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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영화는 '성수대교 붕괴'를 선택했을까?

조회수 2019. 9. 2.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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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벌새>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엣나인필름
* 영화 <벌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KNN 관객상, 넷팩상)을 시작으로, 서울독립영화제 2관왕(새로운선택상, 집행위원회 특별상)에 이어, 2019년 베를린 영화제 대상(제너레이션 14플러스 국제심사위원), 시애틀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공식경쟁)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 <벌새>는 하반기 한국 독립영화 기대작 중 하나였다.

무너진 성수대교를 뒤로하고 서 있는 소녀 '은희'(박지후)의 강렬한 포스터를 남긴 <벌새>는 '어찌 보면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관객의 시선에 따라 영화가 담긴 의미를 되짚어 볼 여지가 많은 작품이 됐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은희'는 가부장 중심인 가정에서 '외고-서울대' 입시 라인을 강요받는 오빠 '대한'(손상연), 일탈을 일삼는 언니 '수희'(박수연) 아래에서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인물이다.
부단히 아빠(정인기)와 엄마(이승연)를 비롯한 가족, 비밀도 없는 친한 친구 '지숙'(박서윤), 남자친구 '지완'(정윤서) 등 '은희'는 자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쉽지 않다. 학교에서는 공부에 걸림돌이 되는 '불량 학생' 색출에 나서고, 부모와는 소통이 되지 않으며, 언니와 오빠의 답답한 행동을 보는 것이 일상이다. 심지어 '친한 친구'에게서 배신감을 당할 것 같은 상황도 찾아오며, '남자친구'와 걷던 중 '어머니'를 만나 당황스러운 일도 발생한다.

그러던 중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심지어 이해까지 해주는 한문 학원 선생님 '영지'(김새벽)의 등장으로, '은희'는 애정 어린 시선을 갖게 된다. '영지'는 '은희'를 그냥 동정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교류를 통해 관계를 설정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이에 '은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꿈같던 '은희'의 여름날도, 가을이 되니 무시무시한 사고로 인해 깨어지고 만다.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무너지면서, '영지'도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만 것. '은희'는 무너진 성수대교를 바라보며, 무언가의 다짐을 하고 살게 된다.

여름 내내 자신을 괴롭혔던 귀밑의 혹을 떼어낸 것처럼, 서서히 '은희'의 좌절도 사라져갔고,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된 것. <벌새>는 할리우드의 독립 영화 제작·배급사인 'A24' 스타일로 만들어진 <응답하라 1994>처럼 보였다. <문라이트>(2016년)나 <레이디 버드>(2017년)에서 봤던 인물들의 성장기가, <미드 90>(2018년)과 같이 199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전개됐기 때문.

김보라 감독은 "성수대교가 무너진 해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1994년이 어떤 해인가? 그해 여름은 지난해 폭염 만큼이나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었고, '오렌지족'과 'X세대'가 등장해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는 청년들이 등장한 시대였다.

뉴스로 언급됐지만 '미국 월드컵'이 열리기도 했었고,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전쟁 위기론'이 나오기까지 했었다.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라는 1994년을 대표하는 노래가 '은희'의 사랑을 고백하고자 등장했었다.
하지만 김보라 감독은 그 시기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성수대교 붕괴'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붕괴 과정 중 '시각적으로 보여준'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며, 그로 인해 '은희'가 맺어온 관계의 붕괴와 그 붕괴에서 삶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어 했기 때문에, 1994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대로, 일부 관객에 따라서 쌍문동을 배경으로 한 <응답하라 1988>처럼, 왜 강북이 아닌 강남을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해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점도 나왔을 순 있다. 그것이 이 영화의 공감대 형성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강남의 '은마아파트'에 살 정도로 '어느 정도'로 풍족한 집안을 배경으로 했고(아무래도 외국 평론가들은 이 지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다. 나이가 든 아파트를 보면서 <가버나움>(2018년)의 이미지를 연상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은희'의 '중학교 2학년 생활'이 마치 '그들이 사는 세상'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수대교 사고를 모티브로 한 만큼, '강남 설정'은 필연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등교하던 학생들이 상당수 성수대교 붕괴 당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고, '은희'의 언니 역시 강북에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나, '다행스럽게' 버스를 타지 않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서울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생 배정 원칙으로 '한강을 건너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10여 년 넘게 등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유년 시절 대치동에 살았던 김보라 감독(1994년 당시 중학교 1학년생이라고 밝혔다)의 감정이나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 것도 '강남 설정'은 불가분한 선택이었을지 모르겠다.

한편, <벌새>는 1초에 80~90회의 날갯짓을 하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조류 중 하나로, 주로 열대 지방에서 서식한다. 약 5~20cm의 작은 크기의 새로, '벌새'는 먹이인 꿀을 섭취하기 위해 바쁘게 날갯짓을 하면서 이동을 한다.

그만큼 '벌새'는 포기하지 않는 생명력이나, 희망을 의미하는 존재로 상징되는데, 덕분에 영화 <벌새>는 '은희'가 좌절하면서도 희망차게 일어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또한, <벌새>는 전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촬영 구도나 방식을 통해 그 전형성에서 떨쳐나고자 하는 모습을 종종 체험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야외 촬영은 정적이면서도 은은한 빛이 돌며, '은희'의 집 내부나, '은희'가 '첫 키스'를 하는 아파트 계단 등은 약간은 어두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은희'를 맡은 박지후의 연기는 대단했는데, 그야말로 보편적이면서 전형적인 '은희'의 모습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함께 출연한 한문 선생님 '영지' 역의 김새벽도, 이제는 한국 독립영화계의 중심축이 된 만큼 <벌새>의 뼈대를 잘 구축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나저나, 이제 40대에 도달하기 직전인 '은희'는 2019년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영화관을 빠져 나오면서 문득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벌새>의 '은희'가 가진 감정들이, 단순히 1994년의 '은희'가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사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2019/08/14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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