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같은 주먹, 병구 주먹'에 푹 빠진다

조회수 2019. 10. 15.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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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판소리 복서> (My punch-drunk boxer,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판소리 복서> 표지 및 이하 사진 ⓒ CGV 아트하우스
* 영화 <판소리 복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장에서 최근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번개 같은 주먹 병구 주먹, 천둥 같은 장단 민지 장단"이라는 판소리 OST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예비 관객은 그 음악이 나오는 예고편 화면을 쳐다보게 된다.

바닷가에서 음악에 맞춰 복싱 연습을 하는 '병구'(엄태구)의 모습과 먼 거리에서 '지연'(이설)이 장구를 치는 게 전부인 이 예고편. "이 영화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야?"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이 영화는 지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뎀프시롤>이라는 가제까지 써갔던 작품이었다. 정혁기 감독이 자신의 26분 단편인 <뎀프시롤:참회록>을 114분의 장편으로 확장했기 때문.

영화는 도핑이라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복싱협회에서 제명된 '병구'가 '박관장'(김희원)의 배려로 간신히 체육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와중, '복싱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다시 한번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제는 '병구'가 뇌세포가 손상되는 '펀치드렁크' 진단을 받으며, 복싱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 와중에 '병구'가 여기저기에 붙여 놓은 전단지를 보고 온 '민지'(이혜리)는 복싱을 하고자 '신입관원'이 된다. 한편, 체육관의 에이스인 '교환'(최준영)은 선수가 되고자 '박관장'과 '병구'의 곁을 떠나기로 한다.
'판소리'와 '복싱'이라는 두 가지를 조합하면서 영화는, 사라져 가고 있는 것에 관해서 묻는다. 복싱은 과거 어렵던 우리네 삶에 한 줄기 빛을 제공한 스포츠였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전대미문의 멘트(1974년)와 '4전 5기'의 신화(1977년)를 만들어냈던 복서 '홍수환'의 이름이 거울에 부착된 것과 다르게, 지금 '박관장'네 체육관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다른 의미로 새로운 이들을 찾고 있었는데, 딱 봐도 배가 나온 초등학생 아이들은 '살 빼기'가 체육관을 찾은 주목적이었고, '민지'도 '다이어트 복싱'이라는 전단지를 보고 온 것이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누가 봐도' UFC와 같은 이종격투기에 더 열광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처럼, '판소리'도 그 포지션에 처해 있다. 그 명맥을 잊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통 음악'보다는 '퓨전 음악'이 더 주목을 받는 것이 현실. 그런 상황에서 '병구'의 전 여자친구인 '지연'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이어나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 꿈은 '지연'의 죽음으로 인해 끝이 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지연'의 죽음은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구'에게는, 자신의 꿈을 완수하고자 하는 바람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 밖에도 지금은 '디지털 TV'로 자취를 감추고 있는 '브라운관 TV',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게 잡힌 '필름 카메라'도 사라져 가는 대표 가전제품으로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유기견'을 돌보는 '병구'의 모습 역시, '버려져 간'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어간다.

그래서 '병구'는 새로운 TV를 사는 것이 수리비보다 더 쌀 것이라는 TV 수리기사에게 "고치면 되지. 왜 버려요"라는 말을 남기기까지 한다. 또한, '박관장'이 "우리의 시대가 끝난 것 같다"라고 말할 때, "시대가 끝났다고 우리가 끝난 건 아니다"라고 답하는 '병구'의 모습은, 단순히 '복싱'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남기는 답처럼 보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병구'가 링 위에서 서서 날리는 '판소리 복싱'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춤사위'처럼 보였다.
"번개 같은 주먹 병구 주먹, 천둥 같은 장단 민지 장단"이라는 구성진 판소리에 날리는 주먹질은 <록키>(1976년)의 마지막 장면보다는, <취권>(1978년)이나 <소림축구>(2001년)에서 볼 법한 장면이기 때문에, 상당히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마냥 웃으면서 보기엔 짠한 장면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OST가 발매되어, 이 '판소리 대목'을 꼭 제대로 다시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다.

한편, '박관장'이 있는 체육관은 재개발의 여파로 없어질 위기에 처한다. '이스터에그'처럼 보이는 장면이지만, 하필 '박관장'네 체육관이 있는 가상 도시의 이름은 <아수라>(2016년)의 주무대이자, 재개발이 한참 진행 중이었던 '안남시'와 동일했다. (물론, 이 작품의 '안남시'는 경기도였던 <아수라>와 다르게 경상남도에 있다)

2019/10/13 메가박스 동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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