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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처럼 상의 탈의하고 축구하던 소녀에게 벌어진 일

조회수 2020. 5. 26.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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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톰보이> (Tomboy, 2011)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톰보이> ⓒ (주)영화특별시SMC
* 영화 <톰보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살 '로레'(조 허란)에겐 친구처럼 가깝지만 바쁜 날엔 한없이 멀리 있는 아빠(마티유 데미), 항상 자신의 편이지만 또래가 아니어서 같이 놀기엔 한계가 있는 6살 동생 '잔'(말론 레바나), 그리고 임신으로 인해 온전히 자신과 동생을 돌볼 수 없는 엄마(소피 카타니)가 있다.

그런 '로레'는 여름방학을 맞아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한 첫 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다주는 친구 '리사'(진 디슨)를 만난다. '리사'는 낯을 가리려는 '로레'를 데려와 또래 집단에 소개해준다. 무언가 까불거리는 남자아이들과 달리 '로레'가 진중하면서도, 깊은 눈동자를 지닌 묘한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

'로레'는 친구들에게 자신을 '미카엘'로 소개한다. '미카엘'은 흔히 '라파엘', '가브리엘'과 더불어 3명의 대천사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진다. 그리고 흔히 '미카엘'이나, 이 이름에서 따온 영어명 '마이클'은 '남성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미카엘'에서 따온 '여성 이름'은 '미셸'.
이처럼 '미카엘', 남자아이이고 싶었던 '로레'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던 아이였다. 동생 '잔'과는 다르게 '로레'의 방은 분홍색 보다는 파란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자. 문구점에서 보통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필기구를, 여자아이들에겐 분홍색 필기구를 팔지 않았던가?

혹여나 남자아이들이 핑크색 옷을 입으면 "여자애냐"고 놀렸던 그런 시절 말이다. 이처럼 '로레'는 긴 머리를 기르기보다는 숏 커트를 하고, 화장에는 큰 호기심을 두지 않았다. 또래 남자들처럼 상의를 벗은 후 축구하는 것까지 거리낌 없던 아이였다.

다른 또래 아이들도 '미카엘'을 자연스럽게 친구로 인정해준다. 물론, 같은 '남자 아이'로. 그러므로, '로레'는 점점 더 '미카엘'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계속해서 거짓 행동을 취한다. 상의를 탈의하고 축구를 하는 것에서 모자라, 수영하러 나간다는 말에 '로레'는 부모가 사준 수영복의 상의를 가위로 잘라 버린다.
그리고 고무찰흙으로 가짜 성기를 만들어 수영복 안에 넣기도 한다. 그래야 자신이 남자아이들 무리에서 인정받기 때문. 그런 사이 '리사'는 '라파엘'이 자신과 잘 통한다고 여기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로레'에게뽀뽀하고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리사'는 점점 이상함을 느낀다. 분명 같은 학년이고, 반도 하나밖에 없는 학교인데, 정작 '미카엘'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던 것. 이런 거짓말은 '잔'에게도 흘러간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잔'이 이미 '로레'가 '미카엘'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었던 적이 있다는 설정을 공개한다.

이후 '잔'을 아이들에게 소개한 어느 날, '로레'는 '잔'을 지키기 위해 한 남자아이를 때리고, 남자아이의 어머니가 '로레'의 집에 방문하면서 일은 꼬이고 만다. '로레'의 어머니는 이런 '로레'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었고, 다짜고짜 '로레'의 뺨을 때린다.

그러곤 강제로 파란색 '치마'를 입혀, 남자아이와 '리사'의 집에 찾아가 앞에서 대놓고 '성적 지향성'을 공개해버리는 '아우팅'을 한다. '로레'의 어머니는 이것이 사회적으로는 "옳다"라고 믿었기 때문. 하지만 '로레'를 지켜봤던 남자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믿을 수 없는 눈초리로 '로레'를 쳐다본다.
'리사'에 의해 강제로 몸수색을 당하면서, '로레'는 철저히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천사 '미카엘'이 되고 만다. 심지어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 같던 '리사'마저도, '로레'에게 경멸하는 말을 꺼낸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서 규정될 때 나오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나 잘 경험하고 있다.

그것이 성적 지향이건, 정치적 지향이건, 심지어 '부먹과 찍먹' 사이의 지향이건 간에. 물론, 이 영화에서 '로레'의 성적 지향성은 함부로 예단하기 어렵고, 함부로 낙인을 지을 수도 없다. 그런 낙인을 만들어낸 것은 어른의 세계였고, 그 어른의 세계에서 학습한 아이들은 그대로 이행했을 뿐이다.

숲을 담은 큰 화면에서 가장 구석에 작은 모습으로 박혀 있던 '로레'는, 이후 자신이 입었던 치마를 나뭇가지에 마치 매달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이는 자신에게 이런 치마는 필요 없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보였다.

다시 영화의 제목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톰보이'는 영어사전에서 '남자들이 하는 활동을 즐기는 처녀'라는 의미로 표현된다. 21세기인 지금에도 사용되고 있는 어휘라는 게 놀라울 정도이지만.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다. 이 작품에서 혀를 '쯧쯧'거리며 "여자애가 어디서 주책없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은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심사를 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 위원들은 이런 장면들에 아무런 반감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이 영화가 '12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여자아이가 욕실에서 신체 노출하는 장면이 있으나 성적맥락에서의 노출이 아니며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어 선정성의 표현 수위는 보통 수준이고, 아이들이 몸싸움하는 장면에서 경미한 수준의 폭력이 표현되어 있으며, 성인의 음주 장면이 있으나 간결하게 표현되어 수위가 보통이고, 이밖에 주제 이해도도 고려"했다며, 12세 이상 관람가를 내렸다. 상의를 탈의한 축구나, 수영 장면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톰보이>의 마지막 장면을 그야말로 멋지게 해준 '리사'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이 작품에서 '리사'의 성 정체성을 알 방법도 없고, 딱히 알 필요도 없어 보인다. 적어도 남자아이들 앞에서 혹여나 '리사'가 '로레'를 옹호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리사' 역시 똑같은 처지에 놓인다는 것을 영화는 은연중에 보여줬다.
그래서 '리사'는 당장 '로레'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리사'는 용감하게 다시 '리사'에게 다가가, "네 진짜 이름이 뭐야?"라고 묻는다. 그것이 호기심에서 나온 것인지, 우정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랑해서 나온 것인지는 중요치 않아 보인다.

다만,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의 대화로 체화할 수 있는, 연대와 유대로 이어질 '자매애'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최근 작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년)으로도 연결된다.

지금껏 다양한 여성상과 더불어, 그 속에 자리 잡은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보여줬던 셀린 시아마 감독의 '첫 장편 연출 작품'은 이처럼 싱그러웠다. 한편, '잔', '리사' 만큼이나 이 작품에서 '아버지'의 교육법은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이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을 직접 말로 답하기보다는 포옹하고, 격려해 주는 것 말이다.

2020/05/20 CGV 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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