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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인가? 또라이인가? '소담'의 정체가 궁금하다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후쿠오카> (Fukuoka,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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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덜덜
글 : 양미르 에디터

헌책방에 젊은 손님 '소담'(박소담)이 다가온다. '소담'의 정체는 당최 알 수 없다. 교복을 입고 왔지만, 교복 입는 것을 좋아하는 21살이라고 한다. '소담'은 책방 주인 '제문'(윤제문)에게 다짜고짜 일본 후쿠오카 여행을 제안한다. '제문'은 "휘둘렸다"라는 표현이 어울리게, '소담'과 같이 후쿠오카로 향한다.

'제문'은 28년 전인 '대학 동아리 시절'에서 절친했지만, 같은 여자인 '순이'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연을 끊고 지낸 선배, '해효'가 운영하는 작은 술집 '들국화'로 간다. 두 사람을 모두 사랑한다고 말한 후, 갑작스레 사라진 '순이'를 못 잊은 '해효'는 '순이'의 고향인 '후쿠오카'로 이민을 왔다.

하지만 '해효'는 '순이'를 한 번도 볼 수 없었고, 그에겐 말 한마디도 없는 단골만이 찾아왔었다. 그러던 중 28년 전의 '연적', 후배 '제문'이 처음 보는 '소담'이라는 여자와 함께 '들국화'를 찾았으니, '해효'는 기분이 묘하다. '제문'은 술집에 들어서자마자, 28년 전의 해묵은 이야기를 꺼낸다.

앙금이 많은 두 사람 사이에서, '소담'은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게 두 사람을 이어주고, 함께 '후쿠오카'의 곳곳을 동행한다. '소담'은 묘하게 두 남자를 꿰뚫어 보는 모양이었고,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게 일본어나 중국어 모두를 한국어로 소통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출처영화 <후쿠오카> ⓒ 인디스토리, 률필름

'재중동포' 출신 감독 장률의 12번째 영화, <후쿠오카>는 장률 감독의 '도시 3부작'을 마무리하는 작품이라고 전해졌다. '도시 3부작'의 첫 작품인 박해일, 신민아 주연의 <경주>(2014년)를 통해선,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박해일, 문소리 주연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년)에선 일제의 잔재인 '적산 가옥'이 밀집한 군산의 모습과 더불어 '고향 선배'(연변)인 윤동주를 기리는 감독의 마음을 담아냈었다. 이처럼 장률 감독은 '영화'라는 예술 매체를 통해, 역사와 더불어 '경계'에 대한 사유를 선보인 연출을 선보였다.

장률 감독의 키워드는 당연히 '경계인'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되어, 이방인들의 애환을 담아냈으며, 한국에서 본격적인 연출 활동을 이어갈 때는 '사랑'과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면서 '여행 영화'라는 말을 해도 좋을 정도로, 그 도시의 질감과 정서를 상당히 잘 포착해냈다.

그래서 장률 감독의 영화를 편하게 보려면, '대리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따라가는 방법도 좋을 터. 특히 '비대면 시대'의 근래 상황에선 더욱. 여기에 "우린 너무 긴장하고 살아서 그래요"라는 '소담'의 대사는 단절과 경계의 세상에 살면서, 피곤한 관객에게 일종의 치유를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장률 감독은 '후쿠오카'를 선택했을까? 후쿠오카는 수많은 '재일동포'가 사는 곳이면서, 중국과도 오랜 교류를 유지한 곳으로, 동아시아 3국의 경계가 맞닿는 도시이기도 하다.

심지어 장률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후쿠오카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기도 했고, 지난해 <후쿠오카>가 소개될 때는 장률 감독의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이렇게 후쿠오카는 장률 감독과 '영화의 연'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장률 감독에게는 윤동주 시인이 형무소에서 싸늘한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도 인식됐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엔 윤동주의 시, '사랑의 전당'과 '자화상'이 등장한다. '자화상'은 '해효'의 술집에서 볼 수 있다.

'사랑의 전당'은 "순아 너는 내 전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로 시작되는데, 이 작품에서 두 남자가 보고 싶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순이'는 다른 윤동주의 시인 '소년'이나, '눈 오는지도'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이뤄지지 못한, 미지의 여인이다. 어쩌면, 윤동주와 '순이'라는 두 이뤄질 수 없던 사랑이 '소담'과 두 남자로 묘사된 것은 아닐까?

물론, 이는 감독이 담고 싶었던 다양한 해석 혹은 함의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판타지'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도록, 그 세계를 뒤섞었기 때문.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판타지로 봐도, 현실로 봐도 이 작품은 '말이 된다'. 이를 위해 장률 감독은 '소담'이라는 캐릭터를 사용했다.

<기생충>(2019년)에서 기세 있는 모습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박소담은, <후쿠오카>에선 부유하면서, 경계를 넘나드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여담이지만, 대선배 배우들과의 합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박소담의 연기는 대단했다. 아무튼 '소담'의 정체는, '귀신'이거나, '관찰자'이거나, 그저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

관객은 첫 장면에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를 귀 기울여 보면서, 가끔은 '소담'이 '귀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소담'이 한국어로 길을 물어도 일본인이 찰떡같이 알아서 답하거나, '소담'이 중국 소설 <금병매>를 중국인에게 건네고, 그 중국인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건네는 대목은 서로의 언어를 하고 있음에도 매끄럽다.

(3국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덤) 하지만 해당 장면을 되돌아 보면, 각자가 그렇게 유창한 어휘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니, 현실로 봐도 수긍이 된다. 심지어 '제문'이 "쟤는 또라이라니까"라는 말을 남기니, 더욱 수긍된다.

또한, 서두에 소개한 '해효'와 '제문'의 대립이 정말로 28년 전 '순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 역시, 현실이라고 해도 그럭저럭 수긍이 되고, 윤동주 시인의 마음으로 치환해도 수긍이 된다.('소담'이 '순이'로 연극을 하는 장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해효'와 '제문'이 서로를 좋아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라는 묘한 상상력도 할 수 있게 해준다. '소담'이 일본 여성과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더욱이 그 상상력에 날개를 더해준다. 적은 예산에서 나올 수 있는 장률 감독의 뛰어난 상상력이 계속해서 기대되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20/08/29 CGV 신촌아트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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