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마약왕' 감독은 왜 10.26 사건을 영화화했나?

조회수 2020. 2. 2.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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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남산의 부장들> (The Man Standing Next,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남산의 부장들>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쇼박스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2015년)과 <마약왕>(2018년), 그리고 <남산의 부장들>까지, 자신이 연출한 세 작품이 이른바 '욕망 3부작'으로 불렸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남겼다. 세 작품은 연결이 될 것 같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하나의 접점으로 만난다.

기득권 중심의 권력 부패가 직접 혹은 간접으로 등장하지만, 우민호 감독은 '인간의 헛된 탐욕'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내부자들>은 서로의 야망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과정에서 나온 '외부자'의 복수극을 그렸으며, <마약왕>은 우연히 마약 밀수에 가담한 '이두삼'(송강호)이 타락하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다.

하지만 <내부자들>이 역대 청소년 관람불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지만, <마약왕>은 철저히 흥행에서 참패했다. 기본적으로 우민호 감독의 작품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이 분야를 빼고 흥행 성패를 가른 큰 요인을 언급하자면, 단연 서사의 안정감이라 할 수 있겠다.

<내부자들>은 인물 관계도를 보고 가야 관람하기 편했을 정도로, 많은 인물이 초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지만,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관객이 영화만 잘 따라가면 빠른 몰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힘이 있었다. 긴 시간임에도 숨을 고를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후반부가 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었다.
<마약왕>은 곳곳에 은유와 상징적 요소를 집어넣으며, 우민호 감독 자신만의 색채를 넣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내부자들>보다 '주연-조연' 캐릭터들이 더 늘어났는데, 각 배우에게 가장 잘 나온 장면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됐으나, 전체적인 이야기의 결은 부자연스러웠다.

140분이라는 상영 시간에 모든 이야기를 할 각본이 아닌 것처럼 보였고, TV 드라마의 클립 영상을 보는 것처럼 이미지가 휘발되는 느낌을 잔뜩 받았다. '이두삼'을 연기한 송강호의 열연은 돋보였으나, 관객과의 거리감을 둔 열연은 공허하게만 느껴져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었다.

이런 실패 덕분에 <마약왕>의 개봉 시기에 촬영을 진행한 <남산의 부장들>은 변화를 꾀해야 했다. 우민호 감독은 영화를 대국적으로 연출했다. 다시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등장 주연-조연 인물의 수를 필요한 인원만큼만 남겨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이고자 했으며, 상영 시간도 그의 연출 작품 중 가장 적은 114분을 기록했다.

<마약왕>이 '이두삼'의 시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이번에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모티브로 한 '김규평'(이병헌)을 중심으로 했는데, 그가 어떤 '욕망'에 이끌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고자 했다.
'박통'(이성민)의 신임을 받던 중앙정보부장 '박용각'(실제 인물 김형욱/곽도원)이 하루아침에 밀려나고, 미국으로 건너간 '박용각'은 미 하원 청문회(실제는 1977년에 이뤄졌다)에서 정부의 비리와 실체를 고발한다. '김규평'은 '코리아 게이트'의 중심에 있는 '박용각'이 회고록 '혁명의 배신자'를 집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이를 중단시키고자, 워싱턴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는 '박용각'에게 '박통'이 중앙정보부가 아닌 제3의 인물이 '2인자'라는 정보를 역으로 얻으며 수상한 움직임을 느낀다. 그 와중에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실제 인물 차지철/이희준)은 중앙정보부가 멋대로 휘두르는 권력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우민호 감독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건이지만, 이들의 '심리와 관계'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건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라고 밝히며, 이 작품을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시키려 했다. 이런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배우들의 노력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미 <내부자들>에서도 우민호 감독과 함께한 이병헌은, 특유의 저음, 넘치지 않은 눈빛과 표정 연기를 통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김규평'의 심리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보여줬다. 특히 '김규평'이 심리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나온 이병헌의 표정, 그중에서도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대목은 압도적이었다.
여기에, 18년간 세상을 지배했으나, 노쇠해져 버린 독재자의 불안과 고독을 관객이 납득할 수 있게 보여준, '박통' 역의 이성민은 실제 인물과 탁월한 싱크로를 보여주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곽도원, 이희준, 김소진 등 주요 출연진들의 안정적인 연기는 '인물 간의 심리 게임'을 보여주고 싶어한 우민호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미리 알려진 배우들과 달리, 언론 시사회 전까지 공개되지 않은 '전두혁'(실제 인물 전두환) 역할의 서현우도 짧은 분량임에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부자들>처럼 1.85:1 상영 비율을 선택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이 비율은 주로 인물의 감정, 화면의 수직적 높이에 집중하는 작품에서 사용된다. 대표적인 사용 예는 <조커>(2019년)로, 수직의 계단에서 춤을 추는 '조커'(호아킨 피닉스)의 움직임을 잘 잡아냈다.
<남산의 부장들>도 이분법적인 1970년대 이데올로기를 비유적으로 보여주고자, 좌우대칭, 혹은 상하 대칭 구도를 자주 잡아낸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총격전에서 건물의 2층과 1층을 수직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 대표적인 사용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화면의 톤을 차갑고, 건조하게 가져가면서, 작품의 무게감을 높였다.

한편, 우민호 감독은 "원작의 톤을 유지하면서, 한쪽의 시선에 치우치지 않도록, 중립적인 시선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 소송까지 각오하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다 뱉어냈던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4년)과 이 영화의 분위기는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관찰자 시점으로 안전하게 '10.26 사건'을 바라본 <남산의 부장들>에 대한 '영화적 평가'는 사건의 '배경지식', 혹은 영화의 주제 의식을 중시하는 관람 태도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2020/01/15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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