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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감독은 왜 금융 먹튀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나?

조회수 2019. 11. 9. 17: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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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블랙머니> (BLACK MONEY,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블랙머니> 표지 및 이하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2년 전 여름, 다큐멘터리 영화 <직지코드>(2017년)의 개봉을 앞두고, 제작을 맡았던 정지영 감독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이제 70대 노감독이 됐다"라는 말에 정지영 감독은 "나는 원로 감독이라는 말을 듣기 싫다"라며, "그냥 '완숙해가는' 감독이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정지영 감독의 작품을 떠올린다면, 크게 우리 사회나 정치적 이슈를 굵직하게 다룬 것들을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냉철하면서도, 뚜렷한 주제 의식을 담았다. "진실에 좀 더 다가가는 방법은 없을까 모색하고, 그것을 찾아서 관객과 대중에게 문제를 제기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하는 작업을 원하는" 정지영 감독의 인생철학과 닮아 있었다.

스릴러 영화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년)를 장편 데뷔작으로 선보인 정지영 감독의 대표작들은 다음과 같다. 당시엔 금기시에 가까웠던 이야기인 '빨치산'을 소재로 해 청룡영화상에서 4관왕을 차지한 <남부군>(1990년)이 있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를 소재로 한 <하얀 전쟁>(1992년)이 있었다.

그 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년), <블랙잭>(1997년), <까>(1998년)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연출하던 그는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시간이 흐른 후, '실화 소재' 작품으로 관객을 찾아왔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안성기의 명대사가 함께하던 영화 <부러진 화살>(2011년)은 정지영 감독의 가장 큰 흥행작이었다. 346만 관객을 동원한 이 작품으로 그는 생애 두 번째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품에 안게 된다. 2007년 일어난 일명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사법부뿐 아니라 기득권 네트워크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어 연출한 <남영동 1985>(2012년)를 통해선 관객을 1980년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있었던 고문의 현장으로 인도했었다. 정 감독은 "수많은 국민이 그들의 고문을 통해 혜택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라며 작품을 만든 계기를 설명했었다.

그렇게 시기가 한 차례 흘렀다. 70대가 된 감독은 이번엔 경제 관련 사건을 들고 왔다. <블랙머니>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소재로 했다. 외국 자본이 자산가치 70조 원의 외환은행을 헐값인 1조 7천억 원에 인수한 이후에 생겨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사건으로, 정지영 감독은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연출했던 것.

영화의 제작은 2011년부터 시작됐지만, 준비 과정에서 여러 단체와 수백 명의 사람들, 대법원판결과 노동조합 투쟁 백서, 주요 인사 인터뷰 등을 취합해야 했기 때문에 촬영까지의 과정은 기나긴 여정 그 자체였다.
2016년이 되어서야 시나리오 초고가 완성됐고, 여기에 탐사보도 기자들의 전문적 도움 등이 더해져 수백 번의 수정 작업이 이뤄진 끝에 시나리오가 완성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인물을 '주연'으로 설정하는가였다. 정지영 감독은 관객과 함께 어려운 경제 지식을 알아가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을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경제 전문 검사'가 아닌 '막가파' 스타일의 '일반 검사'인 '양민혁'(조진웅)이었다. '양민혁'은 사건 앞에서는 위계질서도 없는 일명 서울지검의 '막프로'였다.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가 자살하면서, 누명을 벗는 과정에 있는 '양민혁'이 금융 비리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것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다.

당연히 주인공 옆에는 사건을 함께 파헤쳐 줄 '조력자'도 필요했다. <부러진 화살>(2012년)에서는 '박준'(박원상) 변호사와 '장은서'(김지호) 기자가 조력자였다. 이 영화에서는 '장 수사관'(강신일)이 물심양면으로 '양민혁' 검사를 지원하고, 은행의 법률 대리인인 '김나리'(이하늬) 변호사가 '양민혁'과 공조에 나선다.

'양민혁' 변호사가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영화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김나리'는 영화의 뜨거운 분위기에서 마치 찬물을 끼얹어주는 '현실적 감각'을 채워주는 인물로 설정했다. 사건의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김나리'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나리'가 존경하는 인물이자, 자신의 아버지(남명렬)와 절친한 사이인 '이광주'(이경영) 전 총리가 '모피아'(재경부 인사들이 퇴임 후 정계, 금융권으로 진출해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의 우두머리였고, 이 라인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

<블랙머니>는 이런 캐릭터 라인을 바탕으로, 어려운 경제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고자 노력한다. 그래야 정지영 감독이 원했던 작품의 제작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으니. 정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대중들이 잘 모르는 경제 순환 논리의 이면을 제시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지영 감독의 이번 작품을 보면 자연스럽게 1946년생 동갑내기, 올리버 스톤 감독이 떠올려진다. 두 감독의 행보가 유사하기 때문. 그 역시 과거 스릴러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플래툰>(1986년)과 같은 베트남 전쟁 소재 반전 영화나, <월 스트리트>(1987년)와 같은 금융권 범죄 영화를 연출했다.
<JFK>(1991년)를 통해선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잠시 영화 연출에 쉼표를 새겼던 그는, 정지영 감독처럼 70대의 나이에, CIA, NSA의 정보 분석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 기밀을 폭로했던 실화 영화 <스노든>(2016년)을 선택했다.

왜 두 '노감독'은 인생의 후반전을 달리고 있는 시기에, 이런 사회 고발 영화들을 만들어왔을까? 2년 전에 했던 정지영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그 답을 찾으며 글을 닫아보려 한다.

"(나는 관객을) 공부시키는 감독이라기보단, 어떤 것을 기정사실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 좀 더 진실로 가까이 가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부재 속에 존재함, 실존을 포함해 사상이 없을 때, 그 부재 속에 알게 하는 것을 감시하고, 고발하고, 깨우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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