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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에 관한 이른 소회

안녕조차 허락되지 않은, 지나치게 가혹하고 이른 이별이었다
어느덧 故 김주혁 1주기가 지났다.
황망한 죽음을 통해 명징해진 삶을 되짚으며 늦은 안녕을 전해본다. 김주혁을 돌아본다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자신의 저서 <죽어가는 자의 고독>에서 이렇게 저술했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다. 죽은 사람에게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죽은 이는 죽음으로써 완벽하게 소멸한다. 하지만 어떤 이의 죽음은 그 이전까지의 생과 미약하게라도 이어져 있던 모든 이의 삶을 진동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생의 가치를 되레 일깨운다.


지난 10월 30일 오후 7시경이었다.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보던 터라 꺼놓았던 핸드폰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잠시 후 불을 밝힌 액정 너머로 카톡 메시지가 유난히 많이 쌓는 것을 확인했고, 그것이 서로 다른 다섯 개의 단톡방에 흩어져 있는 것임을 알게 됐다. 별생각 없이 하나를 열었다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메시지가 그득했던 이유가 있었다. 서로 다른 멤버들로 채워진 단톡방 다섯 개에 공유된 온라인 뉴스 링크는 단 하나의 소식으로 수렴되어 있었다. “(속보) 김주혁 교통사고로 사망.” 무릎반사처럼 “아!” 하는 탄식이 튀어나왔다. 난데없이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혹시 오보는 아닐까 잠시 의심해보기도 했지만 모든 정황이 너무나도 확실했다. 황망하다는 말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지나치게 황망했다. 그리고 그 황망함은 비단 나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닌 듯했다. 그날 이후로 SNS상에서 김주혁에 대한 조의를 표하는 문장과 사진을 심심찮게 만났다. 덕분에 사람들이 김주혁의 죽음을 이토록 슬퍼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 슬픔에 의문을 제기한다기보다는 김주혁이라는 사람의 존재감이 이렇게나 너른 것이었나 새삼 놀랍기도 했다.

'청연'에서 김주혁이 연기한 한지혁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넌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거다." 직접 전할 수는 없게 됐지만 이 대사는 이제 김주혁을 두고두고 기억할 이 세상의 것이 된 것만 같아 손을 흔들며 발음해보고 싶다.

사실 김주혁을 이렇게까지 존재감이 선명한 배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김주혁이 배우로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주혁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언제나 곁에 있는 캐릭터에게 양지를 양보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이를테면 김주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의 광식이는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여자에게 긴 시간 동안 고백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다 친한 동생의 아내가 되기 직전에서야 결혼식장으로 박차고 들어가지만 호기롭게 마이크를 뺏어 들고는 두 사람을 위한 축가를 부르는 남자다. 심지어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맡았던 덕훈은 아내의 외도에 분노하지만 끝내 아내를 포기할 수 없어서 아내가 바라는 일처양부제의 삶을 받아들이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질하고 답답하게 여길지 몰라도 그러니까 누군가를 해코지하거나 상처를 입히는 남자일 리는 없었다.



