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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만행, 블랙리스트 사태가 떠올려졌다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작가 미상> (Never Look Awa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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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미르 에디터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타인의 삶>(2006년)은 1980년대 통일이 이뤄지지 않은 동독을 무대로, 비밀경찰 '비즐러'(울리히 뮤흐)의 심경 변화를 통해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박탈되고 감시됐는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타인의 삶>을 연출한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신작, <작가 미상>은 전작과 유사한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전작보다 더 광범위한 시대를 담아냈으며, 동시에 한 화가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었다.

비록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2018년)에게 밀리면서, 베니스 영화제, 골든 글러브, 아카데미 등 주요 시상식에서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제야 관객과 만난 <작가 미상>은 그만큼의 여운을 제공한다. 이 작품은 독일의 현대미술 작가 거장으로, '회화의 종말'이라 여겨진 시대에 오히려, 다양한 양식으로 회화의 본질과 가치를 찾아가고자 했던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인생과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미술 이론을 꼭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독일의 근현대사에서 이뤄지는 흡입력 있는 전개를 통해, 3시간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상영 시간'을 돌파해 나간다.

출처영화 <작가 미상> 표지 및 이하 사진 ⓒ 영화사 진진

영화는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일명 '나치당'이 집권하던 1930년대 후반의 한 '현대미술 전시회장'의 전경으로 시작한다. 화가의 꿈이 있던 6살 '쿠르트 바르네르트'(카이 코흐르스)는 이를 응원해주는 이모 '엘리자베스 메이'(사스키아 로젠달)와 함께 전시회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다.

그런데 도슨트는 '현대미술'은 '노동자'에 도움이 되지 않는 '퇴폐예술'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현대미술' 작품이 기존의 관습이나 가치, 사상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주적인 사고가 담겼기 때문. 나치 정권은 철저하게 당시 미술뿐 아니라, 연극, 문학, 영화 등 문화예술계 전방에 걸쳐 탄압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할리우드에 이어 전성기를 누렸던 독일 영화 시장은 몰락했다. 최초의 장편 SF 영화로 알려진, 자본가와 노동 계급 간의 투쟁을 담은 <메트로폴리스>(1927년)로, 표현주의 영화의 거장으로 불렸던 프리츠 랑도 나치 정권의 저항을 받았다. 파시즘을 반대했던 그는 프랑스로 망명했고, 이후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된다.

한국도 이런 문화예술인들의 '표현 자유'는 억압당했다. 군부 정권에는 금지곡 지정, 상영 금지 혹은 '필름 가위질', 대본 사전심의제 등을 거쳐야만 했었고, 최근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도 있었다. 이 '블랙리스트 적폐 청산' 과제는 아직도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다.

'퇴폐예술'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영화는, 이윽고 나치의 '우생학 정책'을 다룬다. 나치는 "현대미술은 사람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정신의 오염은 육체의 오염으로 이어진다"라는 이론을 내세웠다.

영화에서는 참전 중인 병사가 다치면 치료받을 곳이 없기 때문에, 정신 질환자, 장애인, 여기에 성소수자를 모두 유대인처럼 '홀로코스트'의 대상으로 삼는 장면이 나온다. 안타깝게도,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난 인물이었던 '엘리자베스 메이'는 서술한 대로 나치의 주요 청산 대상 중 하나였다.

'엘리자베스'는 '남들과 달리' 여러 대의 버스에서 나오는 경적이 더 예술적이라 판단했으며, '정형화'된 공식에서 나온 바로크 시대 음악의 대표였던 바흐의 음악을 나체로 연주하고는 자신의 내면에 있던 틀에서 깨어나기 위한 퍼포먼스를 펼친다. 행위 예술처럼 보였지만, 나치에겐 '정신병'처럼 보였을 터.

'엘리자베스'는 나치에게 끌려가기 전, "진실한 것은 모두 아름다워, 절대 눈 돌리지마"라고 '쿠르트'에게 외친다. 이후, 나치의 지령을 받은 산부인과 의사 '카를 제반트'(세바스티안 코치)는 '엘리자베스'에게 강제 불임을 결정하고, 수용 시설로 이송 명령을 내린다.

당시 나치 정권은 젊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제약시킴과 동시에, 여성이 해야 할 일은 '건강한 아리아인 양산'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근 개봉한 풍자 코미디 영화 <조조 래빗>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히틀러 청소년단' 캠프 장면에서 대사로 등장한다.

'엘리자베스'는 옆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던 여성 성소수자와 함께 가스실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이런 참혹한 상황이 지나고, 동독에서 살게 된 '쿠르트'는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게 되지만, 전체주의 사상은 이름을 바꿔 그를 억누른다. '나치' 이후 소련의 '사회주의' 사상이 지배한 동독에서 역시 '개인의 자유'는 예술로 승화될 수 없었다.

그사이 '쿠르트'는 패션을 배우는 '엘리 제반트'(폴라 비어)와 사랑에 빠지고, 이는 셰익스피어 비극에서나 나올 법한 전개로 작품을 인도한다. 한편,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쿠르트'와 '엘리'는 서독으로 넘어가고, '쿠르트'는 그곳에서 동독과 다른 미술 관념들을 접하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작품을 그리게 된다.

'쿠르트'가 "대상을 잘 모르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데 더 도움이 된다"라고 전시회 기자 간담회에서 밝혔지만, 이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그 작품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쿠르트'가 겪었던 모든 기억이 다 녹여졌기 때문.

'쿠르트'는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해 '역사가 준 트라우마'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동시에 치유하는 역할을 전달해준다는 예술의 기능 중 하나를 이해하게 된다.

이는 '쿠르트'의 모델인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실제로 "예술을 위로로 주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말했으며,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이 "위대한 예술 작품은 트라우마가 긍정적인 무언가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그래서였을까? 이 작품은 영화 제목 '작가 미상'처럼, 대중에게는 그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촛불 집회 당시 광화문 광장 텐트촌에서 '예술 표현의 자유', 함께 한 이들에게는 '위로와 연대'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모든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보였다.

당시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한 문화예술인은 "시대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예술의 여러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창조적인 방식으로 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한 것에 참을 수 없었다. 늘 무대에서 사랑만 받던 내가 그 사랑을 나눌 수 있었고,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라고 에디터에게 말했었다.

2020/02/28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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