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퀸' 흥행 실패, 그래도 이 길을 가야 할 DC

조회수 2020. 2. 15.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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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Birds of Prey (and the Fantabulous Emancipation of One Harley Quinn), 2020)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DC 확장 유니버스'(DCEU)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후발 주자라는 꼬리표를 달 수밖에 없었다. 결국, 빨리 따라잡겠다는 일념으로, 서두르게 <저스티스 리그>(2017년)를 만들어 낭패를 보기까지 했었다.

다행히 <아쿠아맨>(2018년)의 '전 세계적 물붐'과 더불어,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특유의 유머가 적당히 터지며 속편 제작이 확정된 <샤잠!>(2019년)의 성공으로 인해 'DCEU'는 '솔로 무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DCEU'는 아니지만, R등급 영화 사상 첫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음악상을 받은 <조커>(2019년)의 등장 역시 'DC'의 반전 서막을 알렸었다.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이하 <버즈 오브 프레이>)는 그 흥행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먼저,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한국에서는 유치하다는 평과 무난하다는 평이 엇갈린 <샤잠!>의 65만 관객 동원보다도 낮은 최종 성적으로 막을 내릴 것 같다.(그럼에도 지난 주말 기준 전 세계 흥행 8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흥행 부진은 작품성의 호불호와는 별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렇다면, 본고장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박스오피스 개봉 첫 주말 1위를 하긴 했지만, 약 3,300만 달러를 버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손익을 넘기기 위해선 최소 약 2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 도전이 쉽지만은 않다는 현지 분석이 많다. 로튼토마토 비평가 프래쉬 인증(80%, 6.76/10, 이하 2월 13일 기준) 마크 획득이나, 인증 관객의 나쁘지 않은 평가(75%, 4.09/5), 과거 'DCEU'의 아쉬운 작품이 그래도 최소한의 박스오피스 흥행을 보여준 걸 떠올린다면, 배급사 워너 브러더스에게 골치가 아픈 상황일 터.

그래서 미국 일부 극장에서, 상영 제목 표기를 긴 작품명으로 선택을 안 할 관객을 배려하면서 동시에 '할리 퀸'을 전면에 세운, '할리 퀸: 버즈 오브 프레이'로 변경하는 걸 허용할 정도다.
과연 제목이 문제였을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원작 코믹스 팬들이 아닌 이상, '버즈 오브 프레이'라는 여성 팀보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년)에 등장한 '할리 퀸'이라는 이름이 더 알려져 있기도 할뿐더러, 작품도 '할리 퀸'을 중심으로 전개된 영화이기 때문.

차라리 '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버즈 오브 프레이'라고 제목과 부제목의 앞뒤를 바꿔서 마케팅을 펼쳤다면, 그나마 나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주제는 누군가의 '광대'로만 남아 있던 '할리 퀸'이 어떻게 자유를 찾는지였다. 자신의 인생 캐릭터 중 하나인 '할리 퀸'을 연기한 마고 로비가 속편 출연과 제작에 참여한 것도 이런 연유였다.

'DCEU' 작품 중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원더 우먼>(2017년)이 조금은 이질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한 여성의 서사를 다뤘다면, 이 작품은 고담시의 차이나타운이나, 다운타운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다루며 조금은 현실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는 여성들의 연대기를 담았다. 그 중심에는 '할리 퀸'이 있었다.

작품은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설명을 시도하더니, 이내 계속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다시 원 시간대로 돌아오는 등 마치 만화책을 순서상 안 보고 왔다 갔다 하면서 보는 방식으로 시간을 전개한다. 다소 산만하다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역시 '할리 퀸'의 머리에서 본 시점일 수 있고, <데드풀>에서도 적용됐었다.
앞서 언급한 <원더 우먼>이나 <아쿠아맨>과 같은 스케일이 큰 액션을 보기엔 무리가 있다.(제작비 자체가 두 작품에 비하면 적다) 여기 나오는 여성들이 한 명을 제외하고, '초능력'을 사용한다는 설정 자체도 없기에, 싸움은 현실적인 주먹질, 뿅망치나 야구 방망이, 그것도 아니면 석궁(이라고 쓰면 안 된다고 한다)과 같은 근접전으로만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적절한 순간에 액션을 집어넣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액션의 배분을 위한 '시간대 변경'은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전사나 사족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덕분에 각 캐릭터가 왜 서로 모여야 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명분이 쌓인다.

