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발로만 승부 보는 전쟁 영화라고?

조회수 2020. 2. 23.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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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1917> (1917,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1917>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과 함께 유력한 작품상, 감독상 후보로 거론됐던 <1917>은 기술 분야의 3요소라 할 수 있는 촬영상,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을 받으며, '오스카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결과론적이지만, <1917>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어도, 그것이 '큰 이변'이자 '논란의 수상 결과'라고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샘 멘데스 감독의 탁월한 연출이 없었다면, 그리고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의 실험 정신이 만들어 낸 쇼트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 방향을 제대로 표현한 배우의 고생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흔한 전쟁 영화'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

그래서 혹자는 이런 삼박자가 적절히 맞으면서 나온 '화면발'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이 이 정도까지 칭찬을 받을 작품인가라는 의문표를 던질 수도 있겠다. 이 글은 그 의문표에 대한 답을 풀고자, 샘 멘데스 감독이 이런 방식으로 연출을 시도했는가에 대한 그 출발점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려면 전쟁 영화들이 영화사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전쟁 소재 영화는 여러 목적으로 제작됐다. 어떤 때는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프로파간다' 역할을 했으며, 어떤 때는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어떤 순간엔 단순한 액션 눈요기용으로, 그리고 '나라를 지킨 이'들에 대한 경의로 만들어졌다.

영화 산업의 중심인 미국 할리우드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전쟁 영화에 대한 수상을 아끼지 않았다. 최초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특수효과상의 주인공은 제1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날개>(1927년)였다. <날개>는 약 100년 전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이어 나온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30년)는 제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제1차 세계대전 배경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나온 참호 전투 장면이나, 스나이퍼의 사격 장면은 이후 수많은 전쟁 영화들의 교본이 됐고, <1917> 역시 이 작품을 위한 오마주가 포함된 숏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종전 직후의 작품상 수상작인 <미니버 부인>(1942년),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6년)는 직접적인 전쟁 묘사를 자제하는 대신, 전쟁의 폐단을 꼬집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년), <콰이강의 다리>(1957년), <패튼 대전차 군단>(1970년), <쉰들러 리스트>(1993년)처럼 제2차 세계대전 배경 작품상 수상작들은 당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품을 이끄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가치'를 중요 설정 포인트로 잡아냈다. 베트남 전쟁 소재 작품상 수상작인 <디어 헌터>(1978년), <플래툰>(1986년)은 뒤틀리거나, 피폐해지는 인물 군상의 모습을 성찰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가장 최근의 전쟁 소재 '작품상 수상작'인 <허트 로커>(2009년)는 이라크 전쟁에 활약한 폭발물 제거반의 모습을 담았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촬영 기법과 흡입력 있는 편집, 동시에 인물 간 심리 묘사 등이 완벽했던 작품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다시, <1917>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작품은 샘 멘데스의 친할아버지인 알프레드 H. 멘데스의 경험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100% 실화는 아니지만, 이 작품 속 여러 설정은 제1차 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였던 '서부 전선'을 재현해내는 데 성공한다. 전차, 전투기와 같은 '첨단 장비', 그리고 '저격수' 때문에 양국의 병사들은 그야말로 '개죽음'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존 전술에 능했던 장수들은 도저히 앞으로 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고, 단순하게 참호를 길게 파 숨은 후에, 빈틈을 타 돌격하는 '땅따먹기'식 작전만이 지난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의 대사를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2대대'의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돌격 취소' 명령을 듣고는 낙심하며, "오늘은 끝날 거란 희망을 품었다"라는 말을 한다.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좌절감 섞인 말은 덤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두 병사의 여정은 자연스럽게 전쟁에 대한 환멸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나무에 기대면서' 쉬고 있던 '스코필드'(조지 맥케이)는 그저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갈망하던 인물이었다. 훈장도 "그깟 쇠 쪼가리가 대수냐?"라며 와인과 바꿔먹거나, "독일군이 철수했는데 수류탄을 준다", "왜 하필 나야?"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러던 '스코필드'는 전쟁의 참상을 조금씩 현장에서 체험한다. 이런 체험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샘 멘데스 감독은 의도적으로 '원 샷', '리얼타임'에 가까운 연출을 선택했던 것. 이는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을 중심으로 한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장면이다.
예를 들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진 못했지만, 감독상, 촬영상 등 5관왕을 차지했으며, 전쟁 영화의 상징작으로 남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의 인트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퀀스를 떠올려 보자. 상륙 직후, 영화는 자연스럽게 연합군과 독일군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보여줌과 동시에, 연합군의 움직임을 다양한 각도로 그려낸다.

전지적 시점처럼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이 전쟁의 현장에 있기보단 거리를 조금 둔 관찰자의 시점으로 담아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제대로 보여준 <사울의 아들>(2015년)처럼, 인물의 움직임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만 보여주다 보니 현장감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특히 <1917>의 일부 장면은 의도적으로, '피사계심도'를 얕게 잡아 아웃포커싱으로 촬영을 했다. 쉽게 말해, 한 인물의 주변 배경은 모두 흐릿하게 처리하며, 주위에 적이 언제 접근할지 모르게 해준다. 이런 연출을 통해 샘 멘데스 감독은 시종일관 관객이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면서, '스코필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메시지를 끝끝내 전달해야 하는 동력원을 만들어낸다.
가끔은 작위적인 대사보다, 하나의 장면으로 영화가 기억될 수 있고, 그것이 주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1917>에선 강 위에 있는 시체 더미를 밟고서라도 올라가야 하는 장면, 포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뛰는 장면이 그런 사례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편, 샘 멘데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007 스카이폴>(2012년), <007 스펙터>(2015년) 등 '제임스 본드' 영화에 집중한 이후, 샘 멘데스 감독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를 목도하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던 것.

그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불었던 바람(분열)이 다시 불까 봐 두렵다"라며, "당시엔 '자유롭고 통일된 유럽'을 위해 싸우던 세대가 있었다. 당시 그들이 어떤 일을 겪고, 어떠한 희생을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라고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를 밝혔다.

2020/02/05 CGV 왕십리 I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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