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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배우만 있다고, 좋은 영화는 될 수 없다

조회수 2019. 1. 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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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마약왕> (The Drug King, 2017)
글 : 양미르 에디터
* 영화 <마약왕>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충무로에서 1970~80년대의 시대상을 대변해주는 배우가 있다면, 단연 송강호가 아닐까?

1970년대 대통령의 이발을 담당하던 '성한모'(2004년 <효자동 이발사>)부터,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택시기사 '김만섭'(2017년 <택시운전사>), 1980년대 살아있는 계란으로 죽은 바위를 넘어서고자 했던 변호사 '송우석'(2013년 <변호인>), 1986년 일어난 연쇄살인 사건을 '고문'을 통해 수사하려 했던 형사 '박두만'(2003년 <살인의 추억>)까지, 이쯤 되면 '송강호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말을 써도 될 정도다.

캐릭터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색채의 연기를 보여준 송강호의 새로운 작품은 <효자동 이발사>의 시대와 같은 1970년대를 다룬 <마약왕>이었다.
'마약 거래'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외화를 유치하면, 그것이 경제 발전이고, 이는 애국으로 연결된다는 당시의 시대 정신을 보여줌과 동시에 '만주'에서 태어난 한 인간이 몰락해가는 과정은 분명 한국에서 다루고 싶었지만, 다루기 힘든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소재를 용기 있게 꺼낸 인물은 '예지몽 영화'라며 찬사를 받은 <내부자들>(2015년)의 연출을 맡은 우민호 감독이었다.

그의 작품은 이 땅의 권력 구조를 파헤쳤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를 마시고 싶었던 배우들의 명연기와 명대사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로 성공했겠냐는 우려,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적나라한 여성 '성 접대 장면'을 그렇게 길게 담을 필요가 있느냐는 부정적인 시선 등이 모두 포함됐었다.
그래서 새롭게 나온 <마약왕>에서 우민호 감독은 약간의 가지치기를 진행했다. 자극적인 장면을 최대한 보여주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고, 블랙코미디와 같은 상황을 다량 연출했다.

또한, 오프닝 곡으로 지그소의 '스카이 하이'(왕우, 홍금보 주연의 동명 영화 주제곡이다)를 선택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금지된 마약'을 제조할 때 나오는 김정미의 노래 '바람'이 '금지곡'이었다는 점도 묘한 시너지를 만들었으며, '이두삼'(송강호)이 듣는 클래식인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을 통해 작품의 의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게다가 송강호는 앞서 언급했던 1970~80년대 작품을 포함해, 악역부터 선역까지 모두 진행한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뛰어넘기 위한 도전을 멋있게 해냈다.
'이렇게 약하는 연기를 보여주면, 앞으로 이런 마약 장면을 찍어야 할 배우들은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심지어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마지막 총격전에서 나오는 '이두삼'의 독백은 현재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을 간접적으로 비춰주기도 했다.

작품의 출연 배우들은 모두 '연기 구멍'이라고 말할 것 없이 최선의 앙상블을 보여줬지만, 문제는 배우들의 호연이 아니라 <내부자들>보다 더 늘어난 '주연-조연 캐릭터'들이었다.

<내부자들>이 130분이라는 상영 시간에 모든 인물의 이야기를 다 풀어내지 못해서, 180분이라는 확장판이 나왔듯이, <마약왕>도 139분이라는 상영 시간에 인물들을 꾸역꾸역 집어넣은 인상이 강했다.
예를 들어,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나 부인 '성숙경'(김소진), 사촌 동생 '이두환'(김대명), 범죄 조직 보스 '조성강'(조우진), 밀수업자 '최진필'(이희준) 등이 '이두삼'을 도와주는 플레이는 하지만, 이들이 직접 슈팅을 시도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며, 부자연스럽게 경기장에서 빠져나왔다.

이는 단순히 예를 든 캐릭터만의 문제는 아니었으며, 작품에 나오는 약 10여 명의 캐릭터가 모두 비슷했다. 인물이 많다 보니 과도한 정보(TMI)도 많아졌고, 관객들은 어느 캐릭터에 집중해서 작품을 봐야 할 지 혼란스러워했다.

최근 떠오르는 드라마 시청 패턴 중 하나인 '인터넷 영상 클립'(이를테면, 송강호와 김소진의 불꽃 튀는 '맞싸대기!')처럼 쪼개서 본다면, 무언가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순 있겠지만, 완성된 한 편의 영화로 이어서 본다면 다소 안타까운 결과물이 된 셈이다.

좋은 영화는 좋은 배우를 더 빛나게 하지만, 좋은 배우만으로는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는 격언을 또 한 번 입증한 작품이 됐다.

2018/12/14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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