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견들의 은퇴식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군견들의 특별한 은퇴식 현장
얼마 전 군견 ‘달관’은 물론 치매 노인 구조에 이바지한 ‘로사’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군견에 쏠렸다. 사실 군견의 활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968년 1·21 사태 당시 공을 세운 ‘린틴’, 1990년 3월 제4땅굴 소탕 작전에서 북한군이 설치한 지뢰를 자신의 몸으로 터뜨려 1개 분대원의 생명을 구한 ‘헌트’, 1996년 9월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에서 잔당 2명을 소탕하던 중 적 탄환에 희생된 ‘노도’ 등 열거조차 힘들 정도로 수많은 군견이 임무 수행 현장에서 ‘네 발의 전우’로 우리 장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 이제는 관리견으로 제2의 견생(犬生)을 살게 된 군견들의 특별한 은퇴식이 열려 그 현장을 찾아갔다.
눈물의 군견 은퇴식
“단수야.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하니? 너를 만난다는 생각에 나는 하루 종일 설렘으로 가득 찼어. 그런데 이제는 헤어지게 되다니 너무 아쉽다. 건강하게 있어 줘. 전역할 때 꼭 널 데리러 올게.”
어떤 미사여구도 이보다 진심이 느껴지기는 힘들었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안타까움의 감정이 담겨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때마다 헤어짐의 슬픔은 깊어만 갔다. 지난 시간 이들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시간 이들은 군견과 군견병이 아닌 골육지정을 느낀 ‘전우’ 그 자체였다.
육군2탄약창 신재훈(일병) 군견병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으로 군견 단수의 은퇴를 축하했다. 그러나 ‘축하’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장내는 숙연한 분위기였다. 단수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표정만 지은 채 늘 그래왔듯이 두 눈을 군견병인 신 일병에게로 향했다. 애절한 군견 사랑을 보여준 신 일병은 전역 후 단수를 분양받을 계획이다.
지난달 28일 강원도 춘천시 육군군견훈련소. 이날은 정찰견으로 야전부대에서 활약한 ‘단수(셰퍼드)’와 ‘무궁(말리노이즈)’, ‘가도(셰퍼드)’의 은퇴식이 있는 날이었다. 군견에 은퇴란 군 간부로 치자면 전역 전 전직교육을 받는 시간이다. 은퇴해도 군견 신분은 유지되기에 이들이 민간에 분양되면 ‘전역’이라고 부른다.
군견들은 전성기를 보내고 8세 이상의 노견이 되면 작전견 임무를 종료하고, ‘은퇴견’으로 여생을 보낸다. 은퇴견은 양성훈련 부적격견들과 함께 ‘관리견’으로서 군견교육대에서 양육되거나 민간에 분양돼 새로운 견생을 살기도 한다.
이날 은퇴식은 군견훈련소가 군견 처우 개선 차원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공식 진행한 ‘은퇴식’ 행사라는 점에 큰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은퇴식은 훈련소장 신고 정도로 간략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이날 은퇴식은 ‘공식’ 행사인 만큼 국기에 대한 경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꽃목걸이 및 기념품 증정, 견별 약력소개, 훈련소장 축사, 군견병들의 은퇴 축하말 순으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됐다. 특히 은퇴견들이 도열한 장병들 사이를 지나 행사장을 떠나는 모습은 여느 전역식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박창보(중령) 군견훈련소장은 “네 발의 전우 군견들의 공로와 헌신을 기억하고, 제2의 견생을 살게 되는 이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공식 은퇴식을 마련하게 됐다”며 “이들 은퇴견들은 앞으로 개별 공간에서 사료, 목욕, 산책 등의 관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인연의 시작 그리고 아쉬운 이별
“이 군견의 이름은 뭔가요? 성격은 어떻죠? 아픈 곳은 없나요?”
은퇴견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쏟아내는 박인환 씨 부부에게선 남다른 책임감과 진지함이 느껴졌다. 이들은 이곳 군견훈련소에서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를 찾고 있었다. 군견이라는 타이틀과는 달리 순한 인상을 가진 검은색 리트리버 ‘알지’ 앞에 선 부부는 오랫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들의 마음을 알아챈 군견관리병이 주먹 쥔 손을 철창에 내밀어 보라고 했다. 군견들이 처음 보는 사람을 탐색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인사’였다.
부부가 조심스레 철창에 주먹을 갖다 대자, 알지는 코로 체취를 맡으며 탐색을 시작했다. 몇 초가 흐른 뒤 탐색을 마친 알지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반가움을 표현했다. 알지 역시 부부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부부의 얼굴에는 어느새 알지와 함께할 미래에 대한 기대로 미소가 피어났다.
은퇴식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달 27일 군견훈련소 관리견 견사에서는 은퇴견 무상 분양이 진행되고 있었다.
힘든 과정 거쳐 야전 현장서 활약
현재 우리 군은 육군과 공군에서 군견훈련소와 군견훈육중대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 육군군견훈련소는 육군은 물론 해군, 해병대에서 필요로 하는 군견까지 통합해 양성하고 있다.
군견 선발 과정은 굉장히 까다롭고 엄격하다. 통상 10마리의 후보견 중 2~3마리만 군견이 될 정도.
예비 군견은 생후 70일경 최초 등록심사를 거쳐 사회화훈련, 물품소유욕 훈련을 받는다. 이후 생후 7개월 전후로 외형·감각·활동성·사회성·대담성 등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군견 적격심사를 치르게 된다.
합격한 견들만 20주간의 정식훈련을 받을 수 있으며, 생후 2년쯤 돼야 정식 군견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정식 군견이 된 작전견들에게는 군번에 해당하는 ‘견번’이 부여된다. 불합격한 강아지들은 야전부대의 ‘경계 보조견’으로 활용되거나 민간에 무상 분양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질에 따라 ‘정찰견·추적견·폭발물탐지견’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주로 셰퍼드와 말리노이즈는 정찰견과 추적견을, 리트리버는 폭발물탐지견으로 활약한다.
군견의 일상은 훈련의 연속이다. 사람보다 짧은 군견들의 망각주기를 고려해 감각을 유지할 방법이 끊임없는 훈련밖에 없기 때문. 군견들은 평소 매일같이 훈련받는 것은 물론 매년 군견훈련소에 입소해 8주의 보수훈련을 받는다. 특히 재평가 과정을 통과해야 작전견 신분이 유지된다.
표성배(군무전문경력관 나군) 추적훈련교관은 “군인에게 훈련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듯 작전견에게도 끊임없는 교육훈련은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작전견들이 충직한 전우로서 각종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 국방일보 임채무 기자
사진 : 국방일보 한재호 기자