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에 이 영화를 피해야 할 이유

조회수 2019. 3. 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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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자전차왕 엄복동 (Bicycle King Uhm Bok-Dong, 2018)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표지 및 이하 사진 ⓒ (주)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1절 100주년을 맞이해 영화계에서도 크게 두 작품이 개봉했다. 하나는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항거:유관순 이야기>이며, 다른 하나는 1910~30년대 스포츠 스타인 '엄복동'을 소재로 한 <자전차왕 엄복동>이다.

전자가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있었던 일을 담담한 어조로, 그러면서도 뜨거운 투쟁으로 담아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마음을 울렸다면, 후자는 이와 반대의 평을 받아야 했다.

개봉 전부터 언론 시사회나, 일반 시사회에서 나온 두 작품의 후기는 극명한 온도 차를 보였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나온 가장 큰 지적은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실제 인물인 '엄복동'(정지훈)이라는 인물의 서사를 억지로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관객을 설득할 힘조차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무리수 코드'를 '폭탄'처럼 다량 투척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먼저, '일제의 만행' 전시를 각종 상황이나 대사를 통해 쉴 틈 없이 보여주는 <자전차왕 엄복동>의 주요 줄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만화 잡지인 <소년 점프> 작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 구조로 이뤄졌다.

'엄복동'이 물장수 청년으로 시작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자연스럽게 '자전차 선수'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엄격한 스승 아래에서 규칙을 어기게 되고, "한 번 만 용서해달라"는 말을 한 주인공에게 벌을 내린 스승이 끝내 대회 출전 기회를 준다는 내용까지는 '그래도 크게 모나지 않는 서사 구조를 활용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어 1913년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처음 우승을 하게 된 '엄복동'의 이야기를 다루는 동시에, 제작진은 '엄복동'을 '독립투사'라는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엄복동'이 소속한 자전차 상회인 '일미상회'가 '애국단'을 몰래 후원을 해준다는 설정을 통해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극화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엄복동'은 '애국단'의 '김형신'(강소라)의 죽음으로 인해 각성하게 되고, 일제에 대한 분노를 경주 결과로 표출하게 된다.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형신'의 활약 자체는 멋있었지만, '애국단'의 활약이 영화의 전체 틀과 겉도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최대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엄복동'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 자체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를 '독립투사'로 만들어 보여주기에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당시 나라를 빼앗긴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일본 선수'를 대상으로 연전연승했으니,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을지언정, 그가 그만큼의 삶을 살아왔는지는 의문이 든다.

1926년,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독립운동'이 아닌 '자전거 절도 공범'으로 들어갔으며, 1950년에는 지금으로 약 3~400만원에 해당하는 자전거를 절도하다 서울지검에 송치됐었다.
이러한 논란이 물론 1920년대 '정식 기사화' 됐기 때문에, 영화의 주 무대인 1910년대와는 별 관련이 없을 수 있다고 변호할 순 있지만, 문제는 그 사실을 제작진이 사전 자료 조사를 통해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 알아채지 않고, 집필 후에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노래로 작품에 등장하는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는 비행기 조종사 안창남이 활동하던 1920년대에 나온 노래였다. 1910년대 안창남은 비행학교에 다니던 10대 청년이었으니, 애초에 작품 안에서 울려 퍼질 수가 없었다.

특히 마지막 '한일전' 장면은 1920년 5월, '경성시민대운동회'를 극화한 것인데, '엄복동'이 1위를 유지할 때, 일본 심판은 해가 저물었다며 경기를 중단시켜버렸고, 이에 항의하던 '엄복동'이 '우승기'를 꺾어버리자 일본인들이 그를 집단 구타했고, 이를 막기 위해 일반 군중들이 "엄복동이가 맞아 죽는다"라며 소리치고 '한일 난투극'이 발생한 사건이었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조금만 검색해도 다 나오는 실제 사건을 '판타지'로 만들어 버린다. 영화에서 '엄복동'은 자신의 동생을 죽인 빌런 캐릭터(심지어 그 사실을 말하지도 않는데, 그렇다면 동생의 죽음은 줄거리 전개와 상관도 없이, '일제의 만행'을 강조하기 위한 '개죽음'이 되어 버린다)와 대결하고, 심지어 타이어 펑크가 나버린 자전거로 거의 한 바퀴 차이나는 상대를 역전한다는 무리수 끝에 승리한다.

상대가 그렇다고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처럼 쉬엄쉬엄 질주한 것도 아니었으며, 이는 <소년 점프>의 대표작인 <슬램덩크>도 잘하지 않는 무리수였다.

이후 등장하는 민간인 대상 발포 장면이나, '올드 랭 사인'의 멜로디에 따라 '애국가'를 부르는 장면, 그리고 갑자기 등장하는 플래시백과 함께 나오는 "1919년 3.1 운동의 계기가 '엄복동의 경기'에서부터 비롯됐다"라는 자막 설정은 작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엄연히 실재하는 역사에 대한 '예의'가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나는 문장이었다. 혹여나 이 작품으로 잘못된 역사를 배울 어린 관객들이 있을 것 같아, 제대로 된 3.1 운동의 계기를 꼭 남겨보고 싶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은 일본 유학생들이 1919년 2월 8일 독립 선언을 외쳤고(2.8 독립 선언), 이에 감동을 한 종교계(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지도자 중심의 33인의 민족 대표들이,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 이틀 전에 전국 주요 도시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3월 1일, 태화관 앞에서 독립운동가들은 독립 선언을 낭독했으며, 동시에 탑골 공원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만세 시위를 펼쳤다. 이후 5월까지 전국은 물론이고 만주, 연해주 등 다양한 곳에서 이 시위가 열린 것이 3.1 운동의 계기와 전개다.

혹자는 "그렇다면, 스포츠 영화로의 의미는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겠지만, 이 영화의 CG는 10년 전에 나온 스포츠 영화 <국가대표>보다도 부족한 CG를 자랑하며, 관객의 눈을 의심하게 해준다.

후반 작업이 덜 됐다는 것을 스스로 노출한 것으로, 몇 사람 건너 같은 사람이 또 등장하고, 그것마저 과거 게임 <FIFA> 시리즈에서나 보는 평면 그래픽처럼 느껴져 원근감을 파괴하는 관중석 화면이 '이스터에그'라면, '이스터에그'다. 1959년 영화 <벤허>의 전차 경주를 헌정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이 역시 60년 전 <벤허>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 죄송스러워진다.
"<리얼>(2017년)과는 다르게,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사용하는 관객도 있지만, 이는 100억 이상의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영화에게는 모욕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 선수에 관련한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퍼스트맨>(2018년)의 '닐 암스트롱'처럼 자신의 고뇌를 충실히 보여준 캐릭터로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며, 소원을 접었다.

20세기 한국 스포츠의 역사에서 '일종의 팬덤'을 만들어낸 최초의 인물을 저렇게 소모했다는 것이 원통해서였다. 이런 내용이 반복되어 등장한다면, 손기정 선수 이야기는 그저 관객의 마음을 울리기 위한 '내셔널리즘'의 희생양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차라리 안 나오는 게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2019/02/19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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