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영화

조회수 2020. 3. 8.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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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Beasts Clawing At Straws,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표지 및 이하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업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관객들에게 그 영화를 평가받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참 안타까운 시기에 개봉했다. 후속으로 개봉하는 50여 편의 다른 영화들이 하나둘씩 '기한 없는' 개봉 연기를 한 것과 달리, 1주일의 유예 기간을 두고 개봉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셈.

한 달에 가까운 상영 기간, 줄곧 3위 안의 흥행 기록을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익분기점 240만 고지엔 턱없이 모자란 약 50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이 영화는 나름의 쏠쏠한 재미를 줬다.

물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독창적인 내용의 작품이라고 말하기엔 거리가 있다. 일본 작가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것도 있겠지만, 하나의 목표인 돈 가방을 갖기 위해 벌이는 사람들의 '살인극'은 충분히 할리우드나 다른 곳에서 봤기 때문.
특히 플롯이 영화의 순서대로 이어지지 않는 '비선형 구조'를 따왔기 때문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1994년)의 향기가 짙게 배 있다. 물론, <펄프 픽션>이 훨씬 잔인하고, 플롯이 더 뒤죽박죽으로 꼬여 있다는 차이가 있겠지만. 또한, '돈 가방' 소재의 다른 역작인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년) 향기도 날 터.

그렇기 때문에, 익숙한 장르의 영화나, 추리극 영화들을 충분히 관람한 관객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심심한 맛'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익숙한 플롯을 끝까지, 자신의 방법대로 완급 조절을 해가며 만든, 김용훈 감독의 의도 자체를 칭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영화다.

국내 기준 '블록버스터급' 예산이 들어가지는 않았어도, 어느 정도의 예산을 받은 작품이기에, 감독의 부담감은 분명 컸을 것이다. 그래도, 이 작품은 조금씩 황폐화되어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웅크린 병폐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를 잘 대변해냈다.
한국 주류 범죄 느아르 영화가 '조폭의 세계'를 다루거나, '상류층 집단'의 비밀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이 작품은 우리 주변에도 있는 평범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중만'(배성우)네 가족이 그 대표적인 사례. '중만'은 횟집을 운영했지만, 사업 실패로 인해 야간 사우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살아가는 중년 가장이다.

'순자'(윤여정)는 과거의 기억에만 갇힌 가운데, 사람을 쉽게 믿는 아들 '중만'이 걱정이다. 그리고 '영선'(진경)은 '중만'이 버는 급여만으로는 딸 학비와 '순자'의 병원비를 감당하는 것이 어려워 국제여객터미널 청소부로 묵묵히 하루를 버텨나간다.

한편, '태영'(정우성)은 출입국 관리소 공무원으로, 사라진 애인이 남긴 빚과 이자로 골치가 아프다. '두만'(정만식)은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로, '태영'이 빨리 돈을 갚기만을 기다리며 협박을 일삼는다. 그사이 '미란'(신현빈)은 사기로 인해 생긴 빚으로 인해 불행의 늪에 빠진 가운데, 남편에게 늘 폭행을 당한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술집에서 일하던 '미란'은 우연히 만난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와 원나잇을 하고, '진태'는 함께 '미란'과 떠나기 위해 남편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살해 계획이 꼬인 후, 등장하는 '연희'(전도연)로 인해,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인물은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인다.
전통적인 상업 영화의 플롯 구조를 '3막 구조'로 했을 때, 영화의 발단과 전개에 이르는 1막과 2막 초반은 어디가 '메인 플롯'인지, 어디가 '서브플롯'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의 연결점이 좀처럼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하지만, '연희'의 압도적인 첫 장면 이후부터, 작품의 갈등 지수는 쏜살같이 올라간다.

거액의 돈 앞에는 가족도, 친구도 믿지 말라는 '현대 사회 격언'이 고스란히 등장하고,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표출하는지를 관찰한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절대 반지'에 사로잡힌 이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고, 그렇지 않은 이가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잘 떠올려본다면 흥미로울 터.

영화는 '비선형 구조'의 플롯을 '빚', '호구', '먹이사슬', '상어', '럭키 스트라이크', 그리고 '돈 가방'까지 6개의 챕터에 나눠 전개한다.('챕터'에 따른 전개는 앞서 언급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 보다는, 8명이 산장에 모이면서 발생한 일을 다룬 <헤이트풀8>(2015년)에 가깝다.)

'선형 구조'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다소 낯선 전개일 순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구슬이 꿰어지듯 연결되는 이야기는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한 인물들이 '돈'이라는 마력으로 인해, 타인을 짓밟고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기 위해 뒤엉키는 모습은 작품의 백미.
묘한 운명이랄까? 이 영화에서 진정으로 가방에 있는 돈 '모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 이들은 처절하게 죽고 만다. 딱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던 인물이 손을 피로 물들인 끝에 사건을 마무리하고, 역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아니었고 묵묵히 삶을 살아가던 인물이 돈 가방을 쥐면서 끝나는 마무리는 인상적이었다.


이는 암울한 결말로 끝을 내는 원작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혹여나 자신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는 언젠가 큰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희망이 섞인 이야기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편, 기시감이 보이는 영화의 전개에서 기름칠 역할을 해준 것이 있으니, 바로 한국 영화 시상식에 없는 '앙상블상'을 줘도 모자람이 없는 배우들의 멋진 호연이다.

또한, 그 중심축에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지닌 전도연의 맹활약이 있었다. 살인을 저지른 이후에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애교까지 펼쳐가며 두 얼굴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은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이었다.

2019/02/22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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