물론, 한 사건을 통해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팀을 짠다는 것(그래도 명분도 없어 보이던 빌런들이 갑자기 한 팀으로 더 큰 악에 맞선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설정보단 훨씬 낫다)이나, 생각보다 '로안 시오니스'(이완 맥그리거)의 마지막 존재감이 텐션을 잡아가던 초반의 살해 지시 장면보다 약한 것도 아쉬운 포인트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빌런에게 그 이상의 서사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이 애초에 없던 모양이었다.
'로안'의 존재는 '블랙 마스크'라는 '가면 안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역할이라기보다, 그저 '할리 퀸'과 다른 여성들을 위한 해방 통로였던 셈. 그래서 호불호가 갈려 보인 놀이공원 속 전투 장면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어느 액션 영화에서 악당들과 싸우는 도중에 머리끈을 빌려주는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년)에서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 여성 어벤져들의 '스파이더맨' 구하기 장면과 달리, 자연스럽게 위험 속에서 '카산드라 케인'(엘라 제이 바스코)을 보호하는 시퀀스는 인상적이었다.

갑작스럽게 능력을 사용한 '블랙 카나리'(저니 스몰렛)의 모습이 육탄전 위주였던 영화의 톤을 흔들리게 한 것도 있었으나(원작을 아는 관객이면 모를까),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멀리 있던 유리잔을 깨뜨렸던 복선을 떠올린다면 양호한 편.

여기에 '할리 퀸'도 당면과제를 마무리한 후, '버즈 오브 프레이'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어 나간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럴 거라면 언급한 대로 '할리 퀸'을 더 부각하는 제목으로 설정해야 했다. '버즈 오브 프레이'의 활약을 기대한 관객에게 얼마나 큰 실망이겠는가? <배트맨 대 슈퍼맨>(2016년)도 부제가 '저스티스의 시작'일 뿐, 중심 소재는 두 히어로의 대결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나오는 '할리 퀸'을 비롯한 캐릭터들의 설정이 이렇다 저렇다고 논하고 싶지 않다. 'DCEU'의 방향 자체가 수많은 원작 코믹스의 설정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으며, 영화가 무조건 원작을 따라가야 좋은 작품(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DCEU'는 'MCU'를 따라가려고 속도를 내기보단 자신의 페이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덕분에 'MCU'보다 먼저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를 낼 수 있었고, 배급권이 유니버설에 있기에 '네이머' 사용이 모호한 상황에서 '아쿠아맨'을 통해 바닷속 세계를 다뤄냈다.

또한, 'MCU'보다 'DCEU'는 <버즈 오브 프레이>로 먼저, 만 17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 후에 관람할 수 있는 'R등급 영화'를 만들어냈다.(물론, R등급치고는 순한 편이다) 이는 <데드풀> 시리즈와 <조커>처럼 심의와 검열이 엄격하지만, 흥행 수입에서는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는 중국 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내린 결정이었을 터.
지금 당장은 후발 주자라는 이유로 비교 혹은 조롱의 대상이 되더라도, 차별화된 자신만의 뚝심을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가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MCU'가 지난해 큰 한숨을 돌리고, 재정비를 진행하는 2020년은 어쩌면 'DCEU'가 그나마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

여담으로, 흥미로운 점이 있다. 'MCU'와 'DCEU'가 2020년 처음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모두 자사의 여성 캐릭터들을 메인으로 삼았으며,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았던 여성 감독 두 명이 기회조차 받기 어려웠던 대규모 예산의 히어로 영화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이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성 감독은 단 한 명도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과 연관지을 수 있겠는데,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사건으로 일어난 '타임즈 업' 운동 이후, 할리우드에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이기도 하다.

2020/01/28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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