김주혁의 상대역을 맡은 여배우의 존재감이 형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유독 많아 보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싱글즈>와 <청연>의 장진영,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엄정화, <프라하의 연인>의 전도연, <광식이 동생 광태>의 이요원,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 등 그의 캐릭터 곁에 있는 여자들은 대부분 존중받는 존재였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캐릭터인지라 끝내 연민을 부르는 남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맡겨진 캐릭터의 운명이 대체로 그래서였는지, 애초에 그가 그런 성품을 지닌 남자라 캐릭터도 필연적으로 그런 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랬다. 착한 남자였지만 매력적인 남자는 아니었다. 작품이 끝나면 존재감도 휘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지난 10월 27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더 서울어워즈’ 시상식에서 김주혁은 영화 <공조>에서 보여준 연기를 인정받아 생애 첫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배우로 데뷔한 지 20년이 된 올해에 영화로 연기상을 받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수상 소감을 밝히며 “항상 제가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해서 이런 역할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 몇 년 사이 김주혁의 연기 경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2014년에 개봉한 <나의 절친 악당들>에 특별 출연한 김주혁은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인 회장 역을 맡으며 마냥 사람 좋아 보이던 인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밀은 없다>에서 맡은 김종찬은 지금껏 김주혁이라는 배우가 맡았던 역할 가운데 처음으로 경계선이 불명확한 존재였다. 이익을 위해서는 선도 악도 위장할 수 있는, 심층적인 비열함으로 무장한 인물. 이는 김주혁이라는 배우에게서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그러므로 놀라운 결과였다. 재발견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적확하게 이해시키는 연기였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또한 새로운 김주혁을 제시하는 영화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영수는 지질하면서도 저열하고 비겁하다. 지질하긴 해도 솔직하고 순정한 김주혁의 다른 캐릭터들과는 결이 다른 존재다. 한편으론 영수의 반성적 태도를 제시하는 결말은 홍상수 감독 영화의 남성 캐릭터에게서 보기 드문 성찰이기에 이색적이기도 하다. 이는 영화가 촬영되는 과정의 즉흥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홍상수 감독이 바라본 배우 김주혁의 내면을 응시하고 반영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공조'의 완성도에 대한 이견은 있을지 몰라도 배우 김주혁이 '공조'에서 보여준 단단함은 그 이후로 김주혁이 보여줄 무언가를 충분히 기대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실제로 김주혁의 배우 경력은 완전히 새로운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공조>는 김주혁이라는 배우에게서 발굴할 수 있었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작품이었다. 김주혁이 맡은 차기성은 냉혈하고 저돌적인 악인이다. 사리 분별이 냉정하며 결단력이 단호한 악역이다. 김주혁의 연기는 차기성이라는 악역의 카리스마를 명확하게 설득함으로써 영화적인 긴장감을 탁월하게 다진다. <공조>의 완성도에 대한 이견은 있을지 몰라도 배우 김주혁이 <공조>에서 보여준 단단함은 그 이후로 김주혁이 보여줄 무언가를 충분히 기대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실제로 김주혁의 배우 경력은 완전히 새로운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얼마 전 크랭크업된 이해영 감독의 신작 <독전>에서는 중국 마약계의 거물을 연기했다. <흥부전>을 모티브로 한 사극 영화 <흥부>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개혁적인 성향의 양반으로 등장한다. 최근에는 <공조>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의 신작 <창궐>을 촬영 중이었다. <공조>에도 출연했던 현빈과 다시 만난 작품으로 6회 차 분량의 특별 출연으로 등장할 예정이었으며 1회 차 촬영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김주혁은 더 이상 촬영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됐다.



김주혁은 근래의 인터뷰에서 끊임없이 ‘연기가 재미있어졌다’고 말해왔다. 연기 데뷔 20년을 맞이한 배우가 비로소 경력의 전환점을 맞이했으니 그럴 만했다. 순수한 관객 입장에서도 그의 연기 행보는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이후가 더욱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흥부>도 <독전>도 <창궐>도 보고 싶은 이유를 꼽으라면 김주혁이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해서라고 답하고 싶었다. 배우 김주혁의 유작으로 보고 싶었던 게 아니다. 김주혁이라는 배우의 종착지를 목격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죽은 자는 더 이상 말이 없으니 살아 있는 자는 이승에서 흩어지고야 말 한탄을 거듭할 뿐이다.

김주혁의 죽음 이후로 그 죽음에 물음표를 던지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사망이 확인된 직후에는 김주혁이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왔다고, 심근경색이 의심된다는 기사가 전해졌다. 김주혁이 사고가 나기 직전 운전 당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럴듯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심장동맥 손상이나 혈관 이상 등 심근경색 관련 증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심각한 두부 손상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했다. 지난 9월 26일에 종영된 드라마 <아르곤>에서 김주혁은 방송국 탐사보도팀 ‘아르곤’을 이끄는 취재팀장 김백진 역을 맡았다. 오로지 ‘팩트’에 기반한 정직한 보도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김백진은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고 말한다.


