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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핏빛 복수는 왜 와닿지 않았을까?

조회수 2021. 4. 16.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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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미디어 투고] <낙원의 밤> (Night in Paradise, 2020)
글 : Rabbitgumi
출처: 영화 <낙원의 밤> ⓒ 넷플릭스
삶은 늘 의도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방향으로 가려고 애쓰지만, 그것은 조금씩 틀어져 어느 정도의 시점이 지나고 돌아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위치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그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써도 그 방향은 잘 틀어지지 않는다.

정말 운이 좋다면 방향을 틀어 조금 더 자신이 바라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여러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그 자리에 머무르거나 혹은 더 안 좋은 일들을 경험하며 더욱 위축되게 된다.

이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한 모습이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삶의 방향을 바라보고 현재의 삶을 지탱해가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실패를 각오하면서 바라보는 방향을 바꿔야 하는 때가 온다.
그렇게 자신이 어떤 방향을 바라보는 그때, 옆에는 가족이 있다.

힘든 시기를 지날 때 가족은 그것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리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도 가족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기운을 주는 그 가족 앞에서는 어려움을 감추고 웃는다.

그렇게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비록 어려울지라도 나아갈 동력이 생긴다.

그래서 더욱 가족을 지키려 하고 자신이 하는 일과는 분리시키려 한다.

그렇게 삶과 일을 분리하면서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가장 좋은 모습일지 모른다.

영화 <낙원의 밤>은 누아르 장르를 통해 삶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태구'(엄태구)는 한 조직에서 꽤 오래 일을 해온 인물이다.

조직 내에서 중간 정도의 계급으로 보이는 그가 병원에서 누나(장영남)와 조카를 만나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가족을 만나고 맞이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가족을 아끼는지 볼 수 있다.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치는 그는 퉁명스러운 누나의 태도도 잘 받아주면서 따뜻한 태도를 유지한다.
어떤 질병으로 인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누나에 대한 연민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진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런 따뜻함을 불러왔을 것이다.

비로소 누나와 조카가 차를 타고 출발했을 때, 그의 얼굴은 어둡게 변한다.

그 표정이 바로 그가 일을 처리하고 대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이 얼마나 어두운 일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철저히 그의 일과 가족을 분리시키면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병원에서 집으로 가던 누나와 조카가 차량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가 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어져 버린다.

그렇게 그에게는 일만이 남았고 그것이 조직싸움 과정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가 보는 삶의 방향은 완전히 틀어져 버린다.
영화 속에서 태구가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는 장면은 매우 건조하고 빠르게 연출되었다.

즉 이 영화가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복수를 한 이후 태구가 받는 여러 가지 리액션을 보는 것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태구가 속한 조직과 관련하여 '양 사장'(박호산)은 태구가 지지하는 중간보스이며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마 이사'(차승원)는 태구가 피해야 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복수가 마무리된 후, 태구는 제주도의 무기밀매상 '쿠토'(이기영)와 그의 조카 '재연'(전여빈)의 집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태구의 목적은 이제 조직의 일에서 벗어나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쿠토의 집에서 만나게 되는 재연은 태구의 누나와 비슷하게 치료가 어려운 질병에 걸려 곧 죽음을 맞이하는 시한부 캐릭터다.

그는 태구를 환영하지는 않지만 아주 밀어내지도 않는 인물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제주도에서 도피 생활을 하는 태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없는 듯 그저 공허한 눈빛으로 제주를 돌아다닌다.

시한부 소녀 재연과 태구가 대화를 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 같다.

재연과 그의 삼촌 쿠토는 서로에게 유일하게 남은 가족으로서 서로를 굉장히 의지한다.

무기밀매 일을 하고 있는 쿠토가 못마땅하지만, 재연은 한 편으로는 삼촌을 잃을까 걱정을 하는 인물이다.

쿠토는 조카의 질병을 낫게 하려고 해외의 유명 병원에서 수술을 시키려 무던히 애쓴다.

이 가족에게 갑자기 나타난 태구는 어찌 보면 불청객이다.

