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영화의 제목은 '해치지않아'일까?

조회수 2020. 1. 19.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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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해치지않아> (Secret Zoo,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해치지않아> 표지 및 이하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과거 일본 오사카에 있는 텐노지 동물원을 다녀간 적이 있다. '생태 동물원'이라는 홍보 문구와는 다르게, 이 동물원은 뭔가 이상했다.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임을 고려하더라도, 동물들의 움직임에는 생기가 없어 보였다. 하마는 계속해서 물속에 처박힌 채 잠수 중이었고, 몇몇 동물은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자신의 우리를 계속해서 빙빙 돌고 있었다. 넓은 활동 반경을 자랑하는 고양잇과 동물들도 마찬가지 행동을 좁은 우리에서 행했다.

이른바 '정형 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이 있는 벽을 연신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니, 이곳에 계속 있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동물 복지 문제는 옆 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동물원에 대한 찬반 여론이 높아진 것은 아무래도 2018년, 대전 오월드에서 일어난 퓨마 탈출 사건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기본이며, 국회까지 동물원 관련 동물 복지 문제를 신경 써야 한다는 발언이 등장했으니.

잠깐 법을 살펴본다면,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약칭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르면, 동물원은 "야생동물 등을 보전·증식하거나 그 생태·습성을 조사·연구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전시·교육을 통해 야생동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설"이라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시·도지사는 '동물원' 또는 '수족관'이 잘못 운영될 경우, 시정명령, 나아가 등록 취소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런 현재의 '동물원수족관법' 체계나, 일련의 동물원 속 현실을 알고 영화 <해치지 않아>를 본다면,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작품은 경영난으로 인해, 보전이 어렵다고 판단된 동물들이 모두 팔려나간 상황에, 신임 원장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을 보여준다.

Hun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하는데, 원작이 사육사 '철수'의 시점으로 펼쳐진다면, 영화는 로펌의 수습 변호사 '강태수'(안재홍)를 중심 시점으로 담아낸다.

'강태수'는 철저히 자신의 이익이 우선인 인물로 소개된다. '태수'가 일하는 로펌은 기득권 대기업인 '락원 그룹'과 긴밀한 관계로, '락원 그룹'에서 실업자가 된 노동자들의 집회는 로펌 입장에서 그야말로 눈에 가시거리로 보인다. '태수'와 집회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것이 분명한데도, '태수'는 그들을 뿌리치고 '황대표'(박혁권)를 지켜낸다.

이를 눈여겨본 '황대표'는 '태수'에게 망한 '동산 파크'의 원장 자리를 준다. 로펌의 비자금 관리를 맡은 이름도 복잡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모 펀드(실상은 페이퍼 컴퍼니)'가 '동산 파크'를 인수했는데, 이를 되팔아 이익을 얻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외제차도 얻어 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태수'는 '동산 파크'로 향하지만, 이곳엔 '정형 행동'을 보이면서 공격적으로 변한 북극곰 '검은코'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사육사와 수의사도 일자리를 잃고 떠난 '동산 파크'엔 새 동물을 데리고 올 시간적,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결국, '태수'는 직원들에게 동물 수트를 입혀, 관람객들이 이를 속아 넘어주기를 바란다는 계획을 세운다. "누가 동물원의 동물이 가짜라고 생각하겠는가?"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사기극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다. '북극곰'이 마신 콜라를 한 관람객이 목격한 덕분에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던 것.

여기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람만이 '동물 복지'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광고·전시 등의 목적으로 때리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동물에게 먹이 또는 급수를 제한하거나 질병에 걸린 동물을 방치하는 행위", "도구·약물 등을 이용하여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 '동물원수족관법' 제7조에 의거, 금지 행위를 동물원 '근무자'가 위반하는 경우는 처벌 대상이 된다.

하지만 정작 "북극곰 주제에 왜 콜라를 안 마시냐?"라며 콜라 패트병을 비롯한 쓰레기를 우리 안으로 다량 투하하며, 동물들(물론 진짜는 아니지만)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하는 관람객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내 돈을 내고 동물원에 왔으니, 그 정도의 '서비스'는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우선되는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동물의 안전 따위는 무시당하는 것이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탈을 쓴 '사람'이 연기를 하니까 "위험해 보인다"라는 생각이 더 확 와닿은 것은 아닐는지.

반려동물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시기, 끝까지 길러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이, 호기심으로, 혹은 귀엽다는 이유로 키웠다가 싫증이 난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동물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 이 시기에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한편, 영화는 정공법으로 그 뻔뻔함을 밀고 나가다가, '태수'가 자신의 처지가 집회 자리에 나선 '노동자'(여기에 실직한 동물원 직원들)들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 뻔뻔함을 잊게 된다. 안정적인 결말을 향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영화 제목처럼 동물권과 인권(그중에서도 노동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모두가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일깨워주는 역할에는 충실했다.

어느 한쪽의 우위가 아닌, '공존'이라는 이름의 '선순환 관계'는 기본이다. 동물과 사람의 관계건,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건 서로서로 해치지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사회.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이 <해치지않아>는 아니었을까?

2019/12/30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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