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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미친 소년, 선생 죽이려고 한 이유는?

조회수 2020. 8. 4.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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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소년 아메드> (Young Ahmed,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소년 아메드> ⓒ 영화사 진진
* 영화 <소년 아메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년 아메드>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다르덴 형제가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은 늘 사회 문제를 탐구하면서, 핸드헬드, 롱테이크 촬영 스타일과 비전문 배우 기용을 통해 현실감을 더한 '허구의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칸영화제에만 무려 8차례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그중 2차례는 황금종려상(<로제타>(1999년), <더 차일드>(2005년))을 받았었다. <소년 아메드>는 잘못된 소년의 신념과 그 신념을 뒤흔든 사건을 통해, 종교를 맹신하는 것이 한 사회의 구성원을 어떻게 변질시키는지를 보여준 작품이다.

원리주의에 입각한 극단적인 교리의 종교 지도자 '이맘'(오스맘 모먼)에게 사로잡혀,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13살 소년 '아메드'(이디르 벤 아디)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가르친 돌봄 교실 선생님 '이네스'(미리암 아카디우)를 '배교자'라는 이유로 죽이려 하는 내용이 <소년 아메드>의 줄거리.
'아메드'는 벨기에에 사는 무슬림 소년으로, 아랍계 아버지와 벨기에 혈통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재했고, 어머니(클레어 보드손)는 생계를 위해 바쁜 상황에서, '아메드'의 빈자리엔 종교 지도자 '이맘'이 나타난 것. 물론, '이맘'은 '아메드'가 잡힌 후,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다르덴 형제는 2015년 프랑스 파리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부터, 그해 11월 일어난 '파리 테러', 그리고 2016년 벨기에 '브뤼셀 테러' 등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다르덴 형제의 모국 벨기에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무슬림 인구 비율이 높고, 대다수 무슬림이 이민자나 이민자의 후손으로 가난하고 빈곤한 상태였다.

그들은 이른바 종교 원리주의에 빠져, 테러 등 극단적인 행동을 이른바 '성전'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이들의 나이는 조금씩 어려지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신의 이름으로 선생님을 해치려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그 해결 방법에 대해 고민하자는 사회적 화두를 던지기 위해 제작됐다.
영화는 시종일관 '아메드'를 따라가는 연출을 펼친다. 첫 장면은 화장실과 교실을 오가는 '아메드'의 뒤를 따라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좁은 화장실 안에서 통화를 하는 '아메드'가 누구와 통화를 하는지, 왜 숨어서 통화하는지를 보여주지 않으며, 영화는 이윽고 빠른 전환과 함께 카메라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아메드'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나오는 카메라 앵글은 독특하다. '아메드'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카메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메드'를 내려다보도록 했으며, '아메드'는 그보다 더 아래에 시선을 두며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담는다.

'아메드'의 집에서는 비좁은 부엌에서 말다툼하는 '아메드'와 '어머니'를 비추는 대목이 나오는데,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이 극대화됐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 상황은 세상과 어른으로부터 상처받은 '아메드'의 심리를 표현한 것.

뤽 다르덴 감독은 "'아메드'를 프레임 안에 어느 정도 가두고 싶었다"라며, "자기 자신을 극단주의에 가둬 버린 것과 같은 방식이다. 꽉 찬 프레임 안에서 '아메드'는 끊임없이 카메라를 벗어나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그런 '아메드'가 시선을 위로 두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이맘'의 말을 경청할 때였다. '이맘'의 말 외에는 모든 것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표현인 셈.
'이네스'를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 '아메드'는 소년원에 가게 되는데,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장면의 배경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소개된다. 마치 '아메드'의 불안한 심리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원에서 머물던 '아메드'는 외부활동을 위해 농장 일에 나서는데, 농장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지금까지 담아낸 '미로'가 아닌 '넓은 시야'의 '아메드'를 잡아낸다. 다르덴 형제는 이 농장의 촬영 장면을 통해 '아메드'가 흔들리기 쉬운 소년임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의 대상은 농장에 사는 백인 소녀 '루이즈'(빅토리아 블록)였다.

'아메드'와 '루이즈'가 농장에서 함께 있는 대목에서 '루이즈'는 '아메드'에게 안경을 벗으라고 하고, 그 안경을 직접 쓴다. 이 영화에서 안경은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고, 타인으로부터 감정을 들키지 않도록 가려준 도구로 설정된다. '아메드'가 안경을 벗으면서, 세상과 소년의 경계는 무너졌고, 그저 성전을 외치던 광신도의 모습에서 사춘기 소년의 모습으로 변화하며, '아메드'는 잠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메드'는 마음을 다잡으며, '성전을 준비하는 전사'로 변신한다. 이 작품을 보는 대다수 관객은 '아메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묘했다. 기어코 '아메드'는 '이네스'를 죽이기 위해 건물을 타던 중 추락하고 만다. 그 상황에서 '아메드'는 '신의 이름'이라도 부를 줄 알았건만 '엄마'를 외친다. 흉기를 들던 손으로는 '이네스'의 손을 잡아 도움을 청한다.(그 순간 '이네스'를 죽이기 위해 흉기라도 휘둘것만 같은 생각이 들긴 했다)

자기 자신이 파괴되고 나서야, '아메드'는 일말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후 엔드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 960'.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는 동안 관객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종교에 갇힌 '아메드'가 잘못을 뉘우쳤을까?"

이처럼 <소년 아메드>는 관객에게 수많은 질문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소년 아메드>를 만든 다르덴 형제는 이렇게 말했다. "신앙심이 깊은 등장인물을 비난하는 건 우리의 목표가 아니었다. 도덕주의자처럼 '아메드'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 '아메드'와 같은 소년이 타락했다고 여기는 대상을 죽이고 싶게 만드는지, 시간을 두고 헤아려 봐야 했다."(뤽 다르덴 감독)

"어떤 종교든 그런 모습(기도 이후 '아메드'가 '이네스'를 죽이려는 모습)은 보기에 정말 끔찍하다. 종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종교의 특수성 때문이다."(장 피에르 다르덴 감독)

2020/08/01 CGV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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