반대로 태구가 재연을 볼 때는 누나와 조카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시한부였던 누나처럼 재연도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위험한 일을 하는 삼촌의 일은 싫어하지만 삼촌을 의지하는 재연의 모습에서 태구의 어린 조카가 떠오른다.
영화 <낙원의 밤>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건, 태구와 재연의 관계다.

전혀 연결점이 없을 것 같은 그들이 서로 만나 대화하면서 상대방에게 가족의 모습을 본다.

물회는 영화 안에서 꽤 의미 있는 음식이다.

삼촌과 함께 생활하면서 먹게 된 물회는 재연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며, 태구에게도 어릴 적 엄마가 해줬던 음식이어서 엄마의 맛이 담긴 음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물회 집에 가서 음식을 먹으며 가족의 맛을 느낀다.

그 맛에서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연결고리가 생긴다.

어찌 보면 태구와 재연은 연인의 감정보다는 삼촌과 조카의 모습을 서로에게서 보는 것 같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연결된 감정은 더욱더 강해지고 서로를 유사가족처럼 느끼고 서로에게 기대도록 만든다.
영화 전반적으로 밤에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영화의 제목이 <낙원의 밤>인 것은 휴양지인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나쁜 일들을 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아는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화면에 거의 비추지 않는다.

그저 바닷가 어딘가의 휴양지라는 느낌이 강하다.

태구와 재연은 가족의 맛이 나는 음식을 먹고 바닷가 옆의 휴양지에서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들의 삶에 더 이상 밝은 낮은 없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태구의 삶도, 재연의 삶도 더욱 어두운 밤으로 계속 빠져든다.

태구는 질병으로 인한 시한부는 아니지만, 외적인 영향으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그의 눈빛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다소 어둡고 정적으로 촬영된 제주도의 풍경은 이런 두 주인공들의 비극을 느낄 수 있게 깨끗하고 조금은 건조하게 찍혔다.
영화 <낙원의 밤>은 범죄 조직에서 일하는 한 남자가 겪는 일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조직에서 발생한 범죄, 복수극을 기본적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초반 이후 태구와 재연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비추고 있어 누아르 장르의 분위기가 많이 퇴색되었다.

또한 비극적인 상황에 두 사람을 넣어 감정적인 부분을 관객에게 전달하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다고 볼 수는 없다.

즉, 영화 속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의미 있는 관계가 되지만 관객에게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아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또한 범죄물과 복수물이라는 긴장감 역시 잘 전달되지 않아 결말부에 다다를 때까지 영화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모든 인물이 알고 보면 각자의 접점이 있어 연결되고, 영화의 말미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지만 그런 정리의 깔끔함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조직 내에서 태구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은 양 사장이라기 보다는 마 이사일 것이다.

마 이사는 양 사장의 계획 때문에 태구를 죽여야만 하는 그 상황에 대해 계속 투덜대는데, 정작 영화에는 양 사장을 죽일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으면서 조직에서 큰 힘이 없는 태구를 희생시켜서 얻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마 이사가 영화에 등장하는 중반부터 영화에 긴장감을 넣으려 애쓰지만, 그것이 크게 효과적으로 발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배우 차승원의 연기는 그동안 관객들이 많이 보아왔던 차승원의 농담 반 진담 반인 예능 캐릭터와 겹쳐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얄미운 역할을 맡은 배우 박호산의 연기가 더 악독하게 느껴진다.
주연을 맡은 배우 엄태구의 연기는 좋지만, 그가 가진 특유의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처럼 대사를 하는데, 이 대사가 너무 작아, 관객들에게 한 번에 잘 전달되지 않는다.

재연 역을 맡은 배우 전여빈은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 결국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마는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박훈정 감독은 <신세계>(2013년)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대호>(2015년), <브이아이피>(2017년), <마녀>(2018년) 등의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고, 이번 신작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상황이어서 향후 연출작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 위 글은 'Rabbitgumi'님이 알지 미디어에 투고한 글입니다. 위 글의 저작권은 'Rabbitgumi'님께 있고, 무단복제 및 전재 –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알지 미디어 오피니언 섹션(https://alzi.me/contributions)에 알찬 비평·리뷰를 투고해주시면, 네이버 포스트, 카카오 1boon 등 당사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홍보해드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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