자로 임하며, 동시에 가정주부로 살아가지만, 그 안엔 가식이라는 가면이 있었다.

식사 기도를 하지 않는 딸이 기도할 때까지 밥을 먹지 않겠다는 장면은 '미연'의 성격이 잘 묻어져 있었다. 어느 날, '동욱'과 함께 다니던 성가대 단원 '효정'(임혜영)이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한 후, '미연'은 억눌려왔던 상처와 아픔을 비롯한 모든 감정을 폭발한다.

손님이 없는 꽃집을 운영하는 세 자매의 첫째 '희숙'(김선영)은, '욕설'과 함께 반항하는 딸 '보미'(김가희/<박화영>(2018년)의 그 '박화영'이다)와 사채업자 때문에 가끔 꽃집에 찾아와 돈만 받아 가는 남편 '정범'(김의성)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떤 상처가 있더라도 '희숙'의 입에선 "미안하다"와 "괜찮다"라는 말이 전부.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없었던 '희숙'은 습관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해를 한다. 자해 순간, '희숙'의 표정은 마치 약을 한 사람처럼 '고통에서 벗어난' 느낌으로 변한다.

출처영화 <세자매> ⓒ 리틀빅픽처스

세 자매의 막내 '미옥'(장윤주)은 집에서 매일 술과 함께 보내는 극작가다. 좋은 글이 써지지 않아 슬럼프에 빠진 '미옥'은, 시도 때도 없이 '미연'에게 전화를 걸면서 주사를 부린다.

'미옥'은 늘 거침없는 말과 행동 때문에 '착한' 남편 '상준'(현봉식)과 의붓아들 '성운'(장대웅)을 당황하게 한다. 취하지 않은 척하면서 잘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매번 실수를 반복해 꼬여가는 인생을 살던 '미옥'은 어떤 상황을 통해 자신의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영화는 세 자매의 일상을 교차로 전개한다. 세 사람의 모습에선 '한숨'이 절로 나올 상황이 펼쳐진다. '고구마를 잔뜩 먹은' 느낌의 상황 말이다. '희숙'은 딸에게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며, '미연'의 믿음은 점점 세속적으로 보이며, '미옥'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영화는 미장센을 통해 세 자매의 성격을 대변해준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꽃집의 분위기가 화사한 것과 달리, '희숙'의 꽃집은 그야말로 어두컴컴하며, 비좁다. '희숙'이 입는 의상 역시 대사에 드러나듯이 "있는 손님마저 보낼 거 같이" 초라하다.

영화의 엔드크레딧에는 둘째 '미연'의 집 촬영 장소로 '광교 신도시'의 한 고급 아파트가 소개됐는데, '미연'의 집은 새하얀 벽지와 화이트칼라의 소품으로 꾸며져, '무결점'으로 보이고 싶은 '미연'의 성격을 강조했다.

직업이 극작가인 '미옥'의 경우엔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패턴이 있는 집 내부 인테리어와 '독특한 의상'을 통해,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보여주고자 했다. '미옥'의 헝클어진 금발 탈색 머리 역시 그런 성격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관객은 영화의 중반부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세 자매가 왜 그런 성격을 가져야 했는지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스며든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그 무렵 영화는 의미심장하게 작품의 가장 첫 장면인 '달리는 두 소녀'의 모습을 '흑백'으로 보여준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 자매'는 자신의 문제를 '내부(성격 등)'에서 찾고자 했었지만, 이 사연을 보여준 후 '세 자매'의 공통 문제는 '외부'에 있었음을 관객은 깨닫는다. 이 영화에선 '세 자매'의 아버지가 자행하는 '가정폭력'이 화두로 등장한다.

'가정폭력' 때문에 '미연'(김지안)과 '미옥'(정예나)은 맨발로 간신히 근처 슈퍼로 도망쳐 나왔지만, 슈퍼에서 술을 마시던 두 남자는 별것 아닌 듯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여 주고 보내버린다. 그 가정폭력에서 나온 상처는 세 자매가 성인이 된 후에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던 것.

세 자매는 이 트라우마로 응축된 모든 갈등이 최고조로 임했을 때 털어낸다. 당연하게도 해결점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세 자매의 어린 시절에 잊고 있었던, 그로 인해 파생된 트라우마 중 일부가 걷어졌을 뿐. 그래도 적어도 세 자매는 자신의 문제가 그저 내부에 잠재한 모든 중압감에서 온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소통과 거짓말>(2015년), <해피뻐스데이>(2017년) 등 독립영화에서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낸 이승원 감독은 작품에 주제에 대해 '사과'를 언급했다. '보미'가 "어른들이 왜 사과를 안 해"라면서 울부짖는 장면이 바로 그것. 이승원 감독은 "우리 관계는, 특히 가족 간에 관계에서 진정한 사과는 많은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살면서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러면서도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잊힌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냥 가족이니까 '의절'하지 않는 이상, 평생 보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물론 '보미'가 했던 행동을 본다면, '보미'도 사과는 해야 할 것 같다)

당연하게도, 이런 주제가 잘 살아나려면 배우들의 열연이 있어야 가능한 일. 문소리의 연기 내공은 이번에도 온전히 발휘됐는데, '미연'이 바람피운 남편에게 다가가 하는 속삭임에서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김선영 역시 '희숙'의 소심한 성격을 탁월하게 표현했는데, 자해 직후 나오는 표정은 압권이었다.

또한, <베테랑>(2015년)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보인 장윤주는 지금까지 자신이 보여줬던 모습과는 완벽히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이들의 연기 덕분에, 영화는 115분 동안 '연기의 끝'을 볼 수 있었다.

2021/02/06 CGV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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