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남자와 닮은 사람을 사귀면 일어나는 일!

조회수 2019. 3. 25.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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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아사코> (寝ても覚めても, Asako I & II,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아사코>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이수C&E
* 영화 <아사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던 <아사코>는, 첫사랑과의 이별을 2011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에서 나온 일본 국민들의 상실을 함께 담아낸 영화다.

포스터나 시놉시스만 보면 <아사코>는 여느 일본 로맨스 영화와 달라 보일 것이 없을 것 같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칸영화제에 경쟁 부문으로 초청됐느냐는 의문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내용 자체는 '판타지'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사 영화가 아니었다.

새로 산 팝콘이 채 식기도 전에, 장발 청년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는 다짜고짜 사진전에서 처음 만난 '아사코'(카라타 에리카)의 입을 맞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어느 날 신발을 사러 나간다면서 '바쿠'는 사라진다.
2년 후인 2011년, '바쿠'를 잊지 못한 채 오사카에서 도쿄로 옮겨와 카페에서 일하던 '아사코'는 근처 사케 회사에 배달하던 중 '바쿠'와 닮은 '료헤이'(히가사데 마사히로)를 만난다. 서로 호감은 있었으나, 무언가 거리감이 있던 두 사람은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확실한 연인이 된다.

그로부터 5년 후, '료헤이'는 오사카로 전근을 하러 가고, '아사코'와 결혼하겠다며 프러포즈를 한다. 오사카 강가에 집까지 계약한 후, 이사를 준비 중이던 그 무렵, 인기 모델로 성장한 '바쿠'가 갑자기 손을 잡고는 함께 떠나자고 나서게 된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지루할 수 있는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보려면 작품에 나오는 사진이나 희곡 작가와 작품을 한 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작품에 나오는 그림이다. '아사코'와 '바쿠'가 처음 만난 전시에서, '아사코'는 쌍둥이 자매의 그림을 오래 바라본다. '아사코'의 내면에 있는 갈등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바쿠'와 '료헤이'라는 비슷하게 생겼으나 성격은 완전히 다른 두 인물의 모습을 의미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도쿄에서 열린 고초 시게오의 사진전으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자아와 타자>라는 내용의 사진집을 낸 바 있으며, 이는 첫 번째 그림과 연결된다. 세 번째는 '료헤이'의 직장 동료인 '쿠시하시'(세토 코지)와 '아사코'의 친구인 연극배우 '마야'(야마시타 리오)의 설전에서 나오는 희곡작가 안톤 체호프다.

"인간은 신념 없이 살아갈 수 없다"라는 작품 속 지문처럼, 안톤 체홉은 <갈매기>, <벚꽃 동산>, <바냐 아저씨> 등을 통해 인간성이 상실되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인간의 본연을 인정하는 '인간성 해방'과 관련된 작품을 써내려간 인물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현대극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헨릭 입센의 희곡 <들오리>다. 작품은 한 이상주의자의 파국을 통해, 우리 시대의 갈등은 곧 우리 개인의 고통과 갈등을 생기게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는데, 하필이면 '마야'가 출연한 공연이 막을 올리기 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다.

또한, 헨릭 입센은 대표적인 남성 페미니스트로, 그의 작품인 <인형의 집>은 전통적인 계급주의에 따른 여성관이 아닌, 사회 활동 참여나 권리를 주장하는 등 유럽 전역에 여성 해방 운동을 환기해준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네 가지 레퍼런스와 더불어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담아냈다. 영화에서는 '아사코'의 고향 친구가 싱가포르 남성과 결혼하고 다시 도쿄로 돌아온다는 내용이 있는데, 다른 지역 물가보다 도쿄 물가가 더 싸졌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에 "그만큼 엔화 가치가 떨어졌다"라는 비꼬는 말이 나오는데, 이처럼 '버블 경제'로 인해 일본 경제가 위축된 상태에서 나온 '동일본 대지진'은 당시 젊은 세대에게 그야말로 '무력감'을 준 사건이었다. 이는 지방 대도시에서 서울로 상경해 힘든 나날을 보내는 현재 한국의 젊은 세대와도 연결되기도 한다.
'료헤이'는 지진을 직접 겪으면서도, 자신이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료헤이'의 출신 지역인 간사이(관서)에는 1995년 '고베 대지진'을 제외하고는 대규모 지진도 없었을 것이다.(영화가 칸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오사카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다)

