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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폭발하니, 이것도 함께 폭발했다

조회수 2019. 12. 22.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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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백두산> (Ashfall,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백두산> 표지 및 이하 사진 ⓒ CJ 엔터테인먼트, 덱스터스튜디오
1997년, 할리우드는 몇 달의 시차를 두고 화산 소재 재난 영화를 공개했다. 유니버설의 <단테스 피크>와 폭스의 <볼케이노>가 그 주인공. 두 편의 작품은, 할리우드도 CG 기술력을 동원해 실감 나는 화산 폭발을 연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난 결과물이었다.

<단테스 피크>는 1980년 분화한 '세인트 헬렌스 화산'을 모티브로 했고, <볼케이노>는 1943년 갑작스럽게 옥수수밭에서 마그마가 분출되어 생긴 '파라쿠틴 화산'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단테스 피크'라는 가상의 시골 마을과 'LA'라는 실제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두 작품은 차이점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꽤 유사한 공통점을 지녔었다.

분화의 전조 현상이 발견됐음에도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시민들의 대피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 기관사를 구하기 위해 몸을 바친 지하철 공사 현장 팀의 팀장, 손녀와 며느리를 구하겠다고 희생한 할머니로 묘사된 살신성인의 장면.

그리고 영화의 극적 긴장감과 전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려놓은 개연성과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설정들. 전형적인 화산 재난 영화의 쌍두마차였던 이 두 작품이 나온 지 20여 년이 흘렀다. 누군가 유행이 돌고 돈다고 하지 않았나. 그 20년의 세월이 흐른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제 '기술력'을 동원해 화산 재난 영화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미스터 고>(2013년), <신과함께> 시리즈를 만들어내며 작품성과 별개로 CG의 완성도를 인정받은 덱스터 스튜디오가 제작에 나선 <백두산>은 약 260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대형 프로젝트다.

요즈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비를 보면 1,000억 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세밀한 CG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했지만, 적어도 현재의 국내 VFX 기술력을 모두 쏟아 부은 모습의 완성품이 나온 것에 대해선 찬사를 보낸다. 정작 이 영화의 문제는 기술력보다는 그 내용물에 있었다. 유행이 돈다고는 하지만, 새로움을 바라는 관객의 마음을 잡기에 이 영화는 아쉬움이 많았다.

<백두산>은 1990년대 할리우드가 다량으로 뽑아낸 재난 영화의 공식들을 그대로 따라간다. 먼저, <아마겟돈>(1998년)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소행성을 막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는 것처럼, 이 영화도 북한의 핵을 이용해 <백두산>의 4차 대폭발을 막으려 한다.

이 점은 두 영화의 치명적 '과학 현실성 오류'이지만, '영화적 허용'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 편할 수 있겠다. 어차피 현재 과학 기술을 통해, 화산의 분화를 막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재난으로 인해 여러 위험 요소가 있더라도, 밑도 끝도 없이 당당하게 살아남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터널 붕괴 재난 영화, <데이라잇>(1996년)을 기억하는가? 터널 내부에 심어둔 폭탄으로 인해 엄청난 수압도 견뎌내며 살아남은 주인공이 구조되는 기적 같은 장면을.

<백두산>에서 가장 큰 궁금증은 만삭 임산부인 '최지영'(배수지)이 예고편에도 등장한 '잠수교 장면'에서도 큰 부상 없이 살아남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강에서 구조되어, '민간인 소개령' 버스를 가로막기까지의 모습이 어떠한 설명도 없이 등장한다는 전개는 '개연성 부재'로 지적받았다.

세 번째로, 대표적인 신파의 활용. <딥 임팩트>(1998년)의 경우, 간신히 휴스턴과 연결된 우주비행사들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전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백두산>은 '최지영'과 남편 '조인창'(하정우)의 대화 장면이 <딥 임팩트>처럼 엄청나게 길지 않다.

적당히 맺고 끊으면서 동시에 웃음을 유발하려는 정도. 문제는 <아마겟돈>에서 수동 폭파를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브루스 윌리스와 벤 애플렉의 갈등을 고스란히 옮긴 결정적 장면.
이 장면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브로맨스'에 가까운 남과 북 콤비의 작별을 고하는 대목이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만나 티격태격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건을 해결하면서 한마음이 된다는 영화는 최근 20년 사이에 부지기수로 선보였으니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런 익숙한 흥행 공식들을 모두 모아 합쳤기 때문에, 이런 영화들에 질린 관객이라면 당연히 <백두산>에 대한 비판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여름에 개봉했던 <엑시트>(2019년)는 일반적인 재난 영화의 관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었다. <엑시트>는 현재의 청년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메시지부터, 캐릭터를 다루는 효과적인 각본, 액션과 코미디의 성공적인 결합으로, 남녀노소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주로 군상극으로 펼쳐지는 재난 영화 속 캐릭터의 수를 확실하게 줄여, 메인 플롯의 집중도를 높였기 때문에 이 영화는 큰 군더더기 없는 전개를 보여줬다. 하지만 <백두산>은 <엑시트>보다 나은 점이 CG로 만들어진 스펙터클한 영상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안정된 스타 캐스팅을 구축했는데, 조연 배우들에게도 충분한 분량을 채워줘야 하므로, 사족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차라리 '지영'이 없었다면 극의 진행이 더 매끄러울 수 있었고, 자신을 '로버트'라고 말하던 '강봉래'(마동석) 교수도 '스타 캐스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앞서 언급한 1990년대 재난 영화들을 즐겼던 한 명의 팬으로 <백두산>을 바라보면, 우리도 이제 화산 재난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이 올라왔다는 좋은 기분이 들면서도, 이젠 이런 소재로는 안 되겠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한편, 백두산은 지난 946년, 이른바 '밀레니엄 분화'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큰 분화를 일으킨 바 있었다. 최근 화산성 지진, 천지가 부풀어 오르는 등 여러 조짐을 보여, 백두산은 '활화산'으로 재분류 됐으며, 국제공동연구진은 백두산의 지하에 4개의 '마그마 방'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크기는 영화 속 '마그마 방'과는 다소 다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백두산의 거대 분화로 인해 경기도 북부, 서울 지역, 경기도 남부를 잇는 '추가령 구조곡'과 '신갈단층' 등에 영향을 줄 경우, 영화 같은 무시무시한 상황이 발생할 순 있다.

2019/12/18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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