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로는 스크린 찢어버렸는데, 왜 이리 아쉬울까?

조회수 2020. 7. 5.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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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소리꾼> (The Singer,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소리꾼> ⓒ (주)리틀빅픽처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년)는 그야말로 전설로 남은 판소리 소재 영화로, 당시 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모두 싹쓸이한 드문 작품이다. '한의 정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당시 한국영화 사상 최초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금이야 100만 돌파는 상업영화가 당연히 넘어야 할 관문 중 하나였지만, 멀티플렉스가 없던 시절을 생각해본다면 실로 대단한 기록. '국제화 시대'에서, 한국인의 정서를 접목한 작품은 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이정표를 제시한 작품이었고, 5분에 달하는 '진도 아리랑' 노래 장면은 현재까지도 한국영화 최고의 롱테이크로 손꼽히고 있다.

왜 약 30년 전의 영화 이야기를 꺼냈냐면, 이후 '우리 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의 '흥행'이나, '완성도'가 그렇게 썩 좋지 않았기 때문. 임권택 감독의 차기작인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작품 <춘향뎐>(2000년)이 그랬고(<소리꾼>의 마지막 장면은 <춘향뎐>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서편제>의 후속작으로 홍보된 <천년학>(2007년)이 그랬다. 심지어 <춘향뎐>은 미성년자 배우의 노출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으로 시선을 넘기다 보면,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호평보다 혹평을 받아야 했던 <도리화가>(2015년)도 있었다. <소리꾼> 역시 <서편제>의 길을 걷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개봉 시기의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었다. 조선 소리꾼으로 밥벌이를 이어가는 '학규'(이봉근)는 아내 '간난'(이유리), 딸 '청이'(김하연)와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인신매매'와 유사한 '자매조직단'에게 아내 '간난'이 납치되고, 딸 '청이'마저 탈출 과정에서 눈을 멀게 되자, '학규'는 비탄에 빠진다.

'학규'는 북 치는 장단잽이 고수 '대봉'(박철민)과 '청이'와 함께 아내를 찾아 나서고, 이 여정엔 빈털터리 '몰락 양반'(김동완), 스님, 장사꾼이 동참한다. 한편, '학규'는 '간난'을 찾고자 스스로 지어낸 이야기인 '심청가'에 곡조를 붙이면서, 저잣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영화는 '심청가' 이야기를 액자식 구조 형태로 설정해 '재연 드라마'처럼 극 중 곳곳에 배치한다. 이 '재연 드라마'와 함께 나오는 소리꾼 이봉근의 목소리는 탁월한 선택임이 분명했다. 그야말로 판소리로 스크린을 찢어버리는 느낌이 들 정도.

문제는 그 외의 나머지 모든 요소는 하나 가득 안타깝다는 것.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사투리와 표준어가 뒤섞여버린 애매한 대사 처리. 일부 배우들에게 나오는 연기 톤은,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인 명절 2부작(지금은 중간 광고도 넣어야 하니 4부작으로 나오겠지만) 특집극을 보는 느낌이 짙었다.
별 웃음도 나오지 않는, 약 30년 전 <서편제> 시대에도 허무함을 느끼게 해줄 '아재 개그'를 넣어준다. <서편제> 속 '유봉'(김명곤)이 어린 '송화'와 '동호'를 가르치는 장면의 웃음 코드가 더 현대적으로 보일 지경.

여기에 '심청가'가 왜 민심을 울리고, 세상을 바꾸는 노래인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가 잘 보이지 않는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연상케 하기 위한 홍보 포인트로 넣은 문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에서 '심청가'의 역할은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구전 작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조정래 감독은 지난 2016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소재로 한 <귀향>을 선보인 바 있다. <귀향>은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 직후에 개봉해 생각할 여지를 제공해줬던 작품이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며, 이후 <아이 캔 스피크>(2017년), <허스토리>(2018년)와 같은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 마중물 역할도 해줬다.

허나 선의가 항상 영화의 완성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고, 이는 우리 소리의 대중화를 목표로 한 <소리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 같다. 하지만 <귀향>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소리를 계속 알릴 '완성도 높은 영화'는 필요해 보인다.

2020/07/01 CGV 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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