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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니는 왜 '너의 이름은.'을 넘을 수 없었나?

[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날씨의 아이> (天気の子, Weathering With You,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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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날씨의 아이>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2016년)은 2017년 1월 국내에서 개봉해 371만 관객을 동원하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었다. 할리우드 작품을 제외한 역대 외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것은 덤이었으며, 덕분에 신카이 마코토라는 감독의 이름은 마니아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닌 게 됐다.

당연히 <날씨의 아이>에 관한 기대감은 '이 시국에'라는 말이 쏟아지는 지금 이 시점에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장단점이 확연히 빛났던 <너의 이름은.>을 '답습'했다는 평을 받으며, 이전 영화와는 비교되는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첫 주말 약 33만 관객이라는 성적표를 받아야 했던 것.

<날씨의 아이>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너의 이름은.>의 장단점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답습'이라는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가장 큰 장점은 '작화'다. 실사 영화만큼이나 세밀한 '화면 구성'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로, 혜성이 지구에 접근하는 장면이나 도쿄의 신주쿠를 바라보는 시점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이는 <날씨의 아이>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예를 들어,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CG'가 아닌 디지털 작화로 하나하나 그려내며, 실제처럼 정교하게 표현한 것이 있겠다. 덕분에 이번 영화에서도 작화만큼은 일명 '작붕(작화 붕괴) 논란'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이 준 최고의 장점은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한 이들에게 큰 위로를 준 것인데, 이 대목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줬었다. 작품 중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미츠하'의 말에 '미츠하'의 아버지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던지는데,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우리 국민도 충분히 다 알 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2017년 국내 내한 기자회견 당시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고 생각했다면 내가 원했던 것을 넘어선 기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날씨의 아이>는 어떤 메시지 차이가 있었나? 폭우가 계속 내리며, 심지어 여름날에 눈까지 내리는 '기상 이변'이 발생한다는 '재난 소재'는 전작과 유사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최근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 기후 변동으로 인해 세상이 미쳐간다는 생각한다"라며, "이러한 세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SNS, 대중 미디어로 많은 이들이 상처받고 희생 받는데, 우리는 그 희생을 모른 척하고 살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만큼은 소중한 이의 희생을 외면하지 않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는 그의 작품 세계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다수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은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이야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 <너의 이름은.>과 같은 경우에 그는 "우리가 만나지 않은 사람 중에는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내일 어쩌다 만난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날씨의 아이>에 관해서 그는 "날씨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닌, 마음과 운명, 세상 그 자체의 상징으로 모두의 이야기라고 판단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날씨의 아이>라는 제목에서 '아이들'이 아닌 '아이'로 정하게 된 이유도, 소년과 소녀뿐만 아니라 모든 이를 지칭한다"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은 단점이 장점만큼이나 잘 보였다. <너의 이름은.>은 '무스비'(結び, 잇는다)를 강조했기 때문에, 우연히 일어나는 장면이 매우 많았다. '할머니'의 대사 중엔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모두 신의 영역이야. 우리가 만드는 매듭 끈도 신의 능력,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한 거란다"가 있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이야기가 '우연적'으로 벌어지는데, 영화를 만드는 데는 썩 좋지 않은 구성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우연이 남발되면 극의 집중도나 완성도는 떨어지게 마련. 다행히 작품 정서와 작화, 음악으로 <너의 이름은.>은 우연과 개연성을 상당 메우긴 했었다.

3년 전 운석 충돌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음을 모르는 '타키'도 이상했지만, 그래도 영화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똑같이 그 개연성을 메우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이 시도는 과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들이 보여준 일본 전통의 '신토 신앙'을 꺼내온 것과 같았다.

소녀를 제물로 바쳐야 도쿄엔 더 이상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설정. 이 설정은 애초에 '기상학'이 발달한 지금, 심지어 한국보다 기상청 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일본의 현시대에 다시 꺼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소녀의 희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등장했던 요소였다. 과거 우리에겐 '심봉사'가 눈을 뜰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바다에 내던지는 '심청'이 있었으니. 이 작품에서 '소녀의 희생'은 어떤 의미로 볼 수 있을까? 가장 큰 지점은 '도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적으로 주장'하는 윤리 사상인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는 권력에 따라 '전체주의'로 변화할 수 있다. 국가와 집단의 전체를 개인보다 우위에 두고, 개인이 전체의 존재와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사상이 '전체주의'다. '호다카 모리시마'(다이고 코타로 목소리)가 '히나 아마노'(모리 나나 목소리)를 살리지 않는다면, 도쿄는 '그야말로 수중 세계'가 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주로 'Boy Meets Girl(앞서 언급한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장르, '세카이계'(セカイ系) 작품의 스토리라인을 주로 차용해왔고, 선호해왔다. 그리고 이 스토리라인은 어느새 일본 서브컬쳐 장르를 대표하는 축으로 성장해왔었다.

일본 서브컬처가 20세기 후반보다 현재 들어서 기존 만큼의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현 아베 총리가 '쿨 재팬'이라는 기조와 함께 일본 대중문화를 살리고자 지원액을 늘리고 있지만, 그 콘텐츠가 2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 대다수이며, 입맛에 따른 '선별 지원'이라는 '간접적 문화규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할 점이 크다.

다시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서, '히나'는 자신이 희생해야 전체가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호다카'는 세계의 복원보다는 '히로인'을 선택한다. 이는 '두 사람만의 세계'를 강조하는 '세카이계'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시나리오로 크게 새로운 건 없다.

'세카이계'에 대한 정의는 현재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나, "자의식 과잉 주인공이, 세계나 사회를 생각지 않고 직감적으로 '세계의 종말'과 연결시켜 버리는 상상력"을 의미하는 경우가 중론이다. '히로인'을 선택했기 때문에, '도쿄'는 '수상 버스'가 다니는 도시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서 두 주인공을 탓하는 이는 없다. '타키'의 할머니는 "도쿄는 원래 바다였다"라며, 자연스럽게 그 재난을 받아들인다. 굳이 두 사람이 아니었어도, 도쿄는 지구 온난화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그러한 운명에 처할 도시였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감독의 의도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처럼 밝은 작품의 결말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뜬금없는 상황에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경찰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의 '소통 부재', 그리고 그런 기성세대의 마찰에서 저항하려는 아이들의 대립 또한 관객의 '배경지식'이나 상황에 따라 이해가 되지 않는 방향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유사한 소재가 등장한 바 있지만, <너의 이름은.>으로 처음 작품을 접한 관객이라면,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이 점이 국내(배급사가 보도자료를 통해 '실패'라고 언급했었다) '흥행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시국에 일본 영화가 개봉해서 실패했다는 주장은 딱히 공감되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이 작품은 현재 앞서 언급한 군국주의화 되어가고 있는 일본의 현재 상황을 돌려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여전히 '대다수 일본 애니메이션'이 취하는 고질적 '서비스 컷'을 그대로 연출해냈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서로 몸이 바뀌는 데에서 나오는 호기심이라고 할 순 있겠지만, 그 호기심을 실현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분명 성희롱에 가까운 다소 불편한 지점이었다.

특히 상대 여성이 10대 청소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의도가 됐건 아니건 간에 불편한 지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선 그런 수위가 한 단계 더 상향된다. '청소년 성 노동 착취'를 유발하는 장면이 등장하거나, 누가 봐도 신체 특정 부위를 확대해 쳐다보는 샷으로 그려진 화면이 그랬다.

2019/10/10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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