그가 있는 간토(관동) 지역이나, 쓰나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도호쿠(동북) 지역은 직장 동료를 빼고(그래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 봐야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는 친척이나 지인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길거리에서 우는 한 여성을 보고는 손수건을 내밀 순 있을지언정, 그렇게 주저앉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료헤이'에게도 엄청난 '죄책감'을 안기게 하는데, 결국 두 사람은 도호쿠 지역으로 봉사활동을 때마다 가는 이유로 자리잡게 됐다. 그마저도 오사카로 돌아가면 자주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까지 들었을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여성관이 낡았다"라는 지적도 받았다. 물론 일부 공감이 되는 대목도 있다. 아무리 '아사코'도 좋은 감정으로 남아있을 순 있으나, 동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키스를 당하는 첫 장면은 성추행으로 읽을 순 있다. 그리고 '아사코'와 '료헤이'의 관계가 순종적인것 처럼 보일 순 있다.

그러나 '료헤이'가 설거지를 하는 장면을 보면, '독박 가사 노동'을 하는 스타일로는 묘사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고향인 홋카이도로 가자는 '바쿠'가 등장하면서, '아사코'는 순간 자신의 행복추구권인 '자기결정권'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 '아사코'는 도호쿠 지역에서 '내적 갈등' 끝에 '료헤이'가 있는 오사카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내린다. 그 장면부터 '아사코'는 자신의 첫사랑과 '확실한 이별'을, 강요가 아닌 자신의 결정으로 선택한다. 이는 수동적인 여성관이라기보다는 그 반대에 가깝고, '바쿠' 역시 '아사코'를 별다른 거부 없이 보내준다.
'바쿠'와 헤어진 후, '아사코'는 바다를 바라보는데, 카메라는 '아사코'를 따라가다 어느 순간 바다만을 잡게 된다. 이는 바다가 상징하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담아내는데(쓰나미라는 재난을 안겨준 바다라는 의미도 포함될 것 같다), 이는 앞서 언급한 네 가지 레퍼런스와 맞아떨어진다.

'아사코'의 이름 중 '아사'가 아침을 의미하는 한자(朝)에서 따온 것처럼,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바라본 바다를 통해 '아사코'는 '사랑의 성장통'처럼 보이는 '첫사랑'과 이별하고 현재의 사랑을 이어가겠다는 용기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료헤이'를 만났을 때 '아사코'가 더욱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신뢰 관계'가 깨져버린 '료헤이'는 다시 '아사코'를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인 것처럼 대하려고 하지만, 기어코 마음의 문을 '조금이나마' 열게 된다.
여기서 '조금이나마'라는 말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먼 시선에서 '료헤이'를 잡으려는 '아사코'의 모습을 담을 때 햇빛이 비가 내린 마을 전체를 환하게 해주는 롱테이크나, 집에 도착한 두 사람이 불어난 흙탕물을 바라보는 롱테이크 때문이었다.

비록 '판타지'와 같은 전개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사코>에 나온 인물들의 갈등은 '리얼리티' 그 자체였던 영화였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자신의 뚝심과 흩어진 조각처럼 보였으나 하나로 뭉쳐진 조각이 되어 나온 레퍼런스의 조합을 통해, 곱씹어보면 곱씹어볼 수록 좋은 영화로 남을 것 같다.

특히 사랑의 감정에 아파하거나, 아파했거나, 그런 감정을 현재 진행형으로 느끼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2019/03/23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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