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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출소하자마자 신부 사칭한 남자에게 벌어진 일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문신을 한 신부님> (Corpus Christi,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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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모아기도
글 : 양미르 에디터

폴란드에서 온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말 그대로 성체에 대한 신앙심을 고백한다는 의미가 담긴 영화의 원제 'Corpus Christi',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내 영화 팬들에게 첫선을 보였을 당시의 제목 <성체축일>과는 완전히 다른 개봉명.

<성체축일>이라는 제목만 보면 종교적인 색채가 가득 찬 영화로 생각하겠지만, <문신을 한 신부님>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 용서, 사랑 등 다양한 감정을 때론 유쾌하면서, 때론 무거운 분위기에서 체험할 수 있는 수작이다. 이 작품은 <기생충>과 더불어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라, 할리우드 유수 감독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작품을 연출한 얀 코마사 감독은 폴란드에서 약 3개월 동안 신부를 사칭한 19살 소년의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기사를 쓴 마테우시 파체비츠는 그 계기로 얀 코마사 감독과 일을 하게 됐고, 작품의 각본을 써 내려갔다.

검은색 바탕화면 속 자막이 끝나고, 영화는 한 소년원에서 출소를 앞둔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의 주변을 보여준다. 작업 감독관이 빠져나간 사이, 마치 <쇼생크 탈출>(1994년)에 등장할 법한 성폭행 장면이 등장하며, 이 영화의 톤은 그렇게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짐작하게 해준다.

'다니엘'은 소년원의 출소를 앞두고, 존경하는 신부 '토마시'에게 자신이 신부가 될 수 있는지를 물어보지만, "전과자는 자격이 없다"라는 단호한 답만을 듣게 된다. '다니엘'은 다행히 '토마시'의 도움으로 인해 작은 마을의 목공소로 일자리를 얻게 됐다.

하지만 '다니엘'은 '토마시'의 사제복을 훔친 후, 그 마을의 성당으로 들어가 주임 신부의 대행이라는 말을 꺼낸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다니엘'의 설교와 행동거지에 놀라 한다.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구글 검색'까지 찾아볼 정도로 '신학교'를 다니지 않은 티가 나긴 하지만, '다니엘'의 충고와 설교에는 오히려 신앙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얀 코마사 감독은 이를 '신성한 불꽃'이라고 언급했다. 미사를 진행하는 순서는 잘 모르더라도, 적어도 미사에서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는 직감적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알아챈다는 것. 이런 모습은 마치 박중훈 주연의 한국 코미디 영화 <할렐루야>(1997년)와는 차별화된 것이었다.

<할렐루야>에서는 전과 5범 소매치기 '양덕건'(박중훈)이 2주간 교회 목사로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더불어, '양덕건'의 내면 변화를 통해 벌어지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얀 코마사 감독의 영화는 잠깐 "큽"하는 웃음을 나올 순 있어도, 박장대소할 정도의 코미디 영화는 아니었다.

얀 코마사 감독은 "이 영화는 평생 안고 가야 할 낙인과 오명에 관한 이야기"라며, "우리는 범죄의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다니엘'에게서 '영적 인도'는 그의 삶에 남은 유일한 순수함"이라고 말한다. '다니엘'은 시골 마을에 가기 전, 흔히 '신부의 금기사항'으로 알려진 것들을 다량 행한다.

마약 흡입은 물론이며, 처음 보는 여성과 성관계도 한다. 하지만 교회에 들어선 순간부터, '다니엘'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어쩌면 세상에 외치는 자신의 마지막 아우성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영화는 마을 사람들에게 가득 차 있던 '트라우마'로 시선을 돌린다.

그 트라우마로 일부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어긋나 있었고, 사람들은 어느 한 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하지만 제삼자의 위치로 온 '다니엘'은 '주임 목사'도 묵인하던 그 '트라우마'를 깨뜨리려 한다. '트라우마'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다니엘'의 행적은 마치 '예수'의 그것처럼 보였다.

'예수'의 기적과 고난이 마치 '다니엘'의 그것처럼 느껴진 것. '다니엘'은 상처로 얼룩진 마을 사람들의 '원죄'를 다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데, 그 강렬함을 연기한 신예 배우 바르토시 비엘레니아는 '다니엘'에게 쌓인 모든 허물을 설득력 넘치게 연기하며, 몰입감을 더해준다.

이 영화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적인 요소로 관람을 할 수 없도록 중립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조용히 그런 선과 악의 선택과 판단은 누가 할 수 있으며, 종교는 그런 상황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임시 예배당에서 '다니엘'은 자신이 얻은 경험을 토해낸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게는 "목매는 사무침을 토해내라. 구속에서 벗어나 소리쳐 우십시오"라고. 그리고 하느님에게는 "우리를 판단하기에 앞서, 이해를 먼저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설령 이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진정한 용서는 '잊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2020/02/02 CGV 신촌아트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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