김백진의 말이 의미하는 건 현장에서 찾은 모든 것이 답이라는 건 아닐 것이다. 김주혁의 죽음을 추정한 언론들은 현장에서 찾은 무언가를 답이라 믿었겠지만 그저 추정에 불과한 것이었다. 현장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면 당장은 답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의 매체들은 현장에서 주워 온 것을 정답처럼 내걸었다. 소속사에서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염치도 예의도 없는 오답팔이였다. <아르곤>의 최종화는 언론인상을 수상한 김백진이 수상 소감에서 과거에 자신이 냈던 오보를 밝히고 이를 사과한 뒤 아르곤을 떠나는 과정으로 갈무리된다. <아르곤>은 김주혁이 출연한 가장 최근의 작품이었다. 언론의 사명감을 온몸으로 연기해낸 배우의 죽음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지독하게 역설적이라 되레 막막함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김주혁의 죽음을 추모하던 SNS상의 행렬 또한 기이한 행패로 번지기도 했다. 유아인은 자신의 SNS에 간략한 애도 글을 남겼다. ‘애도는 우리의 몫; 부디 RIP-’라는 문구와 벤자민 클레멘타인의 곡인 ‘콘돌렌스(Condolence)’의 음원 커버를 캡처해 업로드했다. 태도 논란이 번졌다. 선배 배우의 죽음을 가볍게 받아들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추모 자경단들이 등장했다. 추모를 빌미로 증오를 전파하는 것만 같았다. 애도를 핑계 삼아 미움을 전시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김주혁을 위한 선의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그들의 행위는 중요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김주혁의 죽음 한편에서 벌어지는 몰염치한 행태와 무관하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주혁이라는 한 인간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보냈다.

지난 11월 5일 저녁, 무심하게 리모컨 버튼을 누르며 TV 채널을 돌리던 손가락이 멈춘 건 KBS에서 방영한 <1박 2일> 때문이었다. 그날 방송은 김주혁 추모 특집이었다. 예능 출연을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더니 어느새 마음껏 ‘허당끼’를 발휘하는 김주혁의 웃는 얼굴을 보며 함께 웃다가 점점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1박 2일>이 이렇게 슬픈 방송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먹먹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로 한 김주혁에게 나머지 멤버들이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하차 이유를 물었다. 멤버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은 주업이 아니야. 매번 말했지만 난 이 팀에 민폐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순간에도 이상하게 참아져. 그렇게 참아지는 순간 내가 이 팀에 민폐라는 생각이 오는 거야. 처음에는 1년만 도전하려 했지만 멤버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인간 김주혁의 고운 마음과 배우 김주혁의 곧은 마음이 알알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멤버들도 시청자들도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김주혁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도 그가 그저 유명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곱고 곧은 그 마음이 어떤 식으로든 모두에게 전해진 것이리라, 새삼 실감하게 될 따름이다. 다만 그것을 그의 죽음을 통해 절감하는 것이라 애달플 따름이다.



“너무 슬퍼하실 팬분들과 주혁이와 저의 지인들에게 한 말씀 드려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실 거 같아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주혁이는 늘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배우였습니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한 배우였죠. 이제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주혁이의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 짓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저 또한 그러려고 노력할 겁니다. 우리 모두 힘내자고요.” 지난 11월 12일 김주혁의 소속사인 나무엑터스의 김종도 대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글 위로는 김종도 대표와 김주혁이 함께 환하고 웃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죽음은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 말했다. 김주혁의 죽음 앞에 많은 이들이 애도하는 건 사람들이 그의 죽음으로부터 어떤 물음표를 찾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언제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맞이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죽음 이전의 생을 기억할 모두에게 나름의 질문을 남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죽음 이전의 삶을 기억하는 모두의 생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 김주혁의 죽음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건 그 곱고 곧은 마음의 상실을 회복하려는 일련의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청연>에서 김주혁이 연기한 한지혁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넌 많은 사람들이 두고두고 기억할 거다.” 직접 전할 수는 없게 됐지만 이 대사는 이제 김주혁을 두고두고 기억할 이 세상의 것이 된 것만 같아 손을 흔들며 발음해보고 싶다. 너무 이른 이별이지만, 당신 덕분에 많은 이들이 웃고 울었으므로. 그러